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성 마태오 사도 축일에 사제 성소를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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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53년 9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제 성소가 탄생했다. 당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는 열일곱 살이었고, 아르헨티나에서는 ‘학생의 날’이었으며,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통해 회심하고 사도로 부름받은 세리인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을 지내는 날이었다. 교황은 그 특별한 날에 일어난 일을 직접 들려준 바 있다.
“성 마태오 사도 축일 축제에 가던 중 제가 다니던 본당에 들렀는데, 거기서 처음보는 사제를 발견하고 고해성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체험은 저에게 있어 만남의 체험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왜 그곳에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신부님이 계셨고, 왜 제가 고해성사를 해야겠다고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누군가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습니다. 고해성사 이후 저는 뭔가 변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저는 사제가 돼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이러한 신앙 체험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찾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 그분께 가야한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그분께 갔을 때 그분은 벌써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먼저 기다리고 계십니다. 스페인어로 이를 잘 설명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먼저’(primerea, 프리메레아)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먼저 기다리십니다’(Il Signore sempre ci primerea). 그분께서 우리를 먼저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는 참으로 큰 은총입니다.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분을 찾아가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은 죄인으로 그분께 가지만,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용서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성령 강림 대축일 전야 기도 강론, 2013년 5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성소는 하느님 자비의 체험에서 나왔다. 그의 주교 모토이자 교황 모토가 바로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사실 이 모토는 마태오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는 복음 이야기에 관한 8세기의 사제 베다 성인의 강론에 나오는 말씀이다.
교황은 로마에 위치한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 자주 들러 그곳에 있는 카라바조의 작품 ‘성 마태오의 소명’에 대한 묵상을 여러 차례에 걸쳐 즐겨 언급하곤 했다.
“예수님께서는 고을을 지나가시다가 중풍 병자를 고치십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세리를 보십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마태오라는 사람을 보셨다’(마태 9,9 참조)고 말합니다. 그는 어디에 있었나요? 그는 세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일을 하는 세리 중 한 명이었습니다. 세리들은 매국노로 취급받고 멸시를 받았습니다. 마태오는 그러한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시선을 느낍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말합니다. ‘나를 따라라.’ –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그런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바로 예수님 눈길의 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마태오를 큰 사랑으로, 큰 자비로 바라보셨을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그 눈길과 함께 ‘나를 따라라’ 하는 음성이 들립니다. 반면 마태오는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한쪽 눈으로는 하느님을 바라보고, 다른 눈은 돈 위에 고정돼 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돈에 고정된 시선이고, 또한 성가시고 언짢은 표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사랑스럽고 자비롭습니다. 그래서 돈을 원했던 – 돈의 노예였던 – 마태오의 저항은 무너집니다. 복음은 마태오가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고 말합니다. 자비와 죄 사이의 투쟁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의 사랑이 어떻게 마태오의 마음에 들어갔을까요? 그 사랑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무슨 문이었을까요? 마태오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구원받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느끼는 것이고, 치유받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아프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끼는 것이 자비로운 눈길을 받기 위한 첫 번째 조건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신부님, 그런데 죄인이라고 느끼는 것이 정말 은총인가요?’ 그렇습니다. 진실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이것 때문에 죄인이다’라며 추상적으로 죄인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죄, 구체적인 죄들로 인해 죄인으로 느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많은 죄를 안고 살아갑니다. 죄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께서 사랑 가득한 자비로운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시도록 합시다”(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2017년 9월 21일).
교황은 자신이 마태오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카라바조의 작품 ‘성 마태오의 소명’을 보면,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마태오를 가리키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 느낌도 그렇습니다. 마태오의 몸짓이 저를 놀라게 합니다. 그는 돈을 움켜쥐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오, 저는 아닙니다! 안 됩니다. 이 돈은 제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당신의 자비의 눈길로 바라보신 죄인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황직 선출을 수락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무한한 인내를 믿고 참회의 정신으로 받아들입니다’(Peccator sum, sed super misericordia et infinita patientia Domini nostri Jesu Christi confisus et in spiritu penitentiae accepto)”(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와의 인터뷰, 2013년 8월 19일).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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