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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한 순간 2019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한 순간 

그레크 추기경 “교회는 친교이기에 공동합의적입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 사무처 사무총장 마리오 그레크 추기경은 인터뷰를 통해 “공동합의성은 하느님의 모든 백성이 사명에 참여하는 형태”라고 말했다.

ANDREA TORNIELLI / 번역 이정숙

교황청 부서들은 여름에도 여전히 업무를 계속한다. 그러나 몇 주 동안 태풍의 눈 속에서 작업하고 있는 그룹이 있다. 바로 예비 문서를 작성하고 새로운 과정에 있는 지역 교회를 돕도록 부름 받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이하 주교 시노드) 사무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되길 원했다. 이에 대해 「바티칸 뉴스」는 주교 시노드 사무총장 마리오 그레크(Mario Grech) 추기경과 일문일답을 나눴다. 

이하 마리오 그레크 추기경과의 일문일답:

추기경님, 준비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시노드를 하기 위해서는 시노드가 되어야 합니다! 시노드 과정에 대한 문서를 발표하기 전에 우리는 미국과 캐나다 주교회의 의장들과 함께 모든 지역 주교회의 의장들의 의견을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문서 발표 직후 모든 지역 주교회의 의장들, 그들의 상임위원회, 사무총장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들과 형제적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제안을 하고, 질문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을 위해 우리는 언어별로 나눠 총 8번의 모임을 했습니다. 또 다른 2번의 협의는 동방교회 총대주교들과 상급대주교들과의 협의였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브라질, 브룬디, 카리브해의 주교회의가 그들과의 특별한 만남을 요청하는 초대도 받아들였습니다.”  

이 첫 회의는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주교 단체성(collegialità episcopale)의 실천에 있어서 매우 감사하고 유익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접근방식을 통해 프로젝트의 시작 단계에서도 모든 이의 시노드 참여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교황청의 여러 부서와 대화를 나눔으로써 교황청과도 이와 유사한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우리는 시노드 관점의 작업을 지원하는 네 개의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신학적 연구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친교의 영성 안에서 우리가 교회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방법론을 위한 것이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의사소통의 측면을 담당하는 위원회입니다.” 

차기 주교 시노드의 구체적인 주제와 관련해 진행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바다를 알고, 배를 타고 긴 항해를 하려면 모든 것이 신중하게 준비돼야 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비 문서 준비에 집중하는 것도 이 신중한 준비의 일부입니다. 물론 우리는 여행의 이유에도 동의해야 합니다. 교황님은 주교 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에 공동합의성이라는 주제를 부여하셨습니다. 분명 이 주제는 복합적입니다. 친교, 참여, 사명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교황님이 주교 시노드 제정 50주년 기념 연설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공동합의성의 양상들이자 ‘구성적으로 공동합의적인 교회’의 양상들입니다. 우리는 ‘공동합의적 교회를 위하여’ 가야 합니다. 혹은 오히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 방향으로 가라고 요구하셨다고 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교황님은 공동합의성을 거듭 강조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오해의 여지를 없애고 싶습니다. 많은 이들이 공동합의성이 교황님의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준비 모임에서 공동합의성이 초대 교회의 형태이자 양식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예비 문서는 이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원천화(Ressourcement)’, 곧 ‘원천으로 돌아가기’ 운동을 통해 제이천년기의 교회가 위대한 업적을 전혀 포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교회의 모델을 회복하길 원했는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전통(聖傳)에 충실하길 원한다면, 그리고 공의회를 거룩한 전통의 가장 최근의 여정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공동합의적 교회의 길을 가야 합니다. 공동합의성은 공의회 이후 기간 동안 종종 서로 대립돼 왔던 모든 공의회적 주제를 잘 구성하는 범주입니다. 저는 특히 하느님 백성이라는 교회론적 범주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계제도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간주돼 왔던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교회를 주장하고, 노동조합처럼 참여를 권리로 이용합니다.” 

추기경님은 이러한 해석이 어떤 위험을 초래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해석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합니다. 그 사람들이 특히 분열시키려는 의도라면 우리는 해석들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공의회와 공의회가 가져온 유익을 봐야 합니다. 단순히 교회론의 법적, 위계적, 제도적 측면을 더욱 영성적, 신학적, 구원의 역사적인 것을 통해 재구성하면서 말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들입니다. 그 범주가 교회 생활의 능동적 주체로서 세례받은 이들의 완전성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는 주교나 교황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고, 세례받은 이들의 일치의 원리, 곧 자신들의 교회에는 주교가 있고 보편 교회에는 교황이 있다고 함으로써 그렇게 했습니다. 1985년 주교 시노드가 재확인한 것처럼, 교회는 친교입니다. 이는 친교의 교회론으로 발전했습니다. 교회는 ‘우리(noi)’라고 말하도록 부름 받았기에 구성적으로 공동합의적입니다. 이 두 주장은 모순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성합니다. 친교적 교회가 하느님 백성을 주체로 삼는다면, 공동합의적 교회 아닌 다른 주체를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동합의성은 모든 하느님 백성과 하느님 백성에 속한 모든 이가 각자 자신의 신분과 역할에 따라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하게 하는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2항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하는 형태로서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sensus fidei)’과 사목자들의 식별력 간의 관계를 통해 이것이 이뤄집니다.” 

하느님 백성의 중심성은 때때로 구체적인 경험에서 이해되고 공유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마 우리가 교계제도와 교도권의 역할을 기꺼이 긍정하고 변호한다는 의미에서 분명하고, 심지어 그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앙 감각만큼은 아닙니다. 그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례성사의 주제, 곧 다시 태어남의 성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의 자격을 부여받는 것뿐만 아니라 몸의 지체처럼 교회 안에 즉시 접목되는 방식을 강조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예비 문서는 이 모든 것을 잘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 감각의 가치를 재인식할 수 있고, 세례성사 안에서 받은 이 역량을 깨달아 하느님 백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진정한 공동합의성의 길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친교의 씨앗 외에도 참여의 씨앗을 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세례받은 이는 모두 그리스도의 예언직, 사제직, 왕직의 역할에 참여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백성에게 귀를 기울임으로써 - 이는 개별 교회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 우리는 성령께서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백성이 교회의 길을 결정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목자를 포함해 모든 하느님 백성의 예언자적 역할은 사목자들의 식별의 임무와 일치합니다. 사목자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말하는 것을 통해 성령께서 교회에 말씀하시려는 바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백성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식별이 시작돼야 합니다.” 

시노드 과정이 개별 교회에 미칠 엄청난 책임이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평범한 삶을 복잡하게 만들 위험에 대한 우려가 있나요?

“이 모든 것이 실제로 교회의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과정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을 모르면 우리가 공허한 행동을 할 수 있고, 우리도 모르게 성령을 거스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교회의 ‘성령론적’ 차원을 재발견하고 나면, 공동합의적 과정의 기초가 되는 예언적-식별의 역동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특히 세 번째 용어인 사명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을 위한 주교 시노드는 선교적 공동합의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공동합의성은 사명을 위한 것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복음을 살고, 복음을 증거하며, 복음을 전함으로써 교회 자신이 되는지를 경청하는 것입니다. 제목에 제안된 모든 용어들은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함께 서 있거나 아니면 함께 넘어질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공동합의성으로 깊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이는 하느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그리스도와 성령께로 회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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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7월 2021, 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