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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특강 “희망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교황궁 내 구세주의 어머니 성당에서 녹화 방송으로 세 번째 사순 특강이 진행됐다.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며 십자가 발 아래에 서 계셨던 마리아는 희망의 어머니이십니다. 희망은 모든 인간과 교회의 여정을 위한 산소와 같은 덕목입니다.”

Adriana Masotti / 번역 안주영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신부는 3월 27일 금요일 교황과 교황청 관료들을 대상으로 세 번째 사순 특강을 녹화방송으로 진행했다. 특강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라는 복음 말씀으로 시작했다. 

마리아는 골고타에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다른 여인들과 함께 골고타 언덕에 머물렀다고 강조했다. “마리아는 당신의 아들이 매질을 당하고 모욕을 받으며 십자가에 못박힐 때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라고 청하셨듯이 마리아에게도 (그들을) 용서하라고 초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것처럼 마리아도 유혹을 받았는데, 특히 십자가 아래에서 드러났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극도의 유혹을 겪었지만, 예수님이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반항하지 않는 것을 십자가 아래에서 보면서 마리아 또한 침묵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예레미아 예언자가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예레 20,7)라고 하느님께 소리질렀던 것처럼, 인간적으로 볼 때 마리아도 “나를 속이셨군요!”라고 하느님께 큰 소리 치며 골고타 언덕에서 내려와 도망칠 수 있는 이유가 충분했지만, 도망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서서” 머물렀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럼으로써 마리아는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아드님을 따라 하느님을 신뢰하는 최고의 증거자, 신앙의 순교자가 됐다고 설명했다. 

교회도 마리아처럼

칸탈라메사 신부는 마리아가 골고타 언덕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일치를 이뤘고, 자기 자신의 고통 속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마리아가 ‘교회의 원형, 모범, 첫 열매, 모델’이라면,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곁에 머물렀던 마리아의 현존을 묘사한 성경 말씀을 통해 교회에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믿는 이들이 매일 그녀를 닮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칸탈라메사 신부는 설명했다. “(마리아 곁에) 서 있었던,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요한 19,26 참조)처럼, 예수님 십자가 곁에 마리아와 함께 머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머무십시오

칸탈라메사 신부는 “십자가 곁에” 머무는 것과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머무는 것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머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십자가 곁에 머무는 것, 침묵 안에서 고통 속에 머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이미 (행위 자체로) 위대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오히려 (행위 자체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결정적인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머무는 것입니다. 십자가 자체가 아니라 (십자가가) 예수님의 것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이는 고통이 아니라 믿음에 중점을 두고, 그리스도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신앙입니다. 십자가 아래 서 있는 마리아의 가장 위대한 점은 그녀의 믿음이 그녀의 고통을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고통을 통해 정화됩니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란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믿음은)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분의 고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살면서 “동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신앙과 행실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리스도 십자가에 대한 신앙은 진정 고통을 통해 이뤄집니다. 고통은 구체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신앙과 나란히 놓이는 무엇이 아니라, 신앙과 함께 모든 것을 이루게 해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다가가는 하나의 통로이자 접근할 수 있는 길입니다. 

희망의 덕

칸탈라메사 신부는 ‘희망’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언급했다. 요한 복음사가가 전하는 골고타의 내용을 상기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순간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과 승리’의 순간이기도 하므로, 십자가 안에서 이미 부활이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마리아는 골고타에서 아드님과 함께 죽음뿐만 아니라 부활의 첫 선물들도 나눴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의 성모님을 노래하는 ‘슬픔의 성모(Stabat Mater)’의 ‘슬프고, 비탄에 빠져 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십자가 아래의 마리아의 이미지를 완전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단지 ‘고통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교회가 바치는 찬미가에서도 드러나듯이 ‘희망의 어머니(Mater Spei)’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희망 없이도 희망합니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아브라함처럼 마리아도 십자가 아래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믿었다”(로마 4,18 참조)고 말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과 죽은 이들을 부활시키실 것”이라고 믿었고, 교회 또한 그녀처럼 희망 안에서 부활의 삶을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리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아드님 곁에 있었던 것처럼, 교회도 오늘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 곧 가난하고, 고통받고, 수모를 받고, 모욕을 당하는 이들 곁에 있으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동정하거나 덜어주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이런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부활을 모르는 이들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고통이 부당하지 않으며 의미를 지닌다고 선포하면서 희망을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통이라는) 죽음에서 부활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교회 안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희망이 없으면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희망은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산소처럼 중요하다며, “희망은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향주삼덕의 믿음과 사랑 사이에서 가련한 친척인 막내 여동생처럼 존재”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프랑스 시인 샤를 페기(Charles Peguy)의 상상력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믿음, 희망, 사랑은 세 자매와 같습니다. 둘은 언니이고 한 자매는 아직 어립니다. 세 자매는 ‘희망’이라는 어린 소녀를 중간에 두고 서로 손을 맞잡고 걷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두 자매가 막내를 끌어준다고 생각하지만, 틀렸습니다. 막내인 어린 소녀 ‘희망’이 두 언니들을 끌어줍니다. 왜냐하면 희망이 멈추면 모든 것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시인 페기가 제안했듯이, 우리는 ‘희망이라는 어린 소녀와 공범자들’이 돼야 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랐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이후 다시 기대했는데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많은 간청과 눈물, 그리고 이번엔 들어주실 것 같은 많은 표징들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이전처럼 변함이 없습니까? 지속적으로 바라십시오. 또 다시 기대하십시오. 끝까지 계속 희망하십시오. 마침내 희망의 공범자들이 될 것입니다!”

희망한다는 것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안다는 것

칸탈라메사 신부는 희망의 공범자들이 된다는 것은 매 순간 힘들더라도 더 강렬히 희망의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한편, “하느님께서 당신을 실망시키고 그분이 원하면 언제나 당신을 속일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희망은 단순한 내면적 태도가 아니라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을지라도, 의무를 다하고 절망에 빠지지 않으면서 수행해야 할 위대한 과업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는 곧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견디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위대한 ‘과업’을 십자가 아래에서 희망하며 성취하셨기에 우리를 도와줄 준비가 되신 것입니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희망의 전율

칸탈라메사 신부는 성경에는 비극적인 상황을 탈바꿈한 다양한 “희망의 전율들”이 있다고 말했다. 가장 깊은 고뇌를 겪은 예언자로 알려진 예레미야의 체험을 예로 들어 이렇게 설명했다. “예레미야가 다시 희망을 갖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그의 목소리의 어조가 바뀌었습니다. 비탄이 하느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신뢰로 변화됐습니다.” 끝으로 칸탈라메사 신부는 희망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바라보라고 초대하면서 교회 오랜 전통의 찬미가를 바치며 특강을 마무리했다. 

“자비의 어머니시여, 천주의 성모님, 용서의 어머니, 희망의 어머니, 은총의 어머니, 거룩한 기쁨으로 가득 찬 어머니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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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3월 2020, 2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