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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과 아킬레 실베스트리니 추기경 (자료사진) 프란치스코 교황과 아킬레 실베스트리니 추기경 (자료사진) 

교황청 외교계의 거목, 아킬레 실베스트리니 추기경 선종

교황청 동방교회성 장관을 역임했던 실베스트리니 추기경이 지난 8월 29일 로마에서 선종했다. 향년 95세. 고인은 선종하기 전 바티칸 전통 외교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으며, 바티칸에 있는 그의 숙소에 머무르고 있었다.

Barbara Castelli / 번역 김호열 신부

고인의 삶은 교회와 교황을 위해 헌신한 삶이었다. 교황청 동방교회성 장관을 역임했던 아킬레 실베스트리니(Achille Silvestrini) 추기경이 지난 8월 29일 목요일 로마에서 선종했다. 향년 95세. 그는 문서보다 젊은이들에 관심을 보였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였으며, 꼼꼼하고 엄격하게 수십년 동안 교황청의 외교업무를 수행했다. 교황청 국무원 총리(당시 국무원장) 도메니코 타르디니(Domenico Tardini) 추기경과 암레토 지오바니 시코냐니(Amleto Giovanni Cicognani) 추기경의 긴밀한 협력자였으며, ‘동방정책(Ostpolitik)’ 시대에 아고스티노 카사롤리(Agostino Casaroli) 대주교와 함께 했고, 라테라노 조약의 개정을 위해 이탈리아 당국과의 협상을 이끌었다.

로마냐의 젊은 신부

실베스트리니 추기경은 지난 1923년 10월 25일 이탈리아 북부 파엔차교구 브리시겔라에서 태어나 19세에 교구신학교에 입학, 1946년 7월 13일 요셉 바탈랴(Giuseppe Battaglia)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았다. 볼로냐대학의 문학과 철학 학부에 입학해 “거룩한 교회 국가의 기본 법령”에 관한 논문으로 고전문학 학위를 취득했다. 1948년 로마로 파견된 후 교황청 신학교에 입학해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에서 법학을 수학하고 민법과 교회법 학위를 취득했다. 

청취와 대화의 외교를 위한 봉사

실베스트리니 추기경은 1952년 교황청 외교관 학교에 들어가 이듬해 12월 1일부터 교황청 국무원 국무부에서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전반을 담당하며 외교업무를 시작했다. 1958-1969년 국무원 총리 도메니코 타르디니 추기경과 암레토 지오바니 시코냐니 추기경의 협력자로 일했다. 이후 국무원 교회외무위원회에서 국제기구 부문의 업무(평화, 군축, 인권)를 담당했다. 이후 1971년 아고스티노 카사놀리(Agostino Casaroli) 대주교의 모스크바 방문에 동행해 핵무기 비확산 협상에 교황청의 협조 의사를 전달했다. 1972년 유럽 안보협력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헬싱키협의회 교황청 대표자로 임명됐으며, 헬싱키와 제네바에서 있었던 회의의 모든 단계에 참여했다. 1977년에는 헬싱키 최종협의에 대한 검증과 증진을 위한 벨그라도회의 대표단의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감수성

실베스트리니 추기경은 1973년 7월 교회외무위원회 외무차관보로 임명되었으며,1979년 5월 4일부터 차관직을 맡았다. 노발리차나 교구 명의대주교로 임명되면서 같은 달 27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대주교로 승품됐다. 1979년부터는 라테라노 조약의 개정을 위해 교황청 대표단을 이끄는 새로운 직무를 맡았으며, 1984년 2월 18일 협정에 서명할 때까지 이탈리아 당국자들과 협상을 진행했다. 그 기간 동안 △마드리드 유럽 안보와 협력에 관한 회의 교황청 대표(1980-1983) △몰타 교황 특사 (1981) △말비나-포클랜드 위기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황 특사(1982)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교황 특사(1983) △폴란드 교황 특사(1983) △스톡홀름 유럽 군축 회의 개최 당시 교황청 대표단 대표(1984) △헬싱키에서 있었던 유럽 안보와 협력을 위한 총회 협약 서명 10주년 기념식 참석 △몰타에서 있었던 교회가 운영하는 교육기관에 관한 합의 확정(1985) △레바논과 시리아 교황 특사(1986) △폴란드 교황 특사(1987) 등 수많은 외교업무를 수행했다. 

청소년 세계를 주의 깊게 살핀 인물

1988년 6월 28일 추기경회의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를 부제급 추기경(성 바오로 성문 밖 성 베네딕토 본당 명의)으로 임명했다. 추기경 서임 3일 전에는 교황청 법원 대심원장에 임명됐다. 1991년 5월 24일부터 2000년 11월 25일까지 교황청 동방교회성 장관을 지냈다. 아울러 그는 사제로서 1945년 타르디니 추기경이 설립한 단체 “빌라 나자렛”의 젊은이들을 위한 사목활동을 수행하기도 했다. 1969년부터는 “빌라 나자렛” 출신의 학자들과 전문 직업인들 및 지인들 그룹이 설립한 “공동체”를 지도했다. 이로부터 1986년에는 “도메니코 타르디니 공동체” 재단이 탄생했다. 이 재단은 나자렛의 성 가정 재단의 양성 활동과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실베스트리니 추기경은 이 두 재단의 회장직을 맡았다. 

추기경단의 재구성

실베스트리니 추기경은 교황 선출권이 없었다. 실베스트리니 추기경의 선종으로 전 세계 추기경은 총 215명이다. 이 가운데 교황 선출권을 지닌 80세 미만 추기경은 118명이며, 나머지 97명은 교황 선출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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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8월 2019, 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