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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3 Pranzo con i Poveri

피시켈라 대주교 “가난한 이들 앞에선 미사여구를 늘어놓지 말아야 합니다”

교황청 복음화부 세계복음화부서 장관 직무 대행 살바토레 리노 피시켈라 대주교가 제7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11월 19일) 교황 담화를 해설했다. “노동 현장에 대한 정치계의 대응은 여전히 너무 혼란스럽고 적극성이 부족합니다. 교황님이 담화에서 이 지점을 정확히 짚으셔서 기쁩니다.”

Antonella Palermo 

“가난의 큰 강이 우리 도시를 가로지르며 범람할 정도로 차오르고 있습니다.” 제7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2023년 11월 19일)을 맞아 6월 13일 발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담화는 이 같이 충격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교황청 복음화부 세계복음화부서 장관 직무 대행 살바토레 리노 피시켈라 대주교는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난한 이들은 한낱 숫자가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존재라며, 경제적 지원은 물론 정치 지도자들의 의제를 비롯해 모든 환경에서 우정과 문화적 감수성을 함양함으로써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환대하며,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하 피시켈라 대주교와의 일문일답:

대주교님, 제7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교황 담화에 토비야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아마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성경 인물일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무심하거나, 미사여구를 늘어놓거나, 자선단체에 위임하거나,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기 위해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

“교황님이 병상에 계시면서 다른 많은 이들과 고통을 나누고 계시는 가운데 우리에게 그러한 메시지를 전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시사적입니다. 우선 교황님은 아버지 토빗이 아들 토비야에게 남기는 유언, 따라서 우리가 잊어버리면 안 되는 중요한 내용이 전달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토빗의 유언 중에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라는 내용이 있다는 점을 알려주십니다. 하지만 미사여구로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라는 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께 다가오는 모든 병자, 더 나아가 군중의 요구를 보시고 응답하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관심입니다. 교황님은 가난한 이들 앞에서는 어떠한 미사여구도 통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은 통계 수치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리의 친밀함과 인류애를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담화에서 우리는 우리 시대가 가난하게 사는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는 내용을 읽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교황님은 우리가 금융, 경제, 오락거리 등 다른 문제에 지나치게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러한 문제 앞에서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것, 우리의 양심을 깨우는 것,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삶에서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일련의 목소리를 침묵시킵니다. 다른 한편으로 교황님은 다시금 삶의 깊은 의미를 건드리도록 우리를 부추기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오히려 우리를 복음화한다고 교황님이 누누이 말씀하시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이 표현은 가난한 이들이 우리에게 인생의 본질적인 것을 보고 만지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것에 침묵을 강요한다는 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존을 위태롭게 합니다. 따라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교황 담화는 “정치 지도자와 입법자들의 진지하고 효과적인 책임”이 필요하다고 특별히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올해 반포 60주년을 맞이하는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의 소망이 실현되려면 구체적으로 무슨 제안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우선 정부의 입법조치가 대부분 재정적, 경제적 지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우려됩니다. 이는 첫 번째 단계이고 물론 중요합니다. 담화에서 명시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궁핍과 가난은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한 부분일 뿐입니다. 문화적 차원과 관련된 또 다른 부분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법을 통해 사고방식을 바꾸고, 많은 경우 소외로 이어지는 무관심이나 멸시의 태도를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는 문화적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적 도움을 지원하도록 설계된 지원금 관련 법률에 골몰하기보다 교육 분야에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습니다. 지원금 정책은 불규칙적이기 때문에 예산이 소진되면 빨리 끝나버립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교육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육은 학교를 비롯한 모든 장소에서 이뤄집니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이뤄지고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만남의 장소에서도 이뤄집니다. 저는 입법 차원에서도 모든 이의 존엄을 회복하는 이 같은 교육 정책에 개입하고 또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신지요. (...)

“그렇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아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종종 잊히거나 구석으로 밀려납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삶을 심오하고 본질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기쁨과 책임감이 가득한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교황 담화는 빈곤의 증가와 새로운 빈곤층의 부상에 영향을 미치는 온갖 미해결 문제를 명시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날 정치 지도자들의 의제에 이 문제가 우선순위에 충분히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 현장에 대한 정치계의 대응은 여전히 너무 혼란스럽고 적극성이 부족합니다. 교황님이 담화에서 이 지점을 정확히 짚으셔서 기쁩니다.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사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규칙이 없거나 규칙을 준수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모든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우리 마음을 울립니다. 희생자들은 분명 무고한 이들입니다. 교황님은 이러한 측면을 경고하시면서 가장 취약한 범주를 다시 살펴보라고 촉구하십니다. 노동자가 없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노동자, 노동계는 부록이 아니라 국가를 견인하는 세력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 이것이 사회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익을 너무 강조할수록 사회적 책임은 약해지고 결국 사람들도 그에 무관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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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6월 2023, 1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