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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교양지 「치빌타 가톨리카」와 조지타운 대학이 주관한 ‘가톨릭적 상상력의 글로벌 미학’ 컨퍼런스에 참가한 이들을 만나 연설하는 교황 예수회 교양지 「치빌타 가톨리카」와 조지타운 대학이 주관한 ‘가톨릭적 상상력의 글로벌 미학’ 컨퍼런스에 참가한 이들을 만나 연설하는 교황   (VATICAN MEDIA Divisione Foto)

교황, 시인과 작가에게 “교회는 여러분의 재능을 필요로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5월 27일 예수회 교양지 「치빌타 가톨리카」와 조지타운 대학이 주관한 컨퍼런스의 참가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인 작업을 전개하는 이들에게 “인류의 삶이라는 신비를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전망을 제시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울러 상상력을 편협한 차원으로 길들이지 말고 인류가 꿈을 꾸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Amedeo Lomonaco / 번역 박수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5월 27일 미국 영화감독 겸 제작자 마틴 스코세이지를 비롯해 시인, 작가, 시나리오 작가 등 여러 작가들을 만났다. 이들은 최근 ‘가톨릭적 상상력의 글로벌 미학’을 주제로 바티칸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많은 시인과 작가들을 사랑했다고 털어놓으며 단테와 도스토옙스키를 언급했다. 아울러 아르헨티나 산타페의 인마콜라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던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또한 문학과 시의 가치는 결코 자신의 삶에서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작가들의 말은 저 자신과 세상,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음은 물론 인간의 마음과 제 개인적인 신앙생활, 심지어 지금도 저의 사목활동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문학적인 말은 마음의 가시와 같아서 우리를 묵상에 잠기게 하고 여행을 떠나게 합니다. 시는 열려 있고,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줍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 저는 여러분이 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바라보기와 꿈꾸기

교황은 예수회 교양지 「치빌타 가톨리카」와 조지타운 대학이 주관한 컨퍼런스의 참가자들에게 예술가의 시선은 두 가지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라고 말했다. “예술가는 바라보는 눈이자 꿈을 꾸는 눈입니다.”

“보기도 하지만 꿈을 꾸는 눈입니다. 우리 인간은 눈으로 완전히 볼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고, 그것을 찾아나서고, 꿈을 꿉니다. 중남미의 한 작가는 우리에게는 두 개의 눈이 있다면서 하나는 살로 된 눈이고 다른 하나는 유리로 된 눈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살의 눈으로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보고, 유리의 눈으로는 우리의 꿈을 봅니다. 꿈을 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행합니다!”

경청하는 눈

교황은 예술가를 “눈으로 보는 동시에 꿈을 꾸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그들은 “더 깊이 보고 (...) 우리 눈앞에 있는 것들을 보고 이해하는 다른 방식”을 구체화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들이다. 교황은 “시대의 목소리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뽑아내는 데 있어” 시가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프랑스의 시인 겸 극작가 폴 클로델의 말을 빌리자면, 여러분의 눈은 ‘경청하는 눈’입니다. 경청하는 눈! 예술은 계산적이고 획일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해독제이며, 우리의 상상력, 만물을 보고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은 그 자체가 예술적 도전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재능을 통해 저항하고 호소하고 부르짖는 언어로 표현하도록 부름받은 ‘혁명적’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저항하고 호소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독창적 재능을 필요로 합니다!”

시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모아들입니다

교황은 시인, 작가, 시나리오 작가, 감독들이 종종 “마음 깊은 곳에 묻힌”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예술적 영감이 삶의 아름다운 현실과 비극적인 현실을 모두 보여주기 때문에 위안과 불안을 동시에 안겨주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하인의 아들인 어린아이가 돌을 잘못 던져 주인이 아끼던 개의 다리를 다치게 한 이야기를 생각해 봅시다. 그러자 주인은 사냥개들을 풀어 아이에게 덤벼들게 합니다. 아이는 도망쳐서 개들의 맹렬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구하려고 하지만 결국 주인인 장군의 만족스러운 눈빛과 어머니의 절망적인 눈빛 아래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 장면은 엄청난 예술적, 정치적 힘을 간직하고 있으며, 전쟁이나 사회적 갈등, 우리 각자의 이기심 등 과거와 현재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닫힌 경계를 넘어

교황은 “인생에는 때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거나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것이 바로 작가들의 “비옥한 땅”이자 “고유한 활동영역”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우리가 종종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이기도” 하며, 언제나 “매우 넘쳐나는” 체험이다.

“물이 계속 채워지다가 잠시 후 가득 차고 넘치는 물통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오늘 여러분께 요청드리고 싶은 바입니다. 곧, 정해진 경계를 넘어서는 것, 자기 자신과 인류의 실존적 불안에 길들여지지 말고 창의력을 발휘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길들여지는 과정을 우려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창의성을 앗아가고 시를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시어로 인간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실존적 불안의 열망을 모아들여 차가워지거나 꺼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조화와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교황은 인간의 마음을 밝혀주는 이 같은 작업을 통해 “성령께서 활동하실 수 있게 된다”며 “인간 삶의 긴장과 모순 속에서 조화를 이루게 하고, 선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끊임없이 타오르게 하며, 모든 형태의 아름다움, 이를테면 예술에서 특권적인 표현을 발견하는 아름다움의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시인, 작가, 감독, 예술가들로서 여러분의 소임은 인류가 경험하고, 느끼고, 꿈꾸고, 고통받는 모든 것에 생명과 살, 말을 부여해 조화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이 복음적 작업은 또한 인류의 위대한 시인이신 하느님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이 비판을 받을까요? 비판을 받아도 됩니다. 비판의 부담은 감수하되, 비판에서 무언가를 배우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러나 독창성과 창의성은 잃지 마십시오. 살아 있다는 경이로움을 놓치지 마십시오.”

교황은 꿈을 꾸는 눈이자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대변하는 목소리인 시인, 작가, 감독, 예술가들이 “우리의 상상력을 빚어내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 시대 사람들의 영적 상상력, 특히 그리스도의 형상에 관한 영적 상상력에 영향을 미치는” 작업을 전개하는 이들이라고 덧붙였다.

“여러분의 작업은 우리가 예수님을 보고, 그분의 얼굴을 가리거나 더 심하게는 그분을 길들이려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의 상상력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길들이고, 그렇게 그분을 정의하며 우리의 선입견에 가두는 것은 그분의 형상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놀라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더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틀에 맞춰 벽에 전시하려고 할 때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벗어나는 신비입니다.” 

주님의 놀라움에 마음을 여십시오

교황은 사전에 준비한 원고를 잠시 내려놓고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놀라게 하신다”며 “주님께서 우리를 놀라게 하신다고 느끼지 않으면 뭔가 잘못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고 닫히게 됩니다.” 끝으로 교황은 “우리 시대의 가톨릭적 상상력이 직면한 도전은 궁극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만지고, 그분을 가깝게 느끼며, 그분을 살아 계신 분으로 보고 그분께서 약속하신 그 아름다움에 눈을 틔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분의 약속은 우리의 상상력에 호소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과 역사, 인류의 미래를 새로운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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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5월 2023, 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