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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ANSA) 사설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무상의 선물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로코 사도적 순방의 마지막 날 수도 라바트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아버지의 무한한 자비를 상징하는 ‘돌아온 탕자’ 비유를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재산은 이같은 사랑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ndrea Tornielli / 번역 김단희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루카 15,31).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과 연민의 마음 또한 아들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유산이자 재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를 평가하거나 구분하는 도덕적, 사회적, 민족적, 종교적 조건 대신 또 다른 조건, 곧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온전한 선물이기에 그 누구도 없애거나 파괴할 수 없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환대를 받는,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자녀들이라는 조건(지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31일 주일, 모로코 사도적 순방의 마지막 일정으로 수도 라바트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복음에 이은 강론을 통해 교황은 ‘돌아온 탕자’ 이야기로 잘 알려진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에 관한 묵상을 함께 나눴다. 과거에도 그랬듯, 오늘날 우리에게 이 비유는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쉽게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비유다. 아버지는 어째서 상속받기도 전에 자기 몫의 재산을 요구해 가산을 탕진하고 허비한 작은아들을 애타게 기다렸을까? 아버지는 어째서 방종한 생활 끝에 돼지나 치는 신세가 되어 악취를 풍기며 돌아온 아들을 두 손 벌려 환영했을까? 아버지는 어째서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벌였을까? 아버지는 어째서 자신의 죄를 고하고 창피를 감수하고자 하는 아들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가로막았을까? 아버지는 어째서 아들을 가두고 그가 저지른 잘못에 합당한 속죄를 명령하는 등 재교육의 시간을 지시하지 않았을까? 우리라면 그렇게 했을 텐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없이 풍부하며 대가가 없는 하느님의 거룩한 자비의 메시지 안에서 찾을 수 있다. 하느님 앞에 우리는 순결하지도 불결하지도 않으며, 당신 품에 우리 스스로를 맡기기만 한다면 누구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고자 하실 뿐이다. 하느님께서는 죄악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으시며, 모든 용서의 기회를 찾고자 하신다. 하느님 자비의 이 거룩한 특징은 하찮은 우리 인간의 예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솔직해지자. 우리 모두는 작은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대가 없이 넘치는 사랑에 화가 난 큰아들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죄악의 구렁텅이에 떨어졌던 작은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그는 아버지의 식탁에 다시금 함께할 희망을 품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 집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라도 되고자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아버지는 작은아들을 꼭 껴안아 주고, 단지 아들이 벗어나려 했을 뿐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사랑을 받을 대상, 곧 아들로서 환영해주었다. 이는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과분한 대우다.

스스로를 우월하고 “바르다”고 여기며, “부정한” 죄인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우리 “맏이들”의 입장에서 이 ‘탕자의 비유’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위대한 가르침이 담겨있다. 이 복음 말씀에서 큰아들은 ‘되찾은’ 형제를 위한 잔치에 함께하도록 부르심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 무한한 자비에 함께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유산이자 재산임을 이해하도록 부르심 받은 것이다.

31 3월 2019, 0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