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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하느님이 슬퍼하신다...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이 벌인 전쟁 때문”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마무리하는 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 제2저녁기도 강론을 통해 주님께서 “무관심한 이해 부족”과 그리스도인이 일으키는 “신성모독적인 폭력”으로 슬퍼하신다고 말했다. 교황은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온전한 일치를 향해 협력하는” 모습 안에서 변화와 성장의 길로 나아가자고 모든 이를 초대했다.

Alessandro Di Bussolo / 번역 이재협 신부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를 훈계하시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계획보다 우리의 계획을 우선시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이 일으킨 신성모독적인” 전쟁 앞에서 우리가 보이고 있는 “무관심한 이해 부족”으로 슬퍼하고 계신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관점을 변화”하라고, 다시 말해 이웃을 바라볼 때 “나의 눈으로만 보지 말고 그리스도의 관점에 따라 바라보라”고 초대하신다. 이처럼 우리는 오직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기도 안에서, 봉사 안에서, 대화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온전한 일치를 향해 협력하는” 가운데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월 25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마무리하는 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 제2저녁기도 강론을 진행했다.

“하느님을 슬프게 하는 일”에 대한 이사야 예언자의 혹독한 훈계     

이날 성 바오로 사도의 유해가 모셔진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제2저녁기도 전례에는 ‘이탈리아-몰타 정교회’의 폴리카르포스(Polykarpos) 대주교와 교황청 주재 성공회 대표 이안 어니스트(Ian Ernest) 대주교가 함께했다. 교황은 강론을 시작하며 제2저녁기도에서 낭독된 이사야서 1장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강한 훈계의 예언을 다시 한번 낭독했다. 이번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의 주제 “선을 행하여라. 공정을 추구하여라”(이사 1,17 참조)는 그 대목에서 발췌한 것이다. 교황은 여러 그리스도교 형제들이 모인 이 기쁜 날 그리고 “비극적이고 걱정스러운 소식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에 그처럼 혹독한 꾸짖음의 말씀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불안”에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그토록 혹독한 훈계의 말씀이 나온 것이라며 “우리 때문에 주님을 슬프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폴리카르포스 대주교
프란치스코 교황과 폴리카르포스 대주교

훈계와 변화

교황은 하느님께서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 “우리를 꾸짖으시고 우리에게 변화를 촉구하신다”고 강조하며, “그토록 사랑하시는 백성”에게 크게 화를 내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물었다. 교황은 이사야서를 다시 낭독한 뒤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께서 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모습을 꾸짖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유향과 예물이 아니라 억압받는 이를 보살피고,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는 일입니다.” 교황은 이사야 예언자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많은 예물을 봉헌하는 부자들이 하느님께 축복을 받는” 것으로 간주된다며,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멸시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경향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슬프게 하는 “무관심한 이해 부족”

교황은 “하지만 이런 경향은 하느님을 완전히 오해하는 것”이라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루카 6,20 참조),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는 당신 자신을 굶주린 이, 목마른 이, 나그네, 헐벗은 이, 병자, 감옥에 갇힌 이(마태 25,35-36 참조)로 묘사하셨습니다.” 교황은 이것이 “하느님께서 화를 내신 첫 번째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느님께서는 신앙인으로 자처하는 우리가 하느님의 계획보다 우리의 계획을 우선시하고, 하늘의 심판보다 땅의 심판을 따르고, 외적인 예식에 만족하면서 당신께서 가장 아끼시는 이들에게 무관심할 때 크게 슬퍼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무관심한 이해 부족으로 슬퍼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인 인간에 대한 “신성모독적 폭력”

주님을 노여워하게 만드는 “두 번째”이자 “더 심각한” 이유는 “신성모독적인 폭력”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피로 가득한 손”으로 벌이는 “죄와 축제”에 대해 말한다. 교황은 “주님께서는 인간이 세운 물질적 성전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한편, 하느님의 성전인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 때문에 진노하신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이 자행하는 전쟁과 폭력행위를 보시는 하느님의 슬픔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폭력적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교황은 여기서 “사순시기에 왕에게 찾아가 고기를 바침으로써 왕의 잔인함에 항의한 한 성인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왕이 자신의 종교를 이유로 분개하여 고기를 거절하자, 성인은 ‘하느님의 자녀들을 죽이는 일에는 주저하지 않으면서 어째서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은 주저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교황은 회칙 「Fratelli tutti」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영성과 신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모습을 보이는 이들에게 훈계했다. “다양한 형태의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국수주의, 인종 혐오적 태도, 자기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멸시, 심지어 학대까지도 지지하는 데에 자신의 신앙이 힘을 북돋워 준다거나 적어도 그럴 권한을 준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Fratelli tutti」, 86항). 

“바오로 사도의 모범을 따라 우리 안에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은총이 헛되지 않길 바란다면, 우리는 전쟁과 폭력과 불의가 나타날 때마다 저항해야 합니다.”

악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 악에서 선으로 나아가기

교황은 올해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의 주제는 “과거 원주민과 오늘날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해 자행된 불의를 잘 알고 있는 미국 미네소타의 한 신앙인 공동체”가 정했다고 강조했다. 멸시와 인종차별, 무관심한 이해 부족과 신성모독적인 전쟁 앞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훈계한다. “선행을 배우고 공정을 추구하여라”(이사 1,17 참조). 

“그러므로 악을 고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또한 악에서 선으로 건너가기 위해 악을 단념해야 합니다. 여기서 훈계는 우리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변화는 가능합니다

교황은 주님께서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신 뒤 “우리 잘못을 깨끗이 씻고 악한 행실을 치워 버려라”(이사 1,16 참조)고 말씀하신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실 것을 약속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8 참조) 하신 말씀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황은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에서 홀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하며, 바오로 사도의 삶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듯 “변화의 원천은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끼리는 할 수 없을지라도 하느님과 함께라면 가능합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당신 자녀들 모두가 함께 회심하길 요구하십니다.”

“회심은 우리가 많이 접한 말이지만 언제나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회심은 백성들에게 요구됩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이고 교회의 역동성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일치를 위한 우리의 회심 또한 은총과 자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만큼 가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께 의탁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도움을 통해 진정한 형제자매로 ‘하나가 될 것’(요한 17,21 참조)입니다.”

왼쪽부터 폴리카르포스 대주교,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청 주재 성공회 대표 이안 어니스트 대주교
왼쪽부터 폴리카르포스 대주교,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청 주재 성공회 대표 이안 어니스트 대주교

가톨릭 교회 시노드 여정을 함께 걷는 이들에게 감사

교황은 성령의 은총으로 “관점의 변화”에 우리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이 명시하는 바와 같이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신자가 성령 안에서 다른 이들과 친교를 이룬다”(13항 참조)는 사실을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친교의 여정 안에서 저는 가톨릭 교회의 시노드 여정에 관심을 기울이며 참여하고 동행하는 다양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신앙인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그 여정이 점점 더 교회 일치를 향해 나아가길 바랍니다.”

우리 단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위해 힘을 모읍시다

교황은 “성령 안에서 서로 친교를 이루는 것”과 “함께 걷는 여정”이 변화와 성장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에서 말한 것처럼 변화와 성장은 “하느님과의 내밀한 만남을 가질 때에만” 가능하다. “그럴 때에 나는 순전히 내 눈과 감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분의 친구는 곧 나의 친구입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8항). 교황은 이러한 변화와 회심을 위해 “불굴의 용기”를 지닌 성 바오로 사도에게 도움을 청하자고 당부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함께하는 여정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기보다 각 단체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쉽고, 조바심을 내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인 성찬례를 거행하며, 그리스도께서 처음부터 당신 교회에 주신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의 일치’(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 4항)에 대한 희망을 쉽사리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여러 그리스도교 공동체 대표단. 가운데 흰 옷은 떼제 공동체 원장 알로이스 수사
여러 그리스도교 공동체 대표단. 가운데 흰 옷은 떼제 공동체 원장 알로이스 수사

참석한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감사

교황은 끝으로 성경 말씀 묵상을 통한 자신의 생각이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기도 안에서, 봉사 안에서, 대화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온전한 일치를 향해 협력하는 여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어 이날 전례에 함께한 동방정교회 교회 일치 운동 대표 폴리카르포스 대주교와 교황청 주재 성공회 대표 이안 어니스트 대주교, 여러 그리스도교 공동체 대표단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범우크라이나 교회·종교단체협의회 대표단을 향해서는 “생생한 연대”를 약속했다. 또한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이하 일치부) 산하 정교회 문화협력위원회 소속 학생들과 세계교회협의회(WCC) 보세이 에큐메니칼 연구소 학생들에게도 인사했다. 끝으로 친애하는 떼제 공동체 원장 알로이스 수사와 동료들을 향해 “다음 세계주교시노드 회기의 개막 전날 밤 교회 일치를 위한 기도를 준비하는 여러분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인사했다. 

코흐 추기경 “각 교회에 주신 하느님의 선물을 소중히 여기자”

교황청 일치부 장관 쿠르트 코흐(Kurt Koch) 추기경은 차관 브라이언 패럴(Brian Farrell) 주교와 함께 이날 전례에 함께했다. 코흐 추기경은 전례 말미에 인사말을 전했다. 그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의 주제 성구는 “교회 일치를 위한 사명이 회심의 정신, 곧 우리 모두가 회심으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아울러 평화는 정의의 열매가 돼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 일치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귀중합니다. 우리가 각자의 권리를 내세우기보다 성령께서 각 교회와 공동체에 베풀어 주신 선물과 풍요로움에 감사하고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안다면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선물과 풍요로움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코흐 추기경은 이 평화가 “교회 일치의 참된 사랑”이라고 말했다. “사랑은 다양성을 조화롭게 하고 하나로 만듭니다. 사랑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당한 차이를 없애지 않으며, 오히려 더 깊은 일치를 위해 조화롭게 모아 들입니다. 이러한 일치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맺는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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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월 2023, 1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