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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브란디조에서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꽃다발 5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브란디조에서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꽃다발  (ANSA)

교황 “우리는 산재사고에 익숙해지면 안 됩니다. 인명은 이윤과 맞바꿀 수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11일 이탈리아전국산업재해장애인협회(ANMIL) 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직장 내 안전보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위장 돌봄’(care washing) 세태를 비판했다. 교황은 “우리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라고 강조했다.

Antonella Palermo

“일터에서 안전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일터에서 비극적인 사고를 경험할 때만 직장 내 안전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토리노 인근 브란디조에서 작업 도중 열차에 치여 5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사고가 발생한 지 몇 시간 후 몽골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며 ‘직장 내 사망사고’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당시 교황은 노동자가 신성한 존재이며 이러한  비극과 재난, 불의가 언제나 돌봄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교황은 9월 11일 사도궁 클레멘스 홀에서 창립 80주년을 맞이하는 이탈리아전국산업재해장애인협회(ANMIL, 이하 산재협회) 회원 300여 명을 만난 자리에서 원고를 잠시 내려놓고 브란디조 지역에서 “작업 도중 열차에 치여 사망한” 노동자들을 직접 기억하며 직장 내 안전 문제를 언급했다. 

교황은 이날 연설을 통해 일터에서 벌어지는 비극의 원인이 노동의 비인간화라고 지적하며, 규칙을 존중하고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모든 무력분쟁은 장애인을 낳습니다

교황은 산재협회가 창립된 1943년이 제2차 세계대전 시기와 맞물려 있다고 떠올리며 “전쟁이라는 어리석음의 끔찍한 결과”, 곧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결과를 나열하며 자신의 성찰을 심화했다. “모든 무력분쟁은 장애인을 낳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쟁이 끝나도 그 잔해는 몸과 마음에 남게 됩니다. 가장 취약하고 불리한 이들의 생명과 존엄성을 보호하고 증진함으로써 날마다, 해마다 평화를 재건해야 합니다.”

장애인의 완전한 존엄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황은 여러 차례 ‘감사’를 되풀이하며 장애인들의 권리, 특히 여성과 청년의 권리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우선 산재 희생자, 목숨을 잃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아내와 아이들을 보호하고 대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전히 너무 많은 사망자와 재해사고가 발생하는 직장 내 안전 문제에 높은 관심을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장 내 사고와 그로 인해 장애를 얻게 된 이들의 직업재활에 대한 민법 개정을 촉진하는 사업에 감사합니다. 사실 이는 다양한 형태의 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적절한 복지와 사회보장을 보장하고, 그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주고 그들의 존엄을 온전히 인정하도록 보장하는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특히 여성과 청년을 위해 사고예방과 안전정책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 주신 데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산재장애인과 인사를 나누는 교황
산재장애인과 인사를 나누는 교황

기술발전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그치지 않습니다

교황은 안전한 일터와 근무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직장 내 비극이 그치지 않는다며 한탄했다. “때로는 전쟁 통보를 듣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노동이 비인간화될 때, 인간이 공동체를 위해 성취감을 느끼는 도구가 아니라 이윤을 위한 혹독한 경쟁의 장이 될 때 발생합니다. 사람이 목표가 아니라 생산이 목표가 될 때 비극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생산을 위한 기계로 전락하고 맙니다.”

직장 내 안전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같습니다

교황은 직장 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분야로 교육 의무를 꼽았다.

“친구 여러분, 여러분 앞에 놓인 교육과 훈련 과제는 직원과 고용주 그리고 사회 모두에게 여전히 중요합니다. 일터에서 안전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일터에서 비극적인 사고를 경험할 때만 직장 내 안전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시장의 우상숭배를 넘어서야 합니다

교황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언급하며 무관심을 조장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노동계에서 때때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시장의 우상숭배에 전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직장 내 사고에 익숙해질 수 없으며 사고에 대한 무관심에 체념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인명을 경시하면 안 됩니다. 사망과 부상은 관련 기업이나 가족은 물론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처참한 사회적 빈곤입니다. 우리는 같은 인류라는 이름으로 돌봄의 기술을 배우고 다시 배우는 데 지쳐서는 안 됩니다. 사실 안전은 반드시 시행돼야 하는 좋은 법안으로만 보장되는 게 아니라 일터에서 형제자매로 살아갈 수 있는 역량에 의해서도 보장됩니다.”

산재장애인을 위로하는 교황
산재장애인을 위로하는 교황

인류는 “예배의 장소”이고, 몸은 버려질 수 없습니다

교황은 성 바오로 사도가 몸을 ‘성령의 성전’이라고 말한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더 정교하게 영적 묵상으로 연설을 이어갔다. 교황은 만일 몸이 성령의 성전이라면 “육신의 연약함을 돌봄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는 “예배의 장소”이며, 몸을 돌보는 것은 우리가 창조주의 활동에 협력하는 태도다.

“더 큰 이익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근무시간을 요구함으로써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여러 가지 보험이나 안전요건에 투입되는 경비를 불필요한 비용과 수입손실로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위장 돌봄’은 안 됩니다

교황은 연설 말미에 “추악하다”고 정의한 “위장 돌봄”(care washing)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런 일은 고용주나 입법자가 노동안전에 투자하는 비용 대신 “일종의 자선활동을 통해 양심을 씻어내는 일을 선호할 때” 발생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다른 모든 것보다 대중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를 우선시하여 문화나 스포츠 분야, 예술작품이나 종교건축물 관람을 용이하게 하는 후원자로 자처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 박사이자 위대한 교부인 이레네오 성인이 가르치는 것처럼 ‘하느님의 영광은 바로 살아 있는 사람’(리옹의 성 이레네오, 『반이단론』, IV, 20,7)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노동자를 책임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생명을 사고 팔 수는 없습니다. 특히 가난하고, 위태롭고, 취약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기계 부품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인간입니다. 많은 경우 몇몇 노동자는 기계의 부품처럼 취급됩니다.”

교황은 노동자와 불구자 그리고 장애인의 주보성인 요셉 성인에게 그들을 의탁하며 다음과 같이 연설을 마무리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동체를 위한 선물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다치거나 장애인이 된다면 사회 전체에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사도궁 클레멘스 홀에서 이탈리아전국산업재해장애인협회(ANMIL) 회원들을 만나는 교황
사도궁 클레멘스 홀에서 이탈리아전국산업재해장애인협회(ANMIL) 회원들을 만나는 교황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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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9월 2023, 0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