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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공동체 창립 아버지들이 품었던 꿈으로의 회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유럽에게 있어서 유럽연합의 뿌리로 회귀하는 일은 구대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럽 공동체의 “창립 아버지들이 품은 꿈”은 곧 “확고한 연대의 꿈”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Alessandro Gisotti / 번역 김단희

5월 9일이 ‘유럽의 날’로 지정된 지 올해로 35년이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평소와는 다른 마음으로 이날을 기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이날을 기점으로 (사회∙경제적) “정상화”를 꾀하고 있으나, 아마도 그때까지 대부분의 나라가 여전히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분투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유럽이 이날을 기념하며 잠시 멈춰 서서 ‘유럽 공통의 집(Common European Home)’의 사명과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유럽의 날’을 제대로 기념하는 유럽인은 그리 많지 않다. 왜 이날이 선택됐는지 기억하는 이는 그보다도 더 적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50년 5월 9일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쉬망(Robert Schuman)의 인상적인 연설이 있었다. 이 연설에서 그는 40년 후 유럽연합 창립의 단초가 되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창설을 제창했다. 쉬망의 선언은 타당성이 있었다. 그는 유럽과 전 세계를 황폐화시킨 동족상잔의 참극을 생생히 떠올리면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들에 비례하는 창의적 노력 없이는 세계 평화를 지킬 수 없다”며 평화와 연대의 가치를 역설했다. 또 앞으로 수십 년 간 유럽에 펼쳐질 미래를 내다보면서 “유럽은 단숨에, 단일한 계획으로 이뤄질 수 없으며, 실질적 연대를 확립하는 구체적 성취들 위에 건설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쉬망은 무엇보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우선적으로 석탄 및 철강 생산을 통합한다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의 첫째 목표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생산된 석탄과 철강을 차별이나 예외 없이 세계 시장에 공급해, (유럽의) 생활 수준 향상과 평화 진작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쉬망 선언’의 예언적 힘은 실로 놀라운 것이어서,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1985년 6월, 유럽이사회는 밀라노 총회에서 쉬망의 연설이 있었던 5월 9일을 ‘유럽의 날’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유럽의 근간을 흔드는 위기 가운데 올해 ‘유럽의 날’을 기념하면서 유럽 공동체의 “창립 아버지들”이 어떻게 위기에 대처해왔는지 되새겨 본다. 과거 그들도 지금 유럽연합의 지도자들이 봉착한 위기만큼이나 심각한 위기에 맞섰다. 요셉 라칭거(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세속명)는 그들이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정치인들”이었다며, 그들에게 “정치란 도덕성에 관한 것이었기에 실용주의에만 치중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1200여 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출신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럽의 지도자들과 시민들에게 권고하는 바 또한 유럽 공동체의 뿌리와 창립 이념으로 회귀하라는 것이다. 지난 주님 부활 대축일에 신자와 비신자 모두의 마음을 울린 ‘로마와 온 세상에 보내는’ 교황의 부활 메시지와 교황 강복(Urbi et Orbi)에도 이 점이 드러나 있다. 교황은 강복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과거의 치열한 경쟁 관계를 극복하는 확고한 연대 정신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섰다”고 지적했다. 분열과 이기심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바이러스가 또 한 번 우리를 찾아왔지만, 이제 우리에겐 매우 효과적인 백신, 곧 ‘연대의 백신’이 있다. 교황은 이를 “인간의 형제애”라고 표현한다.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계획하려면 우선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지금처럼 ‘확실성’이 결핍된 시기일수록 더욱 그렇다. 구대륙 이민자의 아들로 지구 반대편에서 온 교황은 지금까지 여러 번 다양한 맥락에서 이를 강조해 왔다. 바티칸에서,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그리고 알바니아부터 루마니아까지 정치∙경제 중심지에서 벗어난 유럽 여러 국가들을 사도적 순방하면서 말이다. 2016년 5월 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럽 통합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샤를마뉴 상’을 수상했다. 수상 연설에서 교황은 유럽연합의 수장들로 하여금 유럽 공동체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옹호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르침에 따라 유럽의 뿌리로 회귀할 것을 촉구했다. 또 홀로코스트 생존자 엘리 비젤(Elie Wiesel)의 말을 빌려, 지금 유럽에 필요한 것은 “기억의 수혈”이라면서, 우리가 ‘기억’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실수를 피하는 것은 물론, 지난 세월 유럽인들로 하여금 긍정적인 방식으로 역사적 기로를 극복할 수 있게 했던 교훈들에도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을 위한 교황의 꿈은 유럽 공동체 창립 아버지들의 그것과 같다. 2019년 6월 2일 루마니아 사도적 순방 일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교황이 말한 바와 같이, 이 꿈은 유럽이 “회귀”해야 할 꿈이다. 이는 오늘날 “유럽의 이상을 경신”하는 데 필수적인 “연대”라는 이름의 꿈이다. 로마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유럽연합의 수장들과 만난 교황은 “유럽의 희망이 연대에 있으며, 연대는 현대의 포퓰리즘을 치료하는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연대란 “선한 ‘지향’으로 그치지 않는 구체적 사실과 행동”이라면서, 우리가 연대를 시작으로 “다시금 유럽식으로 사고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교황이 유럽연합의 수장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한 것은 2017년 5월 24일의 일이다. 이제 겨우 3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고통과 죽음, 고뇌로 가득했던 지난 3개월의 시간들이 이를 마치 오래 전의 일처럼 느끼게 한다. 하지만 3년 전 교황의 호소를 시급한 당면 과제로 만든 것 또한 지금의 이 위기 상황이다. 지난 3월 27일 교황이 전 세계와 함께 바친 ‘인류를 위한 특별 기도(Statio Orbis)’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지금은 “아무도 혼자서 구원받을 수 없는” 진정한 연대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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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4월 2020, 1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