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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도착 후 지도에 예루살렘 위치를 표시하고 있는 기유메트(Guillemette)와 카미유(Camille) 성지 도착 후 지도에 예루살렘 위치를 표시하고 있는 기유메트(Guillemette)와 카미유(Camille)   역사

하느님 덕분에 가능했던 5000km 도보 순례

그들은 주머니에 동전 한 푼 없이 파리부터 예루살렘까지 7개월 이상 걸었습니다. 이 일련의 만남은 하느님을 찾는 순례이자 타인과 자신을 발견하는 순례였습니다.

Jean Charles Putzolu / 번역 박수현

이 모험은 파리에서 시작합니다. 카미유 데스보(Camille Desveaux)는 14살 때부터 이 계획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슴 깊이 간직했습니다. 3년 전, 카미유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심하고 부모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출발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느 날 카미유는 대학에서 기유메트 드 노르베쿠르(Guilemette de Nortbecourt)라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충분한 공감대가 있었죠. 곧 그들 사이에서 우정이 피어났습니다. 카미유는 공부를 마치고 기유메트와 함께 아파트를 빌릴 때까지 자신의 계획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카미유가 기유메트에게 그 계획에 대해, 그리고 그녀가 곧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때 기유메트도 카미유와 동일한 것을 찾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기유메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저 또한 절대적으로 하느님을 느끼길 갈망했어요. 카미유의 말은 저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왔죠.” 도보 순례의 꿈은 루이 에르베 기니(Louis Hervé Guiny) 신부님 덕분에 현실이 되었습니다. 사실 카미유에게 있어 영적 탐구를 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본래 계획은 두 사람이 함께하는 도보순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1주일 동안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함께 가기로 결정하고 함께 떠나기로 합니다.

2018년 9월 10일 출발 첫째 날 그들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2018년 9월 10일 출발 첫째 날 그들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2018년 9월 10일 월요일 아침 8시. 그들은 벗이자 오랜 시간 함께해주신 영성 지도 신부님에게 청했던 미사를 순례 출발 첫째 날 봉헌했습니다. 미사에는 카미유의 세 여동생과 기유메트의 열 형제 중 네 형제가 참례했습니다. 미사가 끝나자 그들은 감격에 벅찼지만, 이내 그들을 걱정하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4일을 보냈습니다. 처음엔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집에서 묵기로 했습니다. 아직까지 그들은 앞으로 펼쳐질 이 모험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닷새째 되는 날 아침, 그들은 드디어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들은 저녁에 어디서 잠을 자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주머니에는 단돈 50센트도 없었습니다. 기유메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저희가 몇 번씩 생각해보고 결정한 선택이었어요.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 여정을 허락해주신 하느님 뜻에만 따라 우리 자신을 맡기고 싶었어요.” 프랑스 중부 루아레 지방의 작은 마을에 도착한 그들은 그 곳에 있는 성 하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엔 빈 방이 많을 거야. 틀림없어.”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성 입구로 들어갔습니다.

생전 “모르는” 사람에게 처음 문을 열어준 베로니카 씨와 함께한 카미유
생전 “모르는” 사람에게 처음 문을 열어준 베로니카 씨와 함께한 카미유

구걸하는 굴욕

닷새째 날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묵을 방을 청합니다. 하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공손했지만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그제서야 구걸하는 것이 얼마나 굴욕적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고 1초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또 다른 문을 두드렸습니다. 카미유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만남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특히 사람들이 지닌 특별한 선함에 놀랐어요. 때로 우리는 마음속 깊이 침착함을 유지하며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에게 처음으로 문을 열어준 사람은 베로니카 씨였습니다. 사실 베로니카 씨는 그날 영화를 보러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아예 이 두 사람에게 집을 맡겼습니다. 카미유와 기유메트는 이렇게 하룻밤 묵는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다음날 그들은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베로니카 씨를 더 잘 알기 위해서 약간의 시간을 더 할애하며 그 집에 머물렀습니다. 사실 이러한 일은 여러 가지 중요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첫 단계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스위스를 횡단한 후 이탈리아의 알프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를 거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저녁엔 80세의 세르비아인 피에르 씨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피에르 씨는 외국어를 전혀 몰랐죠. 그의 딸 슬라비카 씨는 서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몇 마디 영어 단어만 알았습니다. 슬라비카 씨와 대화하면서 피에르 씨가 왜 그 두 사람을 손님으로 맞아들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카미유는 이렇게 떠올렸습니다. “그날, 피에르 아저씨는 우리에게 침대를 주셨어요. (...) 잠에서 깬 다음 날, 우리는 피에르 아저씨가 소파에서 주무시고 계신 걸 보았어요. 그아저씨가 우리에게 당신의 침대를 내주셨다는 사실을 알았죠. 저도 아저씨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눈 길 속 첫 걸음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눈 길 속 첫 걸음들

발칸의 겨울

기유메트의 아버지는 군인입니다. 그는 발칸 반도의 겨울날씨와 매서운 추위를 조심하라고 기유메트와 카미유에게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난 2018년 11월부터 2019년 2월 사이, 그들이 순례하는 기간 동안 기온은 다소 온화했습니다. 영하 12도 이하로 내려간 날이 별로 없었죠. 게다가 특별한 풍경들이 연이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예를 들어 불가리아에서는 하루 종일 눈을 밟았지만 머리 위로는 햇빛이 쨍쨍했어요. 우리 앞에 펼쳐진 풍경은 우리를 묵상으로 이끌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 드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기유메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터키의 코카히디르 마을 대표 무타르 씨는 루스템 부인과 함께 카미유와 기유메트에게 잠옷을 빌려주었다.
터키의 코카히디르 마을 대표 무타르 씨는 루스템 부인과 함께 카미유와 기유메트에게 잠옷을 빌려주었다.

터키

10킬로그램의 배낭과 한 켤레의 신발만으로 여정길에 오른 두 명의 여성에게 문화적 차이는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들은 폭행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안전에 대해 한 번도 두려워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죠. 두 명의 여성이 여행하는 모습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기유메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성매매 여성들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미소 짓지 않기로 했어요. 접근 방식을 바꿔야 했죠.” 터키에서 그들은 특별한 너그러움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정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바로 터키였다고 회상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카미유와 기유메트를 환대해준 정교회 신부님과 함께. 세르비아의 사마일라에서.
크리스마스 이브, 카미유와 기유메트를 환대해준 정교회 신부님과 함께. 세르비아의 사마일라에서.

환대의 자리인 교회들

그들은 문 닫힌 교회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가톨릭 성당과 스위스의 가톨릭, 개신교 교회와 정교회가 그들에게 보여준 환대는 향후 그들의 여정에서 보여준 것에 비하면 작은 것이었습니다. “매번 성당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환대의 문화를 체험했습니다.” 세르비아부터 그리스까지의 여정에서 언어 장벽이 걸림돌이 되고, 개인적으로 그들이 숙소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자, 일부 정교회 신부님들은 그들의 계획을 설명하는 소개 서한을 써주었습니다. 이 편지들은 정말로 여행을 위한 통행보증서 같았습니다.

그들은 무슬림 마을에서도 환대를 받았습니다. 항상 마을 대표들이 먼저 다가와 환대했습니다. 그들이 묵을 곳을 마련해주었고, 공동체의 다른 일원의 집에서 그들을 위한 음식과 숙소를 구해주었습니다. 248일을 순례하는 동안 그들은 단 한 번도 노숙하지 않았습니다.

터키 슐러클러 마을에서, 다음 계절에 사용할 나무를 자르려고 모인 가족과 함께 차를 마시며 쉬고 있다.
터키 슐러클러 마을에서, 다음 계절에 사용할 나무를 자르려고 모인 가족과 함께 차를 마시며 쉬고 있다.

모든 마을이 보여준 인간애

이는 그들 모험의 실타래이기도 했습니다. 카미유와 기유메트는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문자용 핸드폰을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정 중에 만남이 계속되면서, 핸드폰 연락처 목록은 나날이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만나 이어진 사람들과의 유대는 일상적 도움으로 변했습니다. 기유메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문자 폭탄을 받는다고 할 수 있죠. 이 사람들은 우리를 환대해주었던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그들의 응원에 답해야만 했죠. 비록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모두에게 답장을 보내드렸어요. 그리고 기분이 우울할 때 사람들이 보내준 메시지가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다는 사실을 느꼈어요.” 그들은 환대를 받은 저녁 때마다 사람들에게 그들의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매일 아침 우리는 일정보다 한 시간이나 지연된 채 떠났습니다. 새로운 우정이 우리를 붙잡았고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나눴어요. 우리는 정말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카미유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그들은 만남 동안 수백 장의 사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사진들은 그들이 아무도 잊지 않았다는 것과 만남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들판과 길을 걷는 긴 여정
들판과 길을 걷는 긴 여정

자아 발견

친구와 함께 시작해 하루 24 시간을 7 개월 동안 함께 보내면 어느 순간 갈등이 생기는 위험이 따릅니다. 그들은 9 월 10 일 순례를 떠난 이후로 서로 잘 알게 되는 기회를 가졌죠. 기유메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자존심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것이 때로 그들 사이에서 긴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매번 사소한 일로 다투었어요.” 카미유는 가장 우스운 다툼 중 하나를 회상했습니다. 그들이 이탈리아에 있었을 때입니다. “우리는 강을 (그냥) 건널 지, 다리를 통해 건널 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강은 깊지 않았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았죠. 그리고 우리에게 다리로 건너가라고 충고한 한 이탈리아 아저씨가 있었어요.” 다리로 건너가려면 2 킬로미터나 더 멀리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카미유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반면 기유메트는 다리를 건너자고 주장했습니다. 다리를 건너서 가는 것이 훨씬 현명하고 신중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들은 이 일화를 말하면서 그 당시 자신들의 논쟁이 얼마나 무의미했는지를 깨닫고 한참 웃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거의 매번 피로와 낮은 사기 때문에 여러 번 논쟁하는 자신들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오늘날 그들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터키의 산들
터키의 산들

성지에 가까이 도달하다

세르비아를 떠나 터키로 들어가기 전에 그들은 불가리아를 거쳤습니다. 그들은 파리를 떠날 때부터 시리아가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여행을 잠시 중단했습니다. 그들은 터키 안탈리아에서 북부 키프로스 공화국에 도착했는데, 이 섬의 일부는 국제 사회에서 인정되지 않은 채 터키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섬을 건너 처음의 방식대로 문을 두드리고 묵을 곳을 청했습니다. 키프로스 라르나카에서 이스라엘 텔 아비브까지는 직항 항공기를 이용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지난 7개월 동안 그들이 깊이 간직한 빛나는 목표가 현실로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동쪽에 있는 올리브 산을 통해 성지로 가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들은 주저 없이 며칠 더 걸으며 남쪽 예루살렘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베들레헴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그들의 여정은 완전한 의미를 찾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되찾은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파리를 떠나왔습니다.

예루살렘 전경
예루살렘 전경

예루살렘

카미유와 기유메트는 215일 동안 하루 평균 25-35킬로미터를 걸었습니다. 며칠간 회복의 휴식도 취했습니다. 동쪽에서 올리브 나무 산(Monte degli Olivi)까지 오르는 길은 그리 길지는 않지만 비탈길로 이뤄진 험준한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예루살렘을 보지 못했지만, 이 첫 번째 광경을 보기 위해 한 주 동안 준비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성지에 가본 경험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올리브 산 꼭대기 높이에 있는 “승천” 경당에서 나와 모스크를 지나 “우리 아버지(Pater Noster)” 성당을 지났습니다. 그 앞에서 7개월 동안 기다려온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예루살렘의 전경은 실로 경이로웠습니다. 앞 뜰에는 성전 산(Monte del Tempio) 위에 있는 오마르 묘소가 있고, 홀로 구 시가지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한 동산도 보였습니다. 그들은 멈춰 서서 “드디어 도착했어!"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내려가 겟세마니 정원에 머물렀고, 겟세마니 동굴 바로 옆에 있는 마리아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기도하시다가, 배반을 당하시고 체포되셨습니다. 그들은 구 시가지로 돌아와 시장을 지나 무덤 성당까지 이르는 ‘십자가의 길(Via Dolorosa)’로 올라간 뒤 헤로데 성문을 나와 마침내 성서 연구소에 배낭을 내려 놓았습니다. 도미니코회 수사신부님들은 그들에게 특별한 환대를 보였습니다. 2019년 4월 13일이었습니다. 그들은 5000킬로미터를 걸어서 왔습니다. 모두 하느님 덕분입니다. 이제 그들은 쉴 수 있습니다.

성서 연구소의 정원에서 그들은 도미니코회 수사님들이 준비한 천막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들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파리를 떠난 이후 결코 “바깥”에서 잠을 자지 않았거든요. 도미니코회 수사님들은 열흘 동안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그들의 기쁨은 널리 퍼질 것입니다.

파리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이 검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파리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이 검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후의 삶

두 사람은 파리부터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했기에 한 번도 걱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일상 생활에서 하느님과의 친밀감을 “키워나가고” 싶어합니다. 사실 그들은 파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을 했었습니다. 카미유는 프랑스 회사의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유럽 기금을 조성하는 일을 했습니다. 기유메트는 몸이 불편한 사람 등 중증장애인을 보살피는 페린-네쥬 협회 간호사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순례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순례를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가면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제 그들은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삶이 하느님 없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순례가 그들에게 특별한 소명을 느끼게 했을까요? 이에 대해 두 사람은 아무것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카미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가끔 우리에게 침대를 내어준 세르비아의 여든 살 피에르 아저씨가 떠올라요. 저는 제 자신을 뒤돌아보려고 해요. 그리고 몇 년 뒤에는 저 역시 그렇게 큰 너그러움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카미유(Camille)와 기유메트(Guillemette)

영상 내용:

카미유, 도보 순례 여정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요?

저는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각’과 ‘포기’라는 둘 사이의 ‘내기’가 인간의 삶을 비추는 무엇이며, 그 빛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의미인 충만함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는 자신의 삶을 초월하여 진정으로 살 가치가 있는 의미를 가집니다.

기유메트, 당신은요?

저는 순례 중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작품인 풍경들을 볼 때 매우 감동받았어요. 이 풍경들은 정말 놀라움의 원천이거든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속하지 않고 하느님께 속하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걸작임을 알 수 있어요.

카미유와 기유메트는 5000킬로미터를 걸었습니다. (...)

네, 아마 그 정도 될 거에요. 정확하게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요. (...)

그 정도 거리라는 말씀이시군요. 두 분이 순례를 다시 함께 하실 건가요?

물론이죠!

네, 같이요?

네, 네, 그럼요. 당연하지요!

우리는 다시 함께 할 거에요!

05 6월 2019, 2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