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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특강 “마리아는 이 시련의 시기에 상징이자 모범입니다”

코로나19 비상사태로 인해 교황궁 내 구세주의 어머니 성당에서 교황과 교황청 관료들을 대상으로 녹화 방송된 두 번째 사순 특강의 주제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신앙 여정’이다.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신부는 이 여정이 큰 고통의 순간들로 이뤄졌지만, 우리에게 친밀함과 더불어 동정 마리아의 위대함을 밝혀준다고 말했다.

Adriana Masotti / 번역 안주영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신부는 3월 20일 금요일 사순 특강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이며 첫 번째 제자인 마리아의 신앙 여정을 묵상하는 것이야말로 “온 인류가 겪고 있는 이 시련의 시기에 동정 마리아의 보호 아래 우리를 맡겨 드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여인이시여!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복음 말씀으로 사순 특강을 시작했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육화, 파스카 신비, 오순절 등 구원 역사의 중요한 세 번의 순간에 항상 마리아가 함께 있었다면서, 세 번의 마리아의 현존이 “예수님 곁의 유일한 자리를 마리아에게 보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수님 공생활에 함께한 마리아를 따르며, 무엇이 이 시대에 마리아를 상징이자 모범이게 만드는지 알아보는 것이 이번 특강의 주요 목적이다. 

마리아는 특권을 누리며 살지 않았습니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 체포로 파스카 신비가 시작된 게 아니라 예수님의 전 생애가 파스카를 위한 준비였던 것처럼, 마리아의 시련 또한 일찍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시련은) 정화와 비워냄(자기 비움, 케노시스), 곧 황폐의 순간에 도달하는 성덕의 길을 택한 위대한 영혼들에게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수난에 참여하기 전,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서 있기 전에 이미 삶 속에서 번민, 노고, 고통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마리아의 역사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마리아는 교회와 인류 구원 사업에 협력했습니다. 우리는 보편 교회 안에서 성모 신심을 이끌어낸 커다란 진보를 기쁨으로 주목해야합니다. 이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시대의 사람들은 쉽게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님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기본 범주는 ‘특권’ 혹은 면제입니다.”

하지만 흔히 그리스도의 어머니는 원죄 없으며 특별한 은총을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적 한계와 고통스러운 체험과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마리아의 독보적인 성덕을 설명하기 위한 기본 범주를 더 이상 ‘특권’이 아니라 ‘신앙’의 차원에서 찾아보도록 합시다. 마리아는 앞으로 나갔습니다. 더 명확히 말하자면 신앙 안에서 ‘진보했습니다.’ 이는 마리아의 위대함을 감소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넘치도록 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어머니의 자기 비움… 자기 버림

칸탈라메사 신부는 마리아가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었다 찾았을 때 예수님에게서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라는 말씀을 들은 복음 내용을 인용했다. 이어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가 예수님이 개입하길 신중하게 요청했을 때,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요한 2,4)라고 하신 말씀도 떠올렸다.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아들을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권리까지도 애걸해야만 했습니다. 당신이 그분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군중들 사이로 밀치고 나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며 머물자, 다른 이들이 예수님에게 가서 전합니다. ‘스승님의 어머님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마태 12, 47 참조). 여기서 또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한결 같은, 동일한 맥락의 답변입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 또한 (군중 속에서) 한 여인이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루카 11,27)라고 외쳤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고 말씀하십니다. 더불어 마리아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동반하며 ‘따라다녔던 여인들’ 무리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 아들을 돌보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 마리아의 자기 비움은 메시아의 어머니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모든 이들 앞에 여느 여인들과 같이 있으면서 자신을 온전히 비우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리아의 선한 침묵

칸탈라메사 신부는 이어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고 나자렛을 떠난 후 ‘머리를 기댈 곳이 없었고’(마태 8,20 참조), 마리아는 마음을 기댈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마리아는 과거에 받은 계시들과 약속들을 잊고, 과거에 대한 기억을 버리고, “순수한 희망 안에서 오롯이 하느님만 바라며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예수님이 마리아로 하여금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오직 성부의 뜻을 행하도록 이끌면서 “온전한 비워냄(자기 비움)을 향해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고 재촉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러한 혹독한 훈련에 마리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마리아는 (이 모든 것을) “절대적 순응”으로 응답했고, 여기에 “하느님 어머니의 독보적인 인간적 거룩함이 드러난다”고 칸탈라메사 신부는 강조했다. “마리아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모든 것 앞에 침묵으로 응답했습니다. 이는 뒤로 물러서거나 슬퍼하는 침묵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의 침묵은 선한 침묵입니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이것이 마리아에게 있어 모든 것이 쉬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아울러 “투쟁, 노력, 어둠을 이겨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마리아는 원죄가 없습니다. 하지만 투쟁과 노력이 면제된 것은 아닙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이 노력을 ‘믿는 이의 노력’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마리아

칸탈라메사 신부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그리스도의 제자였기에, 마리아의 일생을 슬픈 삶이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와 반대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성인들의 삶에 유추하여 판단해봅시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아기) 예수님이 마리아의 목을 꽉 붙들고 있을 때의 베들레헴 혹은 나자렛에서 느꼈을 모성적 기쁨과 비교하여, 자기 비움의 여정 속에서 매일 새로운 형태의 기쁨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이는 자기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쁨이 아니라 ‘믿는 이의 기쁨’입니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위대한 신비주의자 폴리뇨의 성녀 안젤라의 영적 체험을 인용했다. 성녀 안젤라는 (마리아와) 비슷한 체험을 했고, “하느님은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된 신은 더 이상 우리의 하느님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 특별한 기쁨에 대해 말했다. 이어 “죄를 제외하고 우리와 닮은 인간으로 모든 것 안에서 단련을 받으며 우리의 병고를 나눠 짊어지시는 어머니”는 마리아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칸탈라메사 신부는 특별한 시련을 겪고 있는 이 시기를 위해 오랜 전통을 지닌 ‘성모님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Sub tuum praesidium)’를 바치며 특강을 마무리했다. “천주의 성모님, 당신의 보호에 저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에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항상 모든 위험에서 저희를 구하고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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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월 2020, 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