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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의 경제’ ‘프란치스코의 경제’ 

젊은이들의 꿈이 실현될 ‘프란치스코의 경제’

아시시에서 열린 ‘프란치스코의 경제’ 대회를 마치며 전 세계 젊은이들이 강조한 내용을 실현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젊은이들은 ‘프란치스코의 경제’ 대회를 통해 불평등과 불의에 반대하고 고통받는 약자의 편에 설 것을 다짐했다. 이들은 새로운 사회경제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외쳤다. 「바티칸 뉴스」는 젊은이들이 강조한 내용과 관련해 신학자 파올로 베난티 신부와 일문일답을 나눴다.

Luca Collodi, Gabriella Ceraso / 번역 이재협 신부

“불평등, 약자를 양산하는 비인간적 정치, 부패 경제, 약탈적 금융에 반대합니다.” 지난 11월 21일 토요일 아시시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 ‘프란치스코의 경제’ 대회에 참여한 전 세계 젊은이들은 대회를 마치면서 시민, 경제인, 정치인을 향해 이 같이 강하게 외쳤다. 이들은 장기적이고 미래 지향적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유토피아적 시선은 경계했다. 이들의 외침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바티칸 뉴스」는 ‘프란치스코의 경제’에 참여한 전 세계 젊은이들이 이번 대회에서 나눈 응답과 균형을 살펴보기 위해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 생명윤리 교수 파올로 베난티(Paolo Benanti) 신부와 일문일답을 나눴다. 베난티 신부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련한 이번 대회에 참여했다. 

이하 파올로 베난티 신부와의 일문일답:

 

“오늘날 아시시는 800년 전에 그랬듯, 꿈이 실현될 땅으로 드러났습니다. 1200년의 아시시에는 시민과 배제된 이들 사이를 나누고 통치하려는 상업경제가 존재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며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마음에 깊이 들어오신 하느님의 인도에 따라 가장 약한 이들의 편에 서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늘, 이와 아주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프란치스코의 경제’ 대회에 참여한 젊은이들은 지금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불평등을 인식하고 (이러한 현실에) ‘아니오’라고 외쳤습니다.”

교황님은 공동체의 경제 안에서 모든 이를 포용하는 인간적 발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구글, 페이스북 등 국가나 법률의 제재를 벗어나 지속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거대 IT 기업의 모습을 볼 때, (교황님의 강조가) 실현 가능한 요청인가요?

“(현재 모든 상황이) 언제나 부정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만은 없습니다. 최근 유럽 공동체는 이러한 관행이 지속돼서는 안 된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거대 기업들은 유럽의 요청에 맞추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세 1200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중세 당시 불평등은 땅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못한 사람 사이에 존재했습니다. 오늘날의 불평등은 (방금 언급하신) 거대 기업들처럼, 정보를 가진 이들과 봉건주의 신하의 모습처럼 정보를 갖지 못한 사람 사이에 존재합니다. 우리의 도전은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공동체적 친교를 이루는 것입니다. 정보를 독점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친교를 이루지 못합니다. 따라서 현재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서 모든 이에게 삶을 돌려주는 것,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도전입니다. 혁신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교황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 다른 범주, 새로운 발전의 유형, 선을 지향하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회칙 「Fratelli tutti」에서 우리는 최근 며칠 사이 젊은이들이 나눈 양립가능한 발전의 모델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고귀한(gentile)” 발전입니다. 곧 타인, 형제자매, 나아가 이 땅과 이곳에 사는 모든 동물들까지 포함하는 발전의 모델입니다. 우리에게는 고귀한 발전이 필요합니다.”

 

금융 분야는 공동선을 지향하면서 어떻게 유용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윤리학자로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저울의 숫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입니다. 경제 구조가 올바로 작동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신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입니다. 신학자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 관계에 있어 인간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이고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곧, (경제적 관계 안에서) 과연 타인을 형제로 바라보는가, 혹은 경쟁자나 지배할 대상으로 바라보는가 등의 문제에 대한 질문입니다. 곧, 첫 번째 등불은 인간에 대한 질문입니다. 인간에 대한 질문이 공허한 목소리가 되지 않고 모든 계층에 울려 퍼지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사회 교리가 가르치는 대로 모든 이의 기여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금융과 경제 시스템은 공동의 부를 성장시킨 만큼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경제 시스템이 지니는) 한계는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이 공동의 부가 소수에 한정돼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

“말씀하신 부분은 부에 집중한 기술 혁신을 통해 우리가 경험한 여러 사건 중 하나입니다. 캘리포니아의 토마토 수확을 기계화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토마토를 수확하는 기계는 가격이 비싸서 모든 농장에서 사용할 수 없었고, 점차 작은 농장은 거대 식량기업에 흡수됐습니다. 기업시장이 형성된거죠. 현재 IT 기업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보통신을 위한 서버, 시스템,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집단은 한정적입니다. 예전에는 많은 이들이 공유했던 부를 이제 소수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보를 독점하는 거대 집단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고 모두가 동등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 법률, 구조적 균형의 무게를 맞춰야 합니다.”

교황님은 아시시에서 열린 이번 대회를 마치면서 ‘발전의 척도는 인간다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이 프로젝트에 어떤 기술이 동반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교황님의 이 말씀을 아주 명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경계란 무엇을 뜻합니까? 경계는 임의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원의 둘레와 같은 것으로 이해돼야 합니다. 곧, 어떤 한 점에서부터 같은 거리만큼 떨어진 공간입니다. 같은 거리는 그것이 사각형이 아니라 원이 되게 하여 그 공간의 정체성을 부여합니다. 따라서 (교황님이 말씀하신) 인간이 그 경계가 돼야 합니다. 곧, 모든 이가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갖춰야 합니다. 누구도 이 범주에서 배제돼서는 안 됩니다. 비인간적인 것은 인간의 바로 그 심오한 열망을 거부합니다.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선의의 세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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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1월 2020, 0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