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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용서”… 오늘날 절박함은 “자비”

“아시시의 용서”의 시작을 알리는 행진과 함께 미사를 거행하게 될 아시시의 강렬한 하루. 포르치운쿨라의 성지담당 체코바오 신부는 용서가 인간의 마음이 갖는 절박함이라며 「바티칸 뉴스」에 용서의 의미를 설명했다.

Benedetta Capelli / 번역 이정숙

모든 인간의 가장 깊숙한 부분과 화해하는 용서.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은 포르치운쿨라(Porziuncola)에서 매일 삶을 바꾸는 강렬한 이 체험을 설명한다. 그리고 8월 1일은 아시시의 작은 수도자 성 프란치스코가 주님께 모두를 위한 천국을 청했던 것처럼, (전 세계) 다른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사목하고 있는 성당들 또한 마음과 성령 안에서 화해하기 위한 전대사를 청할 수 있다. 

용서, 포르치운쿨라의 매일의 기적

8월 2일은 제39회 프란치스칸 행진(Marcia Francescana) 순례단이 아시시에 도착하는 날이다. 올해 주제는 “당신의 자리에”다. 포르치운쿨라의 성지담당 시모네 체코바오(Simone Ceccobao) 신부는 “아시시의 용서”에 대한 의미를 설명했다. 

이하 시모네 체코바오 신부와 일문일답:

“제가 ‘빛나는’이라고 부르길 좋아하는 밤인 천국의 밤에 프란치스코 성인은 포르치운쿨라에서 환시로 나타나셨던 주 예수님께 ‘주 예수님,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남자든 여자든 이 포르치운쿨라에 오는 사람들이 자비와 용서의 풍요로운 체험을 할 수 있길 당신께 청합니다’라는 용감한 청을 드립니다. 이 말씀을 통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지금도 이곳으로 매년, 매일, 오늘도 수백만의 순례자들을 모아 들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 말씀은 어떤 절박함을 포함합니다. 곧, 용서와 자비의 절박함입니다. 오늘날엔 용서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오늘날엔 강함, 안전, 한계를 말하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생각될 수 있는데,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자비와 용서를 못미더운 사랑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비가 모든 인간의 마음이 갖는 절박함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시사합니다. 용서의 축제는 이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주님께 했던 이 강하고 용감한 청원은 가시덤불 속에 몸을 던진 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2년 동안 의심의 가시와 유혹의 가시라는 고통스러운 위기 속에 살았습니다. (...)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 가시덤불 속에 자신을 던졌고, 그의 희생과 피로 젖은 가시덤불이 장미로 변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매일 이곳에서 실현되는 기적입니다.”

포르치운쿨라는 언제나 열린 문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는) 지속적인 자비의 대희년입니다. (...)

“매일 사람들은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곳 포르치운쿨라에서 매일 호흡하고 산다는 것은 기자님께서 잘 말씀하신 것처럼 지속적인 자비의 대희년입니다. 매일 포르치운쿨라에서 일하는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열린 마음에서 나와 인간의 삶으로 쏟아져 새롭게 하는 풍요로운 용서를 깨닫고 살아가며 우리의 눈으로 봅니다. 우리 인생 최후의 말은 사랑,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고통스러운 죄가 인생의 최후의 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다시 찾은 신뢰, 다시 찾은 희망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 말씀들을 매우 자주 반복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순례자들을 환대하는 여러분은 (하느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사람들이 용서에 대한 교황님의 말씀 때문에 호기심으로, 그리고 이끌려 오는 변화도 알아차리십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 용서의 절박함을 대변하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교회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자비와 용서 없이는 더 약한 지지단체일 뿐이라는 점을 알고 계십니다. (교황님의) 그 메시지는 도달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 또한 멀리 있는 이들의 마음에도 닿았다고 믿습니다. 제가 얼마 전 약 20년 동안 화해의 성사(고해성사)를 하지 않았던 한 순례자에게 성사를 베풀면서 체험한 것이 있는데요. 그는 죄의 사함을 받은 후, 눈물을 흘리며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껏 내내 제가 찾고 있던 것을 몰랐는데 여기서 그것을 찾았습니다.’ (이처럼) 자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말하는 언어입니다. 용서를 원치 않는 인간의 마음은 없습니다. 인간은 용서 받을 때, 자비를 입었을 때, 집에 있다고 느끼며, 무엇보다도 인간은 더욱 인간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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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8월 2019, 1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