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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폭력을 낳지만, 단순한 ‘고마워요’가 평화를 되찾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0월 8일 연중 제27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묵상했다. 교황은 우리가 “혼자 힘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느님께서 거저 베푸신 데서 좋은 것이 나온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 “사랑도 구원도 필요치 않고” 오로지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시기와 불만을 불러 일으켜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은 슬픈 결말로 끝나는 극적인 비유(마태 21,33-43 참조)를 들려줍니다.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고 잘 돌보았습니다. 그러다 떠날 일이 생겨 포도밭을 소작인들에게 맡겼습니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종들을 매질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자기 아들을 보냈고 그들은 그 아들마저 죽여 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이 비유에는 예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밭 임자는 사랑으로 모든 일을 잘 처리했습니다. 앞장서서 열심히 일하고, 포도원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습니다(33절 참조). 그런 다음 그는 포도밭을 농부들에게 맡기고 자신의 귀중한 재산을 그들에게 임대로 내어주어 포도밭이 잘 가꾸어지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그들을 공정하게 대우했습니다. 이러한 전제를 감안할 때 포도 수확은 잔치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수확물을 공평하게 나누면서 행복하게 마무리됐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소작인들의 마음속에는 ‘감사할 줄 모르는 탐욕스러운’ 생각이 스며들었습니다. 갈등의 근원에는 무언가를 재빨리 차지하려는 탐욕스러운 생각과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이 항상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우리는 주인에게 아무것도 줄 필요가 없다. 우리 노동의 결실은 우리만의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셈을 할 필요가 없다!” 소작인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것과 대우받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이 탐욕을 불러일으키고, 점차 반발심이 생겨나면서 현실을 왜곡된 방식으로 보게 되었고, 자신들에게 할 일을 맡긴 주인에게 빚을 졌다고 느끼기보다는 주인이 빚을 졌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소작인의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됩니다.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38절). 그들은 농부에서 살인자로 변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 과정은 사람들의 마음, 심지어 우리 마음속에서도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사람이 혼자 힘으로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하고 감사하는 법을 잊어버려 삶의 근본적인 현실, 곧 좋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 하느님께서 거저 베푸신 데서 나온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일깨워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거저 베푸신다는 점을 잊어버리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사랑받고 구원받았다는 기쁨이 아니라 사랑도 구원도 필요치 않다는 슬픈 착각에 빠져 자신의 상황과 자신의 한계를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받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지 않고 자기 탐욕의 포로,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해야 하고 남들보다 더 눈에 띄고 싶어하는 욕망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좋지 않으며 많은 경우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바로 여기서 많은 불평과 불만, 많은 오해와 시기심이 나옵니다. 그리고 원망에 사로잡혀 폭력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이 폭력을 낳고, 우리에게서 평화를 앗아가며, 평화가 없는 상태에서 말을 하고 소리를 지르게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평화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봅시다. 나는 삶과 신앙을 선물로 받았음을 깨닫고 있는가? 나 자신이 선물임을 알고 있는가? 나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에서 온다고 믿는가? 나는 공로 없이도 이러한 것들을 받은 사람임을, 거저 사랑받고 구원받았음을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가? 나는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고마워요’, ‘~해도 될까요?’, ‘미안해요’ 이 세 가지 표현은 인류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고마워요’, ‘~해도 될까요?’, ‘미안해요’ 이 세 가지 말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고 있나요? 별것 아닌 말입니다. “고마워요”는 정말 사소한 말 한마디입니다. “~해도 될까요?”는 허락을 청하는 사소한 말 한마디, “미안해요”는 우리가 매일 하느님과 형제자매들에게 용서를 기대하는 말 한마디입니다. 혹시 “고마워요”, “~해도 될까요?”, “미안해요”라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우리 삶 속에 있는지 자문해 봅시다. 나는 감사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나는 사과하고 용서를 청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나는 간섭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 법, “~해도 될까요?”라고 말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고마워요, 미안해요, ~해도 될까요?

당신의 영혼으로 주님을 찬양하신 성모님, 날마다 감사하는 마음을 저희 마음속을 밝히는 빛으로 삼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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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10월 2023, 14:03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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