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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그리스도인의 확고한 희망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2일 바티칸 경내 ‘산타 마리아 인 캄포산토’의 테우토니코 성당에서 위령미사를 봉헌하며 강론에서 제1독서인 욥기의 말씀을 해설했다. 교황은 내세의 삶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확신이 우리가 청해야 할 하느님의 “무상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묘소를 방문해 세상을 떠난 역대 교황들을 위해 기도했다.

Alessandro Di Bussolo / 번역 이재협 신부

“기쁠 때나 힘들 때나, 또는 시련 중에 있을 때나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 때도, 우리는 욥 성인의 말을 기억합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 눈은 바로 그분을 보리라’(욥 19,25-27 참조). 욥의 고백은 그리스도인의 희망이며 우리가 하느님께 청할 때 주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오늘,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우리가 기억하는 욥 성인의 말씀은 우리가 죽음을, 그리고 내세의 삶을 잘 바라보게 해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2일 월요일 오후 ‘산타 마리아 인 캄포산토’의 테우토니코 신학원 성당에서 위령미사를 봉헌하며 즉흥적인 강론을 통해 이 같이 말했다. 미사 후 교황은 테우토니코 묘지에서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이어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묘소를 방문해 세상을 떠난 역대 교황들의 무덤 앞에서 이들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 눈은 바로 그분을 보리라.’

교황은 위령미사 전례 제1독서인 욥기의 말씀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강론을 시작했다. “욥은 (수많은 시련으로) 무력하게 굴복한 모습, 무력해진 정도가 아니라 살가죽이 거의 다 벗겨지는 고통 가운데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확신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 눈은 바로 그분을 보리라’(욥 19,25-27 참조). 욥은 나락으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빛과 따뜻한 손길이 그를 감쌉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내 눈으로 나의 구원자를 보리라.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욥 19,27). 

그리스도인의 희망에 대한 확신은 하느님께 청해야 할 선물입니다

교황은 이러한 확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삶의 거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 욥의 확신은 그리스도인의 희망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 힘으로 얻을 수 없는, ‘주님, 저희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하고 하느님께 청해야 하는 희망입니다.” 교황은 “우리를 좌절케 하고,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없으며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고 믿게 만드는 좋지 않은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난다”면서 다시 욥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바오로 사도는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로마 5,5 [공동번역])라고 말합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끌어당기고 삶에 의미를 줍니다. 저는 죽음 이후의 삶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희망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이 선물은 우리를 영원한 삶으로 이끕니다. 희망은 내세에서 우리에게 내려진 닻입니다. 우리는 이 희망의 끈을 붙잡고 굳건히 서야 합니다.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이 욥의 말을, 기쁠 때나 힘들 때나, 죽음을 마주할 때도, 기억하며 되새깁시다.”

예수님은 닻이십니다. 이를 기억하며 희망의 끈을 붙잡고 살아갑시다

“희망은 우리가 절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무상의 선물입니다. 희망은 주어진 것이고, 선물로 받은 것이며, 은총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희망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다’”(요한 6,37). 교황은 “이것이 희망의 목적지”라며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예수님은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요한 6,37)라고 말씀하신다며, “우리를 다음 세상에서 맞이하실 분은 주님”이라고 말했다. “희망 속에서 사는 삶은 희망의 끈을 굳게 붙들고, 확실한 닻이 내세에 있음을 알며, 실망하지 않고 사는 삶입니다.”

“오늘 먼저 세상을 떠난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기억하는 욥 성인의 말씀은 우리가 죽음을, 그리고 내세의 삶을 잘 바라보게 해줍니다.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욥 19,25-27). 이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힘을 줍니다. 망덕은 무상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피셔 신부 “성인들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테우토니코 신학원 원장 한스-피터 피셔(Hans-Peter Fischer) 신부는 전례를 시작하는 인사말에서 참석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여기 참석하신 모든 분들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이곳에서 평화의 안식을 누리며 잠들어 계신 성인들과 친교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우리가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생명의 시간을 기억하게 해주는 ‘옆집의 성인들’입니다.” 이어 피셔 신부는 교황에게 테우토니코 신학원에는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나라에서 온 교회사 및 그리스도교 고고학 연구자들과 사제들이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이며 친구인 교황의 따뜻함을 기쁘게 받아들입시다

피셔 원장 신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신학원에서 연구하는) 우리는 여러 나라 말로 대화합니다. 여러 나라 말은 큰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함께 지내고 기쁨을 나누며 만남을 갖는 데 아무것도 방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우리 형제자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피셔 신부는 ‘순례자들의 순례자’인 교황의 방문에 감사와 기쁨을 전하는 한편, 참석한 모든 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이자 친구인 교황님의 따뜻함이라는 큰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교황님의 마음과 가르침 안에서 일치합시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회심을 위한 보편지향기도

위령미사의 처음 세 개의 보편지향기도는 각각 교황, 이주민, 우리 모두를 위한 지향으로 봉헌됐다. 먼저 교황을 위한 지향은 “교황님의 직감과 성령, 그리고 신자들의 사랑이 교회 쇄신 작업을 수행하는 교황님을 보호하고 이끄시기를” 기도했다. 이주민을 위한 지향은 “전쟁과 자연재해, 박해에서 피난한 상처입은 그들의 삶이 환대받고, 보호되고, 증진되고, 통합됨으로써 그 누구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모든 이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이를 위한 지향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비롯한 고통, 불확실, 두려움, 한계를 인식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우리의 삶의 방식과 관계 그리고 우리 사회 조직들, 무엇보다 우리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얼굴도, 목소리도, 이름도 없이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

보편기도의 마지막 지향은 모든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헌됐다. “모든 하느님 백성이 더 자비롭고 친밀한 교회, 모든 가정과 사람들의 어려움에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또한 “하느님 백성이 진리에 대한 사랑과 모든 이를 향한 사랑으로 일치를 이룰 줄 아는 공동체의 현존이 되기를” 기도했다. 아울러 모든 죽은 이들, 특히 “얼굴도, 목소리도, 이름도 없이 죽은 이들을 하느님 아버지께서 더 이상 근심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평화로 이끄시기를” 기도했다. 

테우토니코 신학원 성당과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묘소에서의 기도

교황은 미사를 마치고 피셔 원장 신부와 함께 테우토니코 묘지로 이동했다. 교황은 묘지 곳곳을 돌며 성수축복을 하고 몇몇 묘비 앞에서 잠시 머물러 이곳에 묻힌 모든 이를 위해 기도했다. 이어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묘소로 향했다. 여기서도 교황은 먼저 세상을 떠난 역대 교황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보냈다.

8세기에 기원을 둔 ‘산타 마리아 인 캄포산토’ 

교황이 현재 거주하는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인 캄포산토’의 기원은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곳에는 가난한 이를 위해 음식과 옷을 나눠주며 그들을 돕던 구호소가 위치해 있었다. 1450년 대희년에 많은 순례자들이 로마에 오면서 이 자리는 성당과 묘지로 세워졌다. 1454년, 독일 출신 교황청 관료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위해 사도회를 조직했다. 15세기 말에 이르러 성당은 독일에서 유행하던 건축 양식을 따라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건축돼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리스도교 고고학 연구를 위한 교황청립 신학원

1597년 독일인들로 구성된 사도회는 “성 베드로 대성전 경내 독일 묘소의 어머니 대사도회(Arciconfraternita di Nostra Signora nel Campo santo tedesco presso San Pietro)”라는 교회 공식 단체로 임명됐다. 대사도회는 1876년 이곳에 그리스도교 고고학과 교회사를 연구하는 사제들을 위한 교육기관과 기숙사를 세웠다. 1910년에는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성당 건물에 대한 복원작업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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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묘소에서의 기도
02 11월 2020, 2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