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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9월 ‘첸트로 아스탈리’를 방문한 교황 지난 2013년 9월 ‘첸트로 아스탈리’를 방문한 교황 

교황, ‘첸트로 아스탈리’ 40년 활동… “난민은 더욱더 넓은 ‘우리’가 되기 위한 희망”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16일 오전 예수회난민봉사기구(JRS)의 이탈리아 본부 ‘첸트로 아스탈리’ 4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미래를 향한 얼굴들”의 개막식을 위해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만남의 문화를 실현하자고 말했다. 아울러 이주의 여정에 나선다고 해서 “진정한 해방”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 오히려 “인간관계를 삭막하게 만드는 인간성의 사막”과 무관심의 세계화를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탄했다.

Antonella Palermo / 번역 이창욱

프란치스코 교황이 예수회난민봉사기구(이하 JRS)의 이탈리아 본부 ‘첸트로 아스탈리(Centro Astalli)’의 활동 40년을 기념하는 사진 전시회 ‘미래를 향한 얼굴들’의 개막식을 위해 메시지를 보냈다. JRS가 맞아들인 난민들의 인물사진 20점을 전시한 것으로, 사진작가 프란체스코 말라볼타가 로마의 길거리에서 촬영했다. 11월 16일 오전 열린 개막식에는 로마교구 총대리 안젤로 데 도나티스(Angelo De Donatis) 추기경과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 산하 이주사목국 차관보 마이클 체르니(Michael Czerny) 추기경이 함께했다. 니콜라 칭가레티 라치오주 주지사와 로베르토 괄티에리 로마 시장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이번 사진전은 오는 11월 28일까지 퀴리날레의 성 안드레아 성당에서 선보인다. 

고국을 등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황은 뒤클레어, 나탈리, 하이더 등 특정 이름을 명시하며 메시지를 시작했다. 이들은 이탈리아에 도착한 지난 40년 동안 ‘첸트로 아스탈리’의 동행을 받아온 난민들을 대표한다. 난민들은 이곳에서 음식과 거주지뿐 아니라, 서로 알아가고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자유를 향한 여정에 헌신할 힘과 의미”를 발견했다. 이어 교황은 성경을 언급했다.

“성경에서 40은 많은 사건을 떠올리는 의미심장한 숫자이지만, 여러분을 생각하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40년 동안 광야를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납니다.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한 민족이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한 세대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최근 40년도 순조롭게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강제로 고국을 등져야 했던 사람들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인간성의 사막과 마주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교황은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이 노예와 유사한 삶의 조건에서 달아나야 했다”며 “그 밑바닥에는 인간의 존엄을 유린하고 한낱 물건처럼 취급하는 생각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얼마나 “전쟁이 끔찍하고 비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여러분은 자유와 권리 없이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땅이 메말라가고 식수가 오염되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여러분의 꿈과 열망을 이룰 수 있고 여러분의 재능과 기술을 선용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는 선택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진정한 해방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무관심은 세계화되고 인간관계를 삭막하게 만드는 인간성의 사막과 마주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교황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역사는 과거로 퇴보할 조짐을 보여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계 곳곳에서 다시 불붙고 있는 분쟁, 광범위하게 다시 나타나는 민족주의와 포퓰리즘, 정부가 인간의 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간주되는 장벽의 건설 등을 언급했다. 

난민들, 더욱더 넓은 ‘우리’가 되기 위한 희망

교황은 지난 40년 동안 “새로운 백성으로서 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해 함께 걸어나가는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희망의 표징들이 있었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교황은 “사랑하는 난민 여러분”이라고 부르면서, 난민들이 바로 그 “희망의 표징이자 얼굴”이라고 말했다.

“여러분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구체적인 상황과 어려움에 용감하게 맞서는 데 도움이 되는 충만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여러분은 알고, 이해하고,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현재를 바꾸고, 평화의 미래를 건설하는 데 꼭 필요한 말을 우리에게 제시해주십시오. 지난 40년 동안 ‘첸트로 아스탈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선의의 많은 남녀 봉사자들의 이야기는 이와 동일한 희망의 표징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서로 매우 다르지만, 존엄과 권리가 참으로 모든 이의 것이 되는 더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일치돼 있습니다.”

‘만남의 문화’ 실현

교황은 “자유의 공동체적 차원을 재발견할 줄 아는 연대 덕분에 자유로운 민중으로서 함께 살 수 있고, 다양한 문화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획일화가 아니라 일치를 이루는 민중으로서 함께 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회칙 「Fratelli tutti」를 인용한 다음, 지금이 바로 “형제적 민중으로 이뤄진 공동의 집의 때”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전시회의 사진들에 드러난 남녀의 얼굴들이 “삶을 나누는 장소인 도시의 능동적인 일부가 되도록” 자극한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사진전의 얼굴들은) 연대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또 다른 많은 남녀와 함께하는 완전한 시민권을 가진 주인공들입니다.  ‘첸트로 아스탈리’ 40주년을 맞아 이제 ‘만남의 문화’가 진정으로 실현되어, 한 민중으로서의 우리가 서로 만나길 원하고, 접점을 찾고, 다리를 놓고, 모든 이가 참여하는 계획을 수립하는 데 열정을 쏟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체르니 추기경 “미래는 포용, 평화, 대화를 거쳐갑니다”

사진전의 개막식 인사말에서 마이클 체르니 추기경은 교황의 메시지에서 제시된 몇 가지 성찰의 요점을 설명하며 1980년 당시 예수회 총장이었던 페드로 아루페 신부가 일궜던 식별 작업을 떠올렸다. 베트남의 보트피플(배를 타고 다니는 난민들)의 상황에 직면한 아루페 신부는 난민들을 위한 예수회 봉사기구와 ‘첸트로 아스탈리’의 출범으로 이끌었다. 체르니 추기경은 “지난 40년 동안 성령께서 분쟁, 기후변화, 빈곤을 피해 존엄에 상처를 입은 남녀의 삶을 통해 계속 말씀하시고 부르짖으셨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반하기, 봉사하기, 옹호하기는 아루페 신부가 초기에 제시했던 응답이었다”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첸트로 아스탈리’에서 역사의 실존적 변방에 있던 사람들과 나란히 봉사했던 선의의 수많은 남녀 안에서 더욱 구체화됐다”고 덧붙였다. “인류의 미래는 이주민들의 사회적 포용, 평화의 건설, 사회적 대화를 거쳐갑니다. 포용, 정의,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조건은 함께 걷는 것입니다.”

‘첸트로 아스탈리’가 도와준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
‘첸트로 아스탈리’가 도와준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

소수의 특권으로 변질된 모든 이의 권리

체르니 추기경은 “이주민과 난민은 종종 모든 이의 권리가 소수의 특권으로 변질되는 고통을 겪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멕시코 국경에서 추방된 난민 △지중해로 나선 희망의 여정 △아프리카 대륙 내 실향민들의 대탈출 △아시아와 중남미의 소수민족에 대한 박해 등을 사례로 들었다. 체르니 추기경은 “우리는 인권의 보편성이 진통을 겪는 것을 목격했다”며 “감염병의 전 세계적 확산은 이를 비극적으로 입증했다”고 말했다. “과거로 퇴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 앞에서, 수많은 고통과 수많은 상처 앞에서, 이 병든 세상과 관련해 코로나19 대유행이 빚어낸 인식 앞에서, 우리는 무관심하게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체르니 추기경은 무관심한 사람이나 귀머거리가 되지 않도록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꾸자고 다시금 초대했다. 아울러 “명확하고 단호한” 책임을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코로나19 대유행이 우리에게 마음의 회심을 위한 기회를 준다고 상기했다.

주인공의 목소리: 희생자 아닌 생존자

전시 개막식에는 주인공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난민 자와드 씨와 그의 아내 나지파 씨는 10년 이상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있는 이들을 위해 이곳에서 숙소를 찾아야 했습니다. 환대받을 수 있는 단체를 찾고, 국제 보호의 인정을 위한 실천적인 작업에 착수하고, 통합 과정을 시작할 필요가 있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대유행은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난민 조이 양의 색다른 증언도 있었다. “저는 조이 에히키오야이고 흑인입니다. 아무도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피부에 멜라닌 색소가 조금도 없는 백색증(알비노)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난 알비나 씨는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에 도착한 다음, 거기서 환대와 도움과 보호를 받았다. “저는 두 번째 기회를 받았습니다. 아주 소중한 두 번째 가능성이죠. 저는 이 기회를 저의 특징인 열정, 미소, 힘, 넘치는 끼로 받아들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온 체드릭 씨도 있다. “저는 배우입니다. 제 삶, 제 열정을 예술로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술을 위해 고국을 떠났습니다. 저는 구금된 여성들에 대한 경찰의 폭력이나, 정부가 감춘 폭력을 연기, 연극, 영화로 표현했습니다. 저는 입 다물고 있을 수 없었고, 침묵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목소리는 고국에서 사형선고를 의미했습니다.” 한 젊은이는 이렇게 호소했다. “전쟁과 폭력을 피해 도망치는 여정에서 평화와 권리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내일을 엿볼 수 있는 문턱, 의로운 문, 열린 문을 찾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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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1월 2021, 1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