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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자취를 따릅시다”

교황청 강론 전담사제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신부는 지난 12월 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첫 번째 대림 특강에서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를” 믿자고 강조했다.

Amedeo Lomonaco / 번역 이창욱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신부가 지난 12월 6일 바티칸 교황궁 내 구세주의 어머니 성당(Cappella Redemptoris Mater)에서 행한 첫 번째 대림 특강의 요점은 “잉태예고 안에서의 마리아”였다. 이 자리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함께했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복되신 동정녀가 “자신의 몸으로” 대림을 살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마리아는 “기다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고, “우리 또한 강력하고도 존재론적인 의미에서 우리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리도록” 도와줄 수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 

신앙의 중요성

마리아는 “아직 보지 못했으면서도 믿었던 이들 중 첫 번째 인물”이다. 그녀는 하느님께 “네”라고 말했다. 그녀의 신앙 행위는 “성령의 은총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교회를 형성하는 신자들의 엄청난 자취(scia)”가 마리아의 신앙을 통해 시작된다고 칸탈라메사 신부는 강조했다. 아울러 마리아의 자취를 따른다는 것은 “신앙이 모든 것의 바탕”이며, “완수해야 할 활동 가운데 가장 ‘좋고’ 으뜸” 임을 이해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신앙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무상성 덕분에 유지되는 유일한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은총과 신앙은 구원의 두 가지 축입니다. 걷기 위한 두 발, 혹은 날기 위한 두 날개입니다. 이것은 하지만 나란히 가는 두 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은총은 하느님에게서 오고, 신앙은 우리에게서 온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구원도 이러한 방식으로, 하느님과 우리에게 동등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에페 2,8-9)”

마리아의 신앙 

칸탈라메사 신부는 마리아의 신앙에 관한 여러 측면들이 “오늘날의 교회로 하여금 더 충만하게 믿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리아의 신앙 행위는 “인격적이고, 유일하며, 되풀이될 수 없는 것”이다. “하느님을 신뢰하며 하느님께 완전히 자신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인간 대 인간의 관계다. 이를 주관적 신앙이라 부른다. “믿고 있는 내용보다는 오히려 믿는다는 사실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의 신앙은 객관적이며, 공동체적이기도 하다. 마리아는 “그녀에게만 은밀히” 계시되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하느님을 믿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선조들의 하느님, 자기 백성의 하느님을 믿습니다.”

“단지 주관적인 신앙, 자기 의식의 내밀함 안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신앙을 갖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이런 (신앙의) 길에서는 자기 기준에서 하느님을 축소하기 십상입니다. 성경을 개인적으로 해석하거나 편협한 단체의 해석에 토대를 두고, 자기 생각대로 하느님에 대한 관념을 만들 때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을 믿기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믿고, 하느님에 대한 완전히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면서, 어쩌면 광신주의로, 온 힘을 기울여 (자신이 만들어낸 하느님에 대한) 관념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그 신앙이 ‘나’에서 ‘너’로, 하느님과 개인적이고 밀접한 접촉을 실현하지 않는다면, 객관적이고 교의적인 신앙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런 신앙은 쉽사리 죽은 신앙이 되고, 교회 안에서 제도적인 신앙을 믿는 위기에 들어서자마자 무너지는 제도적 개입이나 개인적인 개입을 통한 믿음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믿는다는 것

따라서 단지 주관적 신앙이나 단지 객관적 신앙만으론 충분치 않다. “개인적으로 믿어야 하지만, 교회 안에서 믿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믿지만, 개인적으로도 믿어야 합니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교회의 교의적 신앙은 개인적인 (신앙)행위와 믿음의 자발성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을 지켜주고 나의 보잘것없는 체험의 하느님보다 훨씬 더 무한히 위대한 하느님을 알고 포용하게 해줍니다.” “사실 그 어떤 피조물도 자신의 신앙행위를 통해, 하느님에 대해 자신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신앙은 단순한 대상의 가장 폭넓은 부분을, 파노라마로 촬영하고 수집하게 해주는 대형렌즈와 같습니다.”

“세상은 바다처럼 아름다운 배가 지나간 자취에 의해 여러 갈래로 갈라집니다. 그 자취는 마리아에 의해 열린 신앙의 자취입니다.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를 우리 또한 믿읍시다. 성실하신 동정녀(Virgo fidelis)라는 감미로운 호칭으로 성모님께 청합시다. 성실하신 동정녀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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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12월 2019, 1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