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AdobeStock_280820527.jpeg
사설

“사랑이 의미하는 바를 배우면서 환자를 돌봅시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서한 「착한 사마리아인」(Samaritanus Bouns)을 9월 22일 발표했다. 이번 서한은 “삶의 마지막 시기”라는 주제를 다룬다. 특히 서한은 사목적 측면에서 보살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모든 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애정 어린 보살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ANDREA TORNIELLI / 번역 이재협 신부

(의학적) 치료가 불가하다 해서 (전인적, 영적) 보살핌이 불가한 것은 아니다. 이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서한 「착한 사마리아인」(Samaritanus Bouns)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핵심 문장이다. 9월 22일 화요일 발표된 이번 서한의 주제는 “삶의 마지막 시기와 중대한 순간에 있는 인간의 보살핌”이다. 서한은 (오늘날) 생명의 가치에 대한 공통의 양심을 상실하는 한편, 종종 개별 사례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공공연한 논쟁을 야기하는 현실과 마주하면서, “생명의 불가침성은 자연윤리법의 기본 진리이며 법적 규범의 본질적인 토대”라고 천명한다. “비록 본인이 요구하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거슬러 침해하려는 시도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한 「착한 사마리아인」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실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이미 교도권의 가르침은 모든 형태의 안락사와 조력 자살에 대해 여러 차례 반대해 왔으며, 영양 공급과 수분 공급이 환자를 돌보기 위한 핵심적 도움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번 교도권의 가르침은 또한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반대 입장도 포함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운 생명 연장을 위한 치료 거부 결정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서한은 최근 교황들이 가르쳤던 바를 다시금 분명하게 밝히며, 이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 항상 느슨한 법률을 제정하는 현실 앞에서 근본 입장을 고수한다. 이번 서한의 새로움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사목적 강조”와 관련된 부분이다. 서한은 사목적 측면에서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환자들에 대한 보살핌과 동행을 강조한다. 하지만 임종 환자의 사목적 돌봄에 대한 강조가 의료적 측면을 약화시킨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곧, 애정, 곁에 있음, 적절하고 합당한 치료 및 영적 지원이 조화롭게 함께해야 한다. 아울러 서한은 지원과 적당한 의료 기구를 필요로 하는 가정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각 나라는 임종 환자를 돌보는 부분에 있어 가정이 지니는 우선적·근본적인 사회적 기능과 대체될 수 없는 가정의 역할을 인식하고, 가정을 지원할 필수적인 조직과 재원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에 대해 “가정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병원의 역할을 해 왔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오늘날 병원은 세계의 많은 곳에서 소수를 위한 특권이다. 게다가 치료를 위한 병원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서한 「착한 사마리아인」은 언론이 보도하는 논쟁적인 기사에 담긴 수많은 비극적 상황을 언급하지만,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증언을 비롯해 임종을 맞이하거나 의식이 없어 부모나 자녀, 친지로부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사랑과 희생, 증언을 들려주기도 한다. 이들의 증언은 종종 수많은 어려움을 마주하며 침묵으로 매일의 삶에서 겪는 체험이다. 전임 베네치아총대교구장 겸 전임 밀라노대교구장 안젤로 스콜라(Angelo Scola) 추기경은 자서전을 통해 몇 년 전의 체험을 고백한 바 있다. “베네치아 사목방문을 갔을 때, 한 환자의 가정방문을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본당 신부님이 한 어르신과 인사를 시켜줬어요. 제 나이 정도의 온화한 분위기의 어르신이었죠. 그분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어려운 장애를 가지고 있던 아들을 3주 전에 떠나 보낸 분이셨어요. 어르신은 30년 넘도록 매일 밤낮으로 아들의 수발을 들고 언제나 곁에서 위로하며 사랑으로 아들을 돌보셨죠. 그가 아들과 떨어져 있던 유일한 시간은 주일마다 아침 미사를 갈 때뿐이었습니다. 이 어르신의 삶 앞에서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종종 우리 사제들이 그러하듯,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의무를 느꼈어요. 그래서 전 ‘하느님께서 어르신께 갚아주실 거예요’라고 중얼거리듯 말했어요. 그러자 어르신은 큰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어요. ‘총대주교님, 보세요. 저는 이미 주님께 모든 것을 받았어요. 주님께서는 제가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해주셨어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22 9월 2020, 0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