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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자리를 내어드리면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0월 15일 연중 제28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과의 친교와 우리 사이의 친교를 나누라고 부르시지만, 그 초대에 응할지 말지는 우리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느님께서는 제안하시지, 절대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교황은 “미사에 참례하고,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약하거나 가난한 이들을 돕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면서” 하느님께 바치는 시간은 “우리를 악에서, 외로움에서, 의미상실에서 구원하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은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준비하는 어떤 임금에 대해 들려줍니다(마태 22,1-14 참조). 그는 권력자이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사람들을 초대하는 너그러운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러한 그의 초대 방식이 거절당할 가능성에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고 모든 이를 초대한다는 점에서 마음의 선함을 드러냅니다. 이를 주목합시다. 곧, 그는 혼인 잔치를 준비하고 만남과 축제의 기회를 ‘기꺼이’(gratuitamente) 제공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시는 잔치입니다. 그분과 친교를 이루고 우리 사이의 친교를 이루는 잔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초대를 받은 손님’입니다. 그러나 혼인 잔치는 우리가 시간을 내어 참여하도록 요구합니다. 주님의 초대에 가겠다는 우리의 “예”라는 응답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초대하시지만, 우리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마련하시는 관계의 유형입니다.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당신과 함께 머물도록 부르시되,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남겨 두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제안하십니다. 이 관계는 반드시 우리의 자유로운 동의를 조건으로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매우, 매우 존중하십니다. 이와 관련해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매우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대 없이 그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대 없이 그대를 구원하지 않으십니다”(「설교집」, 169,13).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자유를 전적으로 존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제안하시지, 절대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다시 비유로 돌아갑시다. 성경 본문에 따르면 “임금은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으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3절 참조)고 합니다. 여기에 이야기의 핵심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께 대한 “아니오”, 하느님께 대한 “거부”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그분의 초대를 거절했을까요? 혹시 탐탁지 않은 초대라서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5절). 그들은 자기 일만 신경쓰기 때문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이신 임금, 하느님이신 그 임금이 어떻게 했나요? 그 임금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초대합니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 중에 그 초대를 받아들이는 누군가를 찾을 때까지 초대를 이어 나갑니다. 별다른 일이 없는 그들 중 많은 이가 잔칫방을 가득 채웠습니다(8-10절 참조).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일에만 몰두하느라 하느님의 초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는 종종 ‘자유’(libero) 시간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libera) 시간, 곧 하느님께 바쳐야 할 시간을 찾으라고 초대하십니다. 우리 마음을 밝혀주고 치유하는 시간, 우리 안에 평화와 신뢰와 기쁨을 자라게 하는 시간, 우리를 악에서, 외로움에서, 의미상실에서 구원하는 시간 말입니다. 주님과 함께 머물고 그분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따라서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하나요? 미사 참례와 하느님 말씀 경청과 기도 안에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또한 자선활동을 통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약하거나 가난한 이들을 돕고, 외로움에 시달리는 이들과 함께하며, 관심이 필요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함으로써 궁핍한 이들 안에 계시는 주님과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일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여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냅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이런 일이 슬픔을 낳습니다. 얼마나 슬픈 마음이 많은지 모릅니다!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하느님의 초대에 어떻게 응답하는가? 나는 그분께 내 일상에서 어떤 자리를 내어드리고 있는가? 내 삶의 질은 나의 일과 자유 시간에 달려 있는가, 아니면 주님과 형제자매들에 대한 사랑, 특히 가장 궁핍한 이들에 대한 사랑에 달려 있는가?

“예”라는 응답으로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드리신 성모님, 저희가 하느님의 초대에 귀머거리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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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0월 2023, 00:02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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