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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기도 “죽음의 씨앗을 심고 미래를 앗아가는 전쟁의 광기를 거부하게 하소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10월 27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평화를 위한 단식과 기도와 참회의 날’ 예식에서 폭력으로 점철된 세상에 평화를 달라고 기도했다. 교황은 “분쟁의 밤에 한 줄기 빛을 비추시는” 성모님께 온 인류를 의탁했다. “증오에 갇힌 이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시고, 갈등과 분쟁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이들의 마음을 돌려 주소서. 이 시간에도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소서.”

Salvatore Cernuzio

분열로 인한 상처와 증오의 독으로 갈가리 찢긴 “혼란에 빠진” 세상, “미래를 앗아가는” “전쟁의 광기”로 갈라진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 곧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위한 기도가 피어올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시 한번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의 발치로 돌아와 과거 시리아, 아프리카,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현재 이스라엘 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폭력사태를 바라보며 “어머니”께 평화의 은총을 간구했다. “분쟁으로 갈가리 찢기고 무기로 황폐화된 이 시대”의 절박함 속에 바친 기도였다. 

교황은 지난 10월 15일 삼종기도 훈화에서 예고한 대로 10월 27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단식과 기도와 참회의 날 예식을 거행했다. 총성을 멈추고 “각국 지도자들에게 평화의 길”을 고취하려는 취지로 거행된 이날 예식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하느님 백성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하느님 백성과 함께 기도하며

바티칸 성가대가 노래하는 가운데 휠체어를 타고 성 베드로 대성전에 도착한 교황은 곧바로 성모 성화 앞으로 이동해 잠시 동안 묵상했다. 이어 교황은 교회의 교부들에 대한 묵상으로 어우러진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를 바치는 데 함께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의 희미한 조명 속에 성 베드로 성상이 밝게 빛나고 있었고, 성상 앞쪽의 하얀 의자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베드로의 후계자(교황)만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교황 옆쪽에는 항상 양떼를 따라다니는 목자처럼 약 4000명의 신자, 주교, 추기경 및 시노드 총회 대의원들도 있었다. 교황의 평화를 위한 단식과 기도와 참회 요청에 응한 각 대륙의 신자들도 기도 안에서 교황 가까이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기도하고, 가자지구에서 기도하며, 키이우에서,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마을에서 기도했다. 피로 물든 땅에서 이들은 오늘 예식의 주제인 “모든 시대의 인류가 깊이 갈망하는 지상의 평화”(성 요한 23세 교황, 회칙 「지상의 평화」 머리말 참조)를 하느님께 간구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기도를 바치는 교황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기도를 바치는 교황

세상을 갈라놓는 전쟁

교황은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며 인류의 고통과 희망의 대변자로 연설을 시작했다.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굽어 보소서! 저희는 성모님 앞에 와 있습니다.” 이어 “우리의 고통과 상처”를 잘 알고 계신 성모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바쳤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 당신께서는 세상을 갈라놓는 전쟁으로 고통받고 분쟁에 시달리는 수많은 자녀들을 보시며 저희와 함께 그리고 저희를 위해 괴로워하고 계시나이다. 지금은 어둠의 때, 어둠의 때이옵나이다. 어머니, 이 어둠의 때에 저희는 당신의 빛나는 눈에 우리 자신을 담고, 저희의 문제를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이시는 당신의 마음에 저희 자신을 의탁하나이다.”

모든 이의 생명 돌보기

지금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시대다. 그것은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몸소 삶으로 겪으시고 그 앞에서 물러서지 않은 것들이다. 교황은 “결정적인 순간에 성모님이 앞장서신다”며 기도했다. “이제 어머니, 다시 한번 저희를 위해 앞장서 주소서. 평화의 길을 잃고, 아벨보다 카인을 더 좋아하며, 형제애를 상실해 더 이상 가족의 정취를 찾아볼 수 없는 인류 가족을 자애로운 눈으로 굽어 보소서.”

“위험과 혼란에 처한 저희 세상을 위해 중재해 주소서. 생명, 곧 모든 인간의 생명을 환대하고 돌보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죽음의 씨앗을 심고 미래를 앗아가는 전쟁의 광기를 거부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과 함께 바치는 묵주기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과 함께 바치는 묵주기도

평화를 위한 책임

교황은 성모님께서 여러 차례 기도와 참회를 당부하셨지만 우리가 “우리의 필요에 사로잡히고 세상의 많은 관심사에 정신이 팔려 성모님의 초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저희를 사랑하시는 성모님께서는 저희를 사랑하는 데 지치지 않으시나이다.” 교황은 “저희 손을 잡아 주소서, 저희 손을 잡아 주소서”라고 두 번 반복하며 간구했다. “저희가 교회 안에서 일치를 지켜나가면서 세상에서 친교의 장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희 역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시고, 평화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소서. 저희가 온 인류를 위해 기도하고 간구하며, 하느님께 경배하고 보속하도록 부름받았음을 알게 하소서.”

아이들의 눈물

교황은 성모님의 품 안에 인류의 모든 나약함을 의탁했다. “저희 혼자서는 할 수 없나이다. 저희는 당신 앞에서 당신의 티 없이 깨끗하신 성심 안에서 피난처를 찾나이다.” 그 성심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 후인 지난 2022년 3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봉헌했던 바로 그 성모 성심이다. 

“자애로운 어머니, 저희가 자비를 청하나이다. 평화의 모후, 저희가 평화를 청하나이다! 증오에 갇힌 이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시고, 갈등과 분쟁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이들의 마음을 돌려 주소서. 이 시간에도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소서. (...) 외로운 이들과 노인을 도우시고, 부상자와 병자를 부축하시며, 고국과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야 했던 이들을 보호하시고, 낙담한 이들을 위로하시며, 희망을 다시 일깨워 주소서.”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분쟁의 밤에 한 줄기 빛을 비추소서”

끝으로 교황은 성모님께 “우리 실존의 모든 것,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의 전부를 영원토록” 봉헌했다. 아울러 “화합의 표징이자 평화의 도구”가 되도록 교회를 봉헌했다. 또한 전 세계, 특히 “전쟁 중인 국가와 지역”을 봉헌했다. 

교황은 “구원의 여명이시며 분쟁의 밤에 한 줄기 빛을 비추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자 “성령의 궁전”이신 성모님께 “각국 지도자들이 평화의 길로 나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모든 민족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화해를 이루게 하소서. (...) 악의 유혹에 빠져 권력과 증오에 눈이 먼 당신의 자녀들이 화해를 이루게 하소서.”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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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0월 2023, 0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