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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예식이 거행되는 로마 콜로세움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예식이 거행되는 로마 콜로세움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상실의 아픔과 전쟁의 공포를 묵상하는 ‘가정’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하는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예식에서 열네 가정이 전하는 사연, 기쁨, 슬픔을 들을 수 있다.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2021년 3월 19일-2022년 6월 26일)에 열네 가정이 각각 담당한 십자가의 길은 평범한 일상의 단면을 비롯해 동유럽의 전쟁으로 인한 고통, 새로운 터전에 도착한 이주민의 고된 현실을 들려준다.

Tiziana Campisi / 번역 이재협 신부

2022년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예식에 참례하는 여러 가정은 자신들의 일상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기쁨, 부부 관계 문제, 자녀들에 대한 걱정, 질병으로 인한 고통, 배우자를 떠나보낸 상실감 등을 주제로 묵상글을 마련했다. 또한 한 달 이상 끔찍한 사망자 수를 기록한 분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우크라이나 가정과 러시아 가정, 더 나은 미래를 찾기 위해 고국을 떠나 도착한 곳에서 마주한 현실을 들려주는 이주민 가정도 있다. 이들의 진솔한 묵상은 구체적이며 현실적이다. 성금요일 로마 콜로세움에서 묵상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많은 가정의 일상의 삶 속에서 재현된다. 콜로세움에 울려 퍼질 십자가의 길 묵상글은 △제1처 젊은 부부 △제2처 선교사 가정 △제3처 자녀 없는 노부부 △제4처 다자녀 가정 △제5처 장애 아들을 둔 가정 △제6처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을 운영하는 가정 △제7처 아픈 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 △제8처 조부모 가정 △제9처 입양 가정 △제10처 편부모 가정 △제11처 사제 아들을 둔 부부 △제12처 남편과 딸을 잃은 가정 △제13처 우크라이나 가정과 러시아 가정 △제14처 이주민 가정 등 열네 가정이 준비한다.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의 주인공, 가정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 반포 5주년인 2021년 3월 19일부터 제10차 세계가정대회가 열리는 2022년 6월 26일까지 지내는 가정의 해를 맞아 올해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예식 묵상글을 가정이 마련하도록 했다.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의 수난 여정과 동행하는 각 가정의 묵상글은 많은 가정이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을 묘사한다. 묵상글을 마련한 열네 가정은 십자가를 콜로세움의 각 처로 옮기는 역할도 수행한다. 전 세계로 중계될 이날 예식과 함께 모든 그리스도인은 침묵의 밤을 보내며, 제자들 사이에서 기쁜 소식으로 타오르는 희망이 꺼진 것만 같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을 묵상한다. 

혼인 2년차 젊은 부부와 선교사 부부

올해 십자가의 길 14처 묵상 주제는 교회 전승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목록을 완전히 반영하지는 못하더라도 예수님과 함께하는 가정의 여정이 삶의 계절을 통과하는 진정한 여행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십자가의 길 신심 기도 전승 안에서 때때로 각 처마다 다른 형태의 묵상 주제나 숫자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번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제1처를 맡은 가정은 혼인 2년차 부부다. 젊은 부부는 묵상글을 통해 함께 걷는 혼인생활의 기쁨을 전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확실성, 곧 주변 친구들을 통해 종종 목격하는 이혼에 대한 두려움, 대화 중 오해, 한 달을 무사히 마무리하는 고달픔 등을 나눈다. 제2처에서는 아직 예수님의 사랑을 모르는 곳에 그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 가정의 묵상글이 낭독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일상뿐 아니라 불안정한 생활에 대한 근심, 고국을 떠나 살아가는 어려움도 들려준다. “믿음과 사랑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온전히 하느님의 섭리에 우리를 내어 맡기는 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따금 분만 중 목숨을 잃거나 폭격 속에서 죽어가는 어머니를 마주할 때 느끼는 고통과 아픔, 또는 전쟁이나 기근, 무분별한 횡포에 무너지는 가정을 마주할 때면, 칼로 대응하고 싶거나 도망가고 싶은 유혹이 찾아옵니다. (…) 하지만 그런 유혹에 넘어가는 일은 가장 가난한 우리 형제자매, 곧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당신과 그 형제들 안에 살아 계신 당신을 배반하는 일입니다.”

자녀들

제3처의 묵상글은 자녀가 없지만 매일 다른 이를 향해 손을 내밀고 돌보며 가정을 가꿔나가는 노부부가 담당한다. 이들과 반대로 많은 자녀를 둔 부부는 제4처 묵상글을 통해 자녀들을 위해 자신들의 직업과 꿈을 바꾼 현실을 들려준다. 그들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정했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생활비에 대한 끝없는 걱정과 좌절을 마주할 때면 언젠가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들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걱정에도 가정을 위해 오래된 꿈을 희생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도 “훨씬 더 아름다운 일”이라며, 결코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증언한다. 제5처는 장애 아들을 둔 부부가 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자녀를 “짐”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을 묵상한다. 부부는 “장애란 어떤 표식이나 낙인이 아니라 오히려 옳지 않은 판단을 하는 이들 앞에서 침묵하기를 선호하는 이들의 영혼의 의복”이라며 “이는 수치심 때문에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심판하는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 때문에 침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채찍질 당하시고 가시관 쓰심을 묵상하는” 제6처는 3명의 친자녀와 9명의 손자녀에 더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 5명을 입양한 혼인 42년차 부부가 묵상글을 준비한다. “우리는 축복으로 가득한 삶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고통받는 이를 버리는 것이 비인간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행동하고 무관심하거나 완고해지지 않습니다. (…) 고통은 우리를 본질로 돌아가게 합니다. 고통은 삶의 우선순위를 세워주고 모든 인간의 존엄을 인식하게 합니다.” 제9처는 두 아이를 입양한 부부가 묵상글을 준비한다. 그들은 입양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지고 가는 십자가”라며, 그 십자가는 버림받음을 환대로 치유한 삶의 역사라고 말한다. “십자가는 행복의 비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착한 죄수에게 하느님 나라를 허락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제11처는 일반적인 삶이 아니라 사제직을 걸어가려는 아들의 선택을 처음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부모가 결국 스스로를 죄인으로 고백하는 묵상을 들려준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소명을 반대했으나 자신들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주님께 청한다. “저희는 한 컵의 물이며, 당신께서는 바다입니다. 저희는 작은 불꽃이며, 당신께서는 불타오르는 불꽃입니다. 이제 당신과 함께 못 박힌 착한 죄수처럼 저희 또한 당신께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희를 기억해 주십사 청하나이다.”

조부모 가정과 편부모 가정

제7처의 묵상글은 예수님께서 예상치 못한 십자가를 지셨듯 갑작스러운 질병에 걸린 아내를 간호하는 남편이 준비한다. 아내의 병은 평온한 가정을 뒤흔들어 놓았지만, 동시에 많은 도움을 체험하는 계기가 됐다. 제8처는 2년 전 은퇴하고 평온한 인생의 3막을 고대했으나 어려움을 겪는 딸들을 대신해 손주를 키우는 상황에 놓인 노부부의 증언이다. 노부부는 처음엔 “십자가를 진” 느낌이었으나, 자녀들이 어릴 때 느낌을 떠올리게 하고 여전히 자녀의 가족들에게 자신들이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선물과 같다고 말한다. 제10처는 홀로 두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가 묵상글을 준비한다. 그녀는 “각 가정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 곧 가장 일그러지고, 가장 고통스러우며, 가장 이상하고, 가장 불완전한 십자가 아래에서 가정의 깊은 의미를 찾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십자가 아래에서 하느님과 형제자매들의 사랑, 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손을 뻗는 교회를 발견한다고 증언한다. 제12처는 남편과 막내딸을 잃은 여성이 묵상글을 마련한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 쏟아지는 질문들 가운데 “주님께서 매달려 계신” 자신의 십자가를 떠올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가족들을 생각한다. 그녀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발 아래 무릎 꿇은 성모님의 마음을 체험했다고 고백한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십자가의 길 마지막 두 처의 묵상글은 최근 전쟁과 관련이 있다. 우크라이나 가정과 러시아 가정은 각각 전쟁이 변화시킨 모든 것, 다시 말해 “실존, 일상, 평온했던 겨울 눈, 학교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일, 일자리, 친교, 우정”에 대해 증언한다. 두 가정은 눈물이 말라붙고 분노가 포기로 변한 채 하느님께 “왜”라고 부르짖었다고, 또한 하느님 사랑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고 좌절에 빠졌다고 증언한다. 그들은 양국이 화해를 이루기 어려운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하느님께서 “죽음과 나눔의 침묵” 속에서 말씀하시고, “평화를 이루고, 형제자매가 되고, 폭탄이 파괴하려는 것을 다시 건설하는 방법을 알려주시길” 기도한다.

이주민들의 희망

마지막 제14처는 힘겨운 여정을 마치고 도착한 나라에서 “짐”으로 취급받는 한 이주민 가정의 묵상을 들려준다. “이곳에서 우리는 단순히 숫자나 이주민이라는 무리 중 하나로 취급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이주민’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이주민 가정은 제14처에서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의 시신”을 묵상하며, 그들의 희생과 과거도 함께 무덤에 묻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증언한다. 파스카와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생명을 바라보며 그들은 “언젠가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큰 돌이 치워질 것을 믿고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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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4월 2022, 0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