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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우리 마음은 전쟁 논리로 예수님께서 배척당하신 베들레헴에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24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를 거행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하느님이 살이 되신 땅, 지금도 “무기의 굉음으로 예수님께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하시는” 땅을 생각하며 미사를 거행했다. 교황은 “위로부터 힘을 과시하며 불의를 없애시는 게 아니라 아래로부터 사랑으로 불의를 없애시는” 하느님, “무한한 힘으로 나타나시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의 좁은 곳으로 내려오시어 우리 나약함을 감싸 안으시는” 평화의 임금님을 경배하자고 초대했다.

Antonella Palermo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은 엄격하고 횡포를 부리는 신이 독자적으로 행동한 결과가 아니라, 불의한 우리 안에 머물기 위해 오시는 의로운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의해 이뤄진 사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24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약 250명의 추기경, 주교, 부제, 사제와 함께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를 거행하며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강론했다. 이날 전례는 참회기도부터 전쟁에 대한 생각으로 시작됐다. “죄의 어둠과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는 우리는 위로와 기쁨의 주인이신 성령의 은총을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며 이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해 주시길 바라나이다.” 

역사의 임금님께서 작음을 택하십니다

이날 밤 미사는 화해와 정의를 기원했다. 말씀 전례는 이사야서부터 시편 96(95)편의 화답송에 이르기까지,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와 보편 지향 기도(“참평화를 주시는 분을 세상에 보내신 말씀의 아버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무기의 굉음을 잠재우시고 사람의 마음에 새로운 기쁨의 노래를 불러 일으켜 주소서”)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특히 절실하게 느껴지는 내용이 끊임없이 스며들어 있었다. 다음으로 루카복음 2장에 나오는 예수님 탄생의 배경을 설명하는 복음 구절이 이어졌다. 강론에서 교황은 하느님의 권세와 세상의 권세라는 두 가지 형태의 권위를 비교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황제가 호적등록을 위해 주민의 수를 세는 동안,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모르게 세상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과 함께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를 쓰지만, 역사의 임금께서는 보잘것없는 삶의 길을 택하십니다. 권력자 중 그 누구도 그분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 소수의 목자만이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약한 모습으로 세상에 들어오신 하느님

교황은 ‘호적등록’과 관련해 구약성경에서 ‘인구조사’가 “건전하지 못한 자만심”을 드러내는 행위였다고 설명했다(2사무 24,1-9 참조). 인구조사를 통해 다윗 왕은 칼을 다룰 수 있는 장정의 수를 알 수 있었으나, 이는 주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밤, 마리아의 태중에서 아홉 달을 보내신 ‘다윗의 자손’ 예수님께서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십니다. 그분께서는 인구조사에 대해 벌하시기보다 겸허하게 당신 자신을 호적에 등록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노와 징벌의 신이 아니라 살이 되시어 약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시는 자비로운 하느님을 보게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아기 예수 성상을 옮기는 프란치스코 교황
아이들과 함께 아기 예수 성상을 옮기는 프란치스코 교황

무기의 굉음으로 예수님께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하십니다

교황은 ‘온 땅에 대한 호적등록’이라는 세상의 논리가 “성공과 결과, 수치와 숫자로 모든 것을 측정하는 세상의 권력과 권세, 명성과 영광에 대한 추구, 성과에 집착하는 세상”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교황이 “성과에 대한 집착”이라고 부르는 이 악순환의 메커니즘엔 분쟁의 불씨를 지피는 사람들이 얽혀 있다. 

“오늘 밤, 우리의 마음은 베들레헴에 있습니다. 평화의 임금님께서 여전히 전쟁이라는 헛된 패배의 논리로 배척을 당하시는 곳, 오늘날에도 무기의 굉음으로 이 세상에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하시는 곳입니다.”

살이 되신 하느님인가요, 성과에 집착하는 신인가요?

교황은 이교도적 관점으로 하느님을 바라보며 성탄을 맞이하는 위험을 경고했다. 그것은 하느님을 “하늘에 계신 강력한 주권자, 곧 권력과 세속적인 성공, 소비주의 우상숭배와 연관된 신으로 생각하는” 위험이다. 교황은 “좋은 일에는 좋게 대하고 나쁜 일에는 화를 내는 냉혹하고 심술궂은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인간이 투영한 결과라며 “이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해악을 없애는 데만 유용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하느님께서는 마술 지팡이를 휘두르지 않으십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약속하는 상술의 신도 아니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버튼을 눌러 우리를 구원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고 감독하는 신, 엄격하고 강력하며 자신의 백성이 다른 이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을 생각합니다. 이러한 세속적인 생각이 얼마나 우리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요!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온 땅에 대한 호적등록이 진행되는 중에 모든 이를 위해 태어나셨습니다.”

성탄절 밤의 거룩한 미사 전례
성탄절 밤의 거룩한 미사 전례

하느님의 “포근한 사랑”과 “애틋한 사랑”

교황은 성탄의 신비를 설명하며 친밀함, 연민, 자비에 초점을 맞췄다. 교황은 대림시기 동안 이 세 가지를 여러 번 일깨운 바 있다. 교황은 이 같은 하느님의 방식이 성탄 분위기를 종종 뒤덮는 “지극히 감상적인 것과 세속적인 만족이 뒤범벅된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덧붙였다.

“그러므로 ‘살아 계신 참하느님’(1테살 1,9)을 바라봅시다. 인간의 모든 계산을 뛰어넘으시면서도 우리의 계산논리에 스스로 계산되도록 허락하신 그분을, 역사의 일부가 되시어 역사를 혁신하신 그분을, 우리가 당신을 거부하도록 허용하실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시는 그분을, 스스로 죄를 짊어지심으로써 죄를 없애시는 그분을, 고통을 없애시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는 그분을, 우리 삶에서 문제를 없애시는 게 아니라 문제보다 큰 희망을 주시는 그분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삶을 간절히 품어주려 하십니다. 그래서 무한하신 분이지만 우리를 위해 유한한 존재가 되시고, 크신 분이지만 우리를 위해 작아지길 택하십니다.”

슬퍼하지 마십시오

교황은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호적등록을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을 숫자로 생각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느님께 있어서 모든 이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열린 마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마음, 우울한 생각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을 찾는 데 관심을 두신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어쩌면 여러분은 이번 성탄절에 자신이 잘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한계와 좌절, 문제 해결에 대한 부족함과 불만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은 예수님께서 주도권을 잡으시도록 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너희를 위해 내가 살이 되었고, 너희를 위해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더 이상 슬픔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경배는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끝으로 교황은 “오늘 밤 사랑이 역사를 바꾼다”며, 너무 바쁘고 무관심한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고 성탄을 진정으로 경배하자고 초대했다. 

“경배는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시간을 하느님의 보금자리로 만드는 것입니다. 경배는 우리 안에 성육화의 씨앗을 꽃피우는 일, 누룩처럼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사업에 협력하는 일입니다. 경배는 중재하고, 회복하고, 하느님께서 역사를 바로잡으시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미사를 마친 다음 교황은 중앙 제대 앞쪽의 아기 예수 성상을 모시고 다양한 국적의 어린이들과 함께 성 베드로 대성전 측면에 위치한 피에타 경당에 마련된 성탄 구유 쪽으로 이동했다. 부제가 아기 예수 성상을 교황으로부터 받아 구유에 모셨다. 그곳에서 교황은 잠시 기도했다. 아이들은 교황과 인사를 나눴고, 교황의 축복을 받았다. 주님 성탄이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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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2월 2023, 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