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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석한 세 번째 대림 특강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석한 세 번째 대림 특강  (Vatican Media)

대림 특강, 성탄과 가난의 ‘성사’

교황청 강론 전담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12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 관료들을 대상으로 바오로 6세 홀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림 특강을 진행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세상과 각 사람의 영혼 안에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이 ‘가난한 이’의 겸손한 면모라면서, 이것이 교회를 특징짓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선택에 근간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특강을 마치면서 선지자(세례자 요한)가 육체의 겸손을 취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했듯이, 오늘날 우리 각자의 비천함뿐 아니라 교회의 가난과 비천함을 통해 우리 또한 그분을 선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Giampaolo Mattei / 번역 안주영

12월 18일 금요일 오전 교황청 강론 전담 라니에로 칸탈라메사(Raniero Cantalamessa)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 관료들을 대상으로 바오로 6세 홀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림 특강을 진행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성탄절에 제한된 상황에서도 (우리 모두가) 힘을 내어 하느님께서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긴 시련으로 지친 인류를 다시 일으켜 주시기”를 청하며, 가난의 ‘성사’를 거행하자고 말했다. 이어 (가난의 ‘성사’라는 말이) “강한 어조”이지만, “사실에 입각한 표현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루카 2,7)라는 마리아와 요셉에 대한 복음 말씀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에도 세상의 호텔에는 가난한 이들이 묵을 자리가 없습니다. 역사는 하느님께서 누구의 편이 되어 주셨는지를 알려 주면서 교회가 누구의 편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가난한 이를 향해 가는 것은 하느님의 겸손을 닮는 것입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성 요한 23세 교황님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난한 이들의 교회’라는 표현을 만들었다”고 상기했다. 이어 (‘가난한 이들의 교회’라는 표현이) “교회의 가난한 이들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받았든 받지 않았든 세상의 가난한 모든 이가 교회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의가 제기됩니다. 믿지 않을뿐더러 세례도 받지 않은 사람들도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 후에 축일로 지내고 있는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도 이에 속합니다. 그들의 죄 없는 비천함과 고통이 하느님 눈에는 피의 세례입니다.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이러한 모든 방법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방법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속합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가난한 이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것은 가난한 이들이 그리스도께 속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당신께 속한다고 선포하시고 당신의 몸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다고 이것이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굶주리는 것이 자동적으로 하느님 최후의 나라에 들어가기에 충분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최후의 심판’의 복음 말씀에 적혀 있는) ‘와서 내 아버지의 복을 받아라’(마태 25,34 참조)라는 말씀은 가난 자체가 필연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를 돌본 이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물질적으로 가난하게 살았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또한 이렇게 덧붙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숫자나 통계를 통해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곧, (교회는) 단순한 말이나 그릇된 승리지상주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가장 작은 이’는 단지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포함합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교황님을 비롯해 교황님과 함께하는 교회의 목자들이 참으로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라고 강조했다. 또한 “최근의 교황님들과, 특히 현재 베드로 사도좌를 잇고 계신 목자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라는) 이 역할을 얼마나 마음에 새겼는지를 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자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교황님은 선택하거나 혹은 버릴 줄만 아는 이 세상 안에서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떠오르는 가장 권위있는 목소리입니다. 교황님은 가난한 이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정말로 잊지 않으십니다!”

가난한 이들을 선택하는 성경·신학적 근거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육화 사건으로 말미암아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과 같이 되셨다”며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되셨는데,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곧 가난한 이, 겸손한 이, 고통받는 이가 되셨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이 표징을,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처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빵을 들고 ‘이는 내 몸이다’(마태 26,26)라고 말씀하셨는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굶주린 이, 목마른 이, 감옥에 있는 이, 헐벗은 이, 나그네를 위해 베풀었는지 등한시했는지에 대해 엄중히 심판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5).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세례자 요한과 바오로 성인을 언급하면서 “육화 사건 자체와 육화의 방식, 곧 (육화에 대한) 존재론적 차원(요한 1,1-14 참조)과 실존적 차원(필리 2,5-8; 2코린 8,9 참조)을 구별”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이는 (신학)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흥미로운 측면이라고 덧붙였다. “(이 차이점은) 우리가 당면한 가난과 그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의 문제에 주목할 만한 하나의 빛을 던져 줍니다. 다시 말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선포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지탱해주는 성경·신학적 근거를 제공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를 프랑스 철학자 장 기통(Jean Giutton)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은 가난의 성사, 곧 고통받는 모든 이들의 다양함 속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재발견했다”고 기록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예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세상에 막연하게 오신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각 영혼 안에 개인적으로 오셨다”고 상기했다. 아울러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이나 교회라는 배 위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삶이라는 작은 배 안에 현존하신다”고 강조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신자들이 함께 모여 전례를 거행하고 교회에 나가는 것에 제약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교회에 가는 것만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영과 진리로’ 하느님을 경배하고, 집 안에서 혹은 방 안에서 문을 닫고서도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리스도인은 성체성사와 공동체 없이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런데 “불가항력으로 인해 (성체성사와 공동체에 대한) 제약을 받을 때, 그리스도인의 삶이 가로막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리스도를 마음속에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은, 이 말이 지닌 강한 의미처럼, 다른 곳에서도 결코 그분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음 속의 성탄: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와 관련해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세대에 걸쳐 위대한 학자들과 영성가들의 입에서 나왔던 대담한 정의”를 다시금 상기했다. “마리아를 통해 베들레헴에서 한 번 태어나신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 안에서도 믿음을 통해 탄생하지 않으신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묵상을 위해 요한 복음 머리글에서 전하는 “소식”을 인용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이어 큰 풍랑에 겁에 질린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책(마르 4,37-40 참조)을 언급했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거친 풍랑이 인류를 덮친 가운데, 파도의 힘에 휩쓸린 배 안에 우리가 홀로 버려진 것이 아님을 잊는다면” 오늘날 인류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편에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강조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의 “완전한” 결합은 “모든 가능한 새로움 중에 가장 위대하고, 다마스쿠스의 요한 성인이 정의하신 것처럼 ‘태양 아래 유일한 새로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처음 직면해야 했던 엄청난 싸움은 그분의 신성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인성과 육화의 진리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어떤 신도 인간과 혼합될 수 없다”는 철학자 플라톤의 주장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육화를 믿는데 어려움을 겪는 궁극적인 원인을 겸손의 부족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현대 무신론의 궁극적인 뿌리를 이해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개신교 신학자 헤르마 사무엘 라이마루스(Hermann Samuel Reimarus) 이후 “18세기에는 복음의 역사적 진리와 그리스도의 신성이 모든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체험이 또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길, 곧 오만함을 내려 놓고 하느님의 겸손을 받아들이는 길을 가르쳐준다”고 덧붙였다. 

성탄, 하느님의 겸손에 대한 축제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성탄은 하느님의 겸손에 대한 축제”라고 거듭 말했다. 이어 우리가 성탄을 “영과 진리 안에서” 기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기념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성당의 좁은 문을 통과하려고 몸을 낮추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 작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례자 요한 시대에 겪었던 어려움은 예수님의 육체적 몸, 곧 그분의 몸이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몸과 동일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편, 오늘날에는 무엇보다도 그분의 신비체(corpo mistico), 곧 교회가 문제가 되고 추문을 일으킵니다. 하물며 인류는 변함없이 죄에서 배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선지자(세례자 요한)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육체의 겸손을 취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했듯이, 우리 각자의 가난과 비천함뿐 아니라 교회의 가난과 비천함을 통해 우리 또한 그분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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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2월 2020, 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