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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선원 및 이주민을 기리는 기념비에서 추모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종교 지도자들 마르세유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선원 및 이주민을 기리는 기념비에서 추모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종교 지도자들  (Vatican Media)

교황 “지중해는 형제애냐 무관심이냐 택하는 갈림길”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22일 프랑스 마르세유 사도 순방 첫날 지중해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했다. 교황은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선원 및 이주민을 기리는 기념비를 찾아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은 숫자가 아니”라며 “성과 이름, 얼굴과 사연이 있는 이들”이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그들의 삶은 산산조각 났으며, 그들의 꿈은 부서졌습니다.” 아울러 이들을 구하는 것이 인류와 문명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또한 새로운 인본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한 고(故) 다비드 사솔리 유럽의회 전 의장의 말을 인용했다.

Francesca Sabatinelli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22일 마르세유 사도 순방에서 바다에서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한 이들을 모른 체하지 않고 구하는 것은 “인류의 의무이자 문명의 의무”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또한 마르세유의 모든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난파선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마음을 담아 경의를 표했다. 아울러 지중해는 “생명의 원천”인 동시에 “죽음을 초래하는 난파선의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라며,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선원 및 이주민을 기리는 기념비 앞에서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다. “난파선을 사회면 뉴스 기사로,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숫자로만 생각하는 데 익숙해지지 맙시다.”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성과 이름, 얼굴과 사연이 있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삶은 산산조각 났으며, 그들의 꿈은 부서졌습니다. 희망에 부풀었으나 두려움에 떨며 목숨을 잃은 수많은 형제자매를 생각합니다. 이러한 비극을 마주할 때 우리는 말이 아닌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인류애가 필요합니다. 곧, 침묵과 눈물, 연민과 기도입니다.”

지중해, 인간의 존엄성이 묻힌 공동묘지

교황은 참석한 모든 이에게 파도 속에서 생명을 잃은 이들을 기억하는 침묵의 순간을 갖자고 초대했다. “그들의 비극을 생각하며 잠시 묵념합시다.” 이어 “분쟁과 빈곤, 환경재앙을 피해 더 나은 미래를 찾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이 지중해의 파도 속에서 끝내 죽음을 맞았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이 찬란한 바다는 거대한 공동묘지가 됐습니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형제자매가 무덤에 묻힐 권리조차 없습니다. 묻힌 것은 인간 존엄성뿐입니다.”

문명의 갈림길에 선 인류

교황은 언젠가 다른 데서 인용한 바 있는, 자신이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신앙고백 서적 『아우』(Hermanito)에서 주인공 젊은이가 고향을 떠난 남동생을 찾으려고 기니에서 유럽으로 떠났을 때 했던 말을 언급했다. 그는 남동생이 지중해를 건너다 익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다 위에 앉아 있으면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한쪽에는 삶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친구 여러분, 우리도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한쪽에는 인류 공동체를 선으로 풍요롭게 하는 형제애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지중해를 피로 물들이는 무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문명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인류애와 형제애의 문화로 갈 것인지, 아니면 무관심의 문화로 갈 것인지 택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저마다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선원 및 이주민을 기리는 기념비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선원 및 이주민을 기리는 기념비

물에 빠진 이를 구하는 일은 인류와 문명의 의무입니다

교황은 “인간을 사고파는 물건처럼 취급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감금하고 고문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강력히 규탄하면서 “우리가 그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면 그들은 감금되고 고문당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혐오스러운 인신매매와 무관심의 광신주의로 인한 난파선의 비극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무관심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풍랑으로 익사할 위험에 처한 이들을 반드시 구조해야 합니다. 이는 인류의 의무이자 문명의 의무입니다!”

믿는 이들이 환대의 모범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교황은 다양한 종교 대표들이 문명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면서 “땅이든 바다든” 가장 약한 이들을 돌보고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두려움과 무관심을 극복할 수 있다면” 천상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경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고아와 과부와 이주민과 외국인’을 잊지 마십시오. 고아와 과부와 외국인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호하라고 보내신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상호 환대와 형제적 환대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극단주의라는 좀벌레와 공동체의 실생활을 병들게 하는 근본주의라는 이념적 역병 등으로 종교 단체 간 관계는 종종 순탄치 않은 길을 갑니다.”

종교들은 평화의 모자이크화를 이룹니다

교황은 “통합의 모델”인 마르세유조차도 “다양한 종교 다원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만남이냐 대립이냐”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전자를 택한 이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인류의 발전과 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여러분의 연대와 구체적인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이주민들과 함께 다양한 현실을 살펴보고 종교 간 대화에도 참여한 쥘 이삭의 말을 인용했다. 교황은 60년 전 선종한 프랑스의 유다교 역사가 겸 전후 유다-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위대한 옹호자, “대화의 선구자이자 증인”이었던 쥘 이삭을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분이 미래의 마르세유입니다. 마르세유가 프랑스와 유럽, 그리고 전 세계에 ‘희망의 모자이크 조각’이 될 수 있도록 낙심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교황은 고(故) 다비드 사솔리 유럽의회 전 의장을 떠올리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지난 2022년 선종한 그는 바리에서 열린 지중해 회의에서 유럽연합과 모든 시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중해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인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하나 되어 이 문제들에 직면하고, 희망을 난파시키지 말고, 평화의 모자이크화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이주민을 구조하기 위해 바다로 가는 많은 분들을 이 자리에서 뵙게 돼 기쁩니다. 그런데 때론 바다로 나가는 일을 가로막는 이들이 있습니다. 배에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면서요.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부족하다고들 합니다. 이는 ‘형평성’을 빌미로 우리 형제자매들을 혐오하는 행위입니다. 여러분의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아블린 추기경의 규탄

마르세유대교구장 장마르크 아블린 추기경은 이주민을 위한 기억의 장소를 찾아준 것뿐 아니라 이주민을 위해 용감하게 변호한 교황에게 따뜻한 감사를 전했다. 또한 불행과 전쟁을 피해 도망친 남성과 여성, 아이들을 “낡고 위험한 배”에 태우고 약탈하며 목숨을 앗아간 범죄행위를 규탄했다. 아블린 추기경은 “비정부기구와 난파된 이들을 구조하려고 이 해역을 항해하는 선박들을 정부기관이 금지한다면 심각한 범죄이자 국제해양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번역 안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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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9월 2023, 0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