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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라디오 방송국 개국 90주년을 맞아 스튜디오에서 방송하고 있는 파올로 루피니 장관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 개국 90주년을 맞아 스튜디오에서 방송하고 있는 파올로 루피니 장관  사설

루피니 장관 “바티칸 라디오 방송은 세상을 알릴 올바른 언어를 갖추고 있습니다”

교황청 홍보를 위한 부서 파올로 루피니 장관은 개국 90주년을 맞은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의 목표와 “서두를 필요 없는” 도구의 힘에 대해 성찰했다. 또한 오늘날 서로 연계돼 있는 세상 속에서 라디오 방송의 풍요로움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과 잊혀진 상황들에 대한 관심, 문화와 의견의 다양성을 위한 존중”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PAOLO RUFFINI / 번역 안주영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은 2월 12일 금요일 개국 90주년을 맞았다. 기념일은 언제나 결산의 시기이자 계획을 세우는 시점이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다. 왜냐하면 과거를 생생하게 지켜나갈 때 모래 위에 기반을 두지 않는 새로운 것들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 우리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기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왜냐하면,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것처럼) 가야할 길을 오늘의 메뉴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경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억을 상기한다는 의미는 과거의 풍요로움을 소중히 여기는 측면뿐 아니라, 미래를 건설한다는 측면 또한 내포한다. 

개국을 기념하는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의 풍요로움은 이렇듯 다양하면서도 유일하고, 일치를 이루면서 상호 연계된 다양성을 갖추며 세상을 향한 개방성을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보편성(cattolicità)이다. 이를 특징짓는 것은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의) DNA에 새겨진, (스스로가) 위대한 국제 다문화 공동체라는 인식이다. 아울러 자신의 존재가 교황의 사명에 봉사하고, 교황의 말을 세계 각국의 언어로 세상에 전하는 임무와 일치를 이룬다는 인식이다.

(이것이 바로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의) 권위이고, 잘 정의된 정체성이며, 기준점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과 잊혀진 상황들에 대한 관심, 문화와 의견의 다양성을 위한 존중이다. 신앙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주 언급한 것처럼, 지역 언어로(in dialetto, 지역 사투리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은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듣는 이의 언어로 전달하라는 권고를 실제로 실현하고 있다. 또한 깊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의 진부함으로부터 고유한 디지털 문법을 보존하면서 세계의 많은 언어(41개 언어)를 사용하는 국제 방송사다. 이것이 바로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의 새로운 미지의 영역(frontiera)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에 만족할 수도 있고, (진정한) 소통을 통해 인도적 기준에 더더욱 합당한 세상을 건설하고자 힘쓸 수도 있다. 무익한 연결 서비스에 만족할 수도 있고, 참된 소통을 추구할 수도 있다. 나눔으로 이어지는 진지한 대화를 신뢰할 수도 있고, 평가나 슬로건 마케팅에 의지할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라디오 방송이라는 기술은 비교의 척도이자 기준이 될 수 있다. 라디오 방송은 보도계의 거대한 학교다. 정당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말이다. 그것은 성찰과 예견된 반응을 결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디지털 시대는 라디오 방송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오늘날 인터넷 라디오 방송은 우리 프로그램들을 각각의 일정에 따라 다양한 언어로 구성된 고유한 라디오 방송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모든 스마트폰을 하나의 작은 라디오로 만든다. 라디오 방송은 새로운 기술 덕분에 정보의 정밀도가 낮은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에게 다가가는 기능과 심도 깊은 전파력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럼에도 라디오 방송의 본질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라디오 방송은 아름답다. 우리를 깊은 곳으로 이끌어 주고, 목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 목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라디오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주의를 요한다. 이야기들을 존중하고, 말할 수 있도록 놓아 둔다. 영상들의 문화는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키지만, 라디오는 (공간적인) 장소를 차지하지 않고 이야기로 장면을 들려준다. 무대배경들을 만들지 않고 무대배경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바로 여기에 역설이 있다. 여전히 우리는 언어의 심오함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어떤 영상들은 그림자나 깊이가 필요하고, 장식 없는 단어의 연상 능력이 부족하기도 하다.  

우리는 팟캐스트의 성과를 이미 알고 있다. 또한 가장 최근의 소셜 네트워크는 새로운 시작의 비결을 대화하는 언어를 통해 얻고자 한다. 말하고 듣는 언어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게으름이라는 치명적인 경향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해독제다. 정보의 관점에서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의 영역은 교황의 교도권의 주요 원천이고 집단 기억의 보석함이다.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교황)와 함께,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 곁에서, 바벨탑이 아니라, 살아있는 돌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있는 돌로 건물을 짓는다(1베드 2,5 참조).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의 임무는 바오로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묘사돼 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로마 10,18).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의 온정어린 열정은 많은 이들이 바티칸 라디오를 듣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누리집과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수백만 명이 접속하는데, 공동 모험의 최전선의 주인공들인 그들로 하여금 역사를 만들고 그리스도인들의 지식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들을 방관자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참여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폭식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즉각적인 결과물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나눔이 하나의 선택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청중에 대한 단순한 수치상의 데이터를 넘어서) 참된 나눔과 친교를 추구하면서 조언을 구할 줄 알고, 양심을 뒤흔들고, 놀라움을 주는 기준점이 되길 갈망한다. 이는 전달의 논리에서 관계의 논리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곧, 바티칸 정보의 원천에서, 중심에서 변방을 향해 이야기를 전하고, 하느님의 말씀 위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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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월 2021, 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