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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대한 집착이 노예를 만듭니다. 절대 악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6일 사순 제1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에 관해 설명했다. 악마는 때때로 선한 외양이나 종교적 동기의 형태로 나타난다. 교황은 “모든 것을 사물, 권력, 명예의 소유로 축소시키는 것”을 가리켜 “악이 뿌리내리는 욕망의 독”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삼종기도 말미에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잔혹한” 전쟁에 반대하며 이 같이 호소했다. “무력 침공을 멈추고 협상이 우선하며 상식도 통하길 바랍니다. 교황청은 이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순 제1주일인 오늘 전례의 복음은 우리를 광야로 데려갑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40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신 곳입니다(루카 4,1-13 참조). 예수님께서도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에도 우리 각자와 함께하십니다. 광야는 참된 자유를 택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악의 유혹에 맞서는 싸움을 상징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적 사명을 시작하시기 직전에 광야를 체험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영적 투쟁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어떤 메시아가 되고자 하시는지 확고하게 밝히십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러저러한 메시아가 아닙니다. 저는 예수님의 메시아적 정체성, 예수님의 메시아적 길에 대한 선포가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메시아이지만, 여정 중에 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께서 맞서 싸우시는 유혹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악마는 두 차례에 걸쳐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루카 4,3; 4,9). 다시 말해 그는 예수님께 당신의 지위를 이용하라고 제안합니다. 먼저 시장기를 느끼고 계시는 물질적인 욕구를 – 곧, 굶주림을 – 충족하라는 유혹입니다. 그런 다음 그분의 권력을 강화하라는 유혹입니다(6-7절 참조). 마지막으로 하느님에게서 기적의 표징을 얻으라는 유혹입니다(9-11절 참조). 세 가지 유혹입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그런 것들을 좀 활용해 보세요!”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요! “당신이 그러한 지위에 있다면, 그걸 활용해 보세요! 기회를, 찬스를 놓치지 말고요.” 다시 말해 “‘당신의’ 이익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매혹적인 제안이지만, 그것이 여러분을 마음의 노예로 이끕니다. 가지려는 열망에 집착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사물, 권력, 명예의 소유로 축소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유혹의 핵심입니다. 곧, 악이 뿌리내리는 “욕망의 독”입니다.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유혹은 항상 이런 패턴, 항상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이기는 방식으로 대항하십니다. 어떻게 하시나요? 하느님의 말씀으로 유혹에 대응하십니다. 하느님, 다른 사람들, 사물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지 말고, 지위를 남용하여 특권을 얻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유혹에 대응하십니다. 참된 자유와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것에, 권력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섬김의 기쁨에 참된 자유와 행복이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러한 유혹들은 또한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와 동행합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악마는 종종 선한 외양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활한 악마는 항상 속임수를 씁니다. 악마가 예수님께 원했던 것은 이렇습니다. 곧, 정말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있어 그의 제안이 유용하다고 예수님께서 생각하시길 원한 것입니다. 

강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마와 대화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한번도’ 악마와 대화하신 적이 없습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이들을 치유하셨을 때 그를 쫓아내시거나 혹은 이번 경우처럼 악마에게 대응하셔야 할 때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대답하시지, 절대 당신의 말씀으로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 악마와의 대화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악마는 우리보다 훨씬 더 영악합니다. 절대 그와 대화를 나누지 마십시오! 예수님처럼 하느님 말씀에 충실해야 하고, 굳이 말을 해야 한다면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으로 대답해야 합니다. 이 길을 따르면 우리는 절대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곁에 있는 악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종종 “온화한 눈”과 “천사 같은 얼굴”로 다가옵니다. 그는 거룩함으로 자기 자신을 위장하는 법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겉으로는 종교적인 동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아첨에 굴복하면 좋은 의도로 위장하여 우리의 거짓을 정당화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런 말을 듣는지요? “저는 비정상적인 일을 저질렀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저는 – 정치인, 사제, 주교 등 – 제 역할을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의도가 있었어요.” “저는 본능에 굴복했지만, 결국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정당화가 잇달아 나옵니다. 제발, 악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악마와 대화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유혹과 대화하지 말아야 하고, 이렇게 말하며 양심의 잠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건 결국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다들 그렇게 하니까!”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악과 타협하지 않으시고, 악에 동의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악마보다 훨씬 강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악마에게 맞서시어 유혹을 이겨 내십니다.

이 사순 시기가 우리에게도 ‘광야의 때’가 되길 바랍니다. 침묵과 기도의 시간을 마련합시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이러한 침묵과 기도의 공간에 머물며 무엇이 우리 마음을 휘젓고 있는지, 정당화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내면의 진실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우리를 노예로 삼는 악에 대항하는 은혜로운 싸움, 자유를 위한 싸움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도록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말씀 앞에 머물며 내적 명료성을 구하도록 합시다. 

동정 성모님께 사순 시기의 광야에서 우리를 동행하시어 우리의 회심 여정을 도와달라고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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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3월 2022, 00:11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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