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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티에서, 교황 “두 팔을 벌리신 그리스도 왕 앞에서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가 돼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20일 아스티 주교좌성당에서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미사를 거행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활짝 벌린 두 팔’로 여러분에 관한 그 무엇도 당신과 무관하지 않으며, 여러분을 안아주려 하시고, 여러분을 일으키려 하시고, 여러분의 역사, 여러분의 죄와 함께, 여러분을 있는 그대로 구원하길 바라신다는 것을 침묵 속에서 말씀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교황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로 당신과 함께 우리 손을 더럽히라고 초대하신다고 설명했다.

Alessandro Di Bussolo / 번역 이창욱

우리의 임금님은 세속의 왕좌가 아닌 십자가라는 왕좌에서 “모든 이에게 두 팔을 벌리시고”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활짝 벌린 두 팔(a brasa aduerte)”로 “여러분에 관한 그 무엇도 당신과 무관하지 않으며, 여러분을 안아주려 하시고, 여러분을 일으키려 하시고, 여러분의 역사, 여러분의 죄와 함께, 여러분을 있는 그대로 구원하길 바라신다는 것을 침묵 속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갈바리오에서 선한 도둑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이름을 부르라고, 구경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참여자”로서 당신께 신뢰를 두라고 요구하신다. 아울러 세상의 고통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 손을 더럽히라고 이르신다. 요컨대 우리를 당신과 함께 다스리는 종으로 삼길 원하신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20일 아스티 주교좌성당에서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미사를 거행하며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강론했다. 

스테파노 아코르네로 신학생에게 시종직 수여

교황은 교황전용차를 타고 도시를 지나며 인사를 나눈 뒤 지난 2000년 로마에서 열린 세계 젊은이의 날 주제곡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나의 생명(Jesus Christ, you are my life)”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당시 예식 때 사용했던 십자가를 들고 있는 청년사목팀 젊은이들을 비롯해 4000명 이상의 신자들로 가득 찬 대성당으로 들어섰다. 그런 다음 아스티 출신 스테파노 아코르네로 신학생에게 시종직을 수여했다. 교황은 “스테파노가 자신의 성소를 계속 이어가고 또 충실할 수 있도록 그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당부하며 강론을 시작했다. 아울러 “주님께서 사제 성소를 보내주시도록 아스티 교회를 위해”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 “보시다시피 대다수가 저처럼 나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 있는 아주 훌륭한 몇몇 사제들처럼 젊은 사제들이 필요합니다. 이 땅에 복을 내리시도록 주님께 기도합시다.”

“제 아버지는 이 땅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셨습니다. 좋은 소출과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진정한 근면함으로 소중해진 이 땅에서 저는 뿌리의 풍미를 다시 발견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오늘 다시 한번 우리를 신앙의 뿌리로 데려가는 것은 복음입니다. 신앙의 뿌리는 갈바리오의 메마른 땅에서 발견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씨앗은 죽음으로 희망을 싹트게 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매달린” 왕

교황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고 말했다. 아울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바라보면 죄목을 적은 명패에 명시된 “유다인의 왕”이 다른 모든 왕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수님은 “왕좌에 앉은 권력자”가 아니라 그와 완전히 정반대로 “십자가에 매달린” 왕이시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는’(루카 1,52) 하느님께서는 권력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힌 종처럼 행동하십니다. 못과 가시로만 단장하시고 모든 것을 벗어 버리시며 사랑이 충만하신 그분께서는 십자가라는 왕좌에서 더 이상 말로 군중을 가르치지 않으시고 현란한 손짓으로 가르치지도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그 이상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누구도 손가락질을 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두 팔을 벌리십니다. 우리의 임금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방법은 두 팔을 벌리시는 것(a brasa aduerte)입니다.”

굴욕을 당한 이들이 더 이상 혼자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분의 품에 안길 때에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심지어 “우리의 죽음, 우리의 고통, 우리의 가난, 우리의 나약함”을 품으시려고 “십자가의 역설”까지 이르게 되셨다고 설명했다. 

“주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들딸처럼 느낄 수 있도록 스스로 종이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모욕과 조롱을 당하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굴욕을 받더라도 누구도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도 자신의 존엄성을 박탈당했다고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 옷벗김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역사의 모든 십자가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실 수 있도록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교황은 “바로 여기에 우리의 왕,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왕, 온 누리의 임금이 계신다”고 강조했다. “인류의 가장 먼 경계를 넘어 증오의 블랙홀, 버림받음의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심으로써 모든 삶을 비추고 모든 현실을 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왕이 바로 이분이십니다!” 하지만 교황은 다음과 같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분을 믿는가? 그분께서 내 삶의 주인이신가?” 이어 시종직 후보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사제직을 향한 길을 시작하는 그대는 예수님께서 그대의 모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명예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대의 모델입니다. 그대가 예수님과 같은 사제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사제직을 향한 걸음을 멈추는 편이 낫습니다.”

만일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 우리의 눈을 고정”한다면,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삶을 잠깐만 보시며 충분하다고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종종 그분을 대하는 것처럼 힐끗 보고 말지도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활짝 벌린 두 팔(a brasa aduerte)’로 여러분에 관한 그 무엇도 당신과 무관하지 않으며, 여러분을 안아주려 하시고, 여러분을 일으키려 하시고, 여러분의 역사, 여러분의 죄와 함께, 여러분을 있는 그대로 구원하길 바라신다는 것을 침묵 속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 그게 사실인가요? 제가 불행한데도 불구하고 저를 이토록 사랑하시나요?’ 이 순간 각자 자신의 가난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영적 빈곤과 한계를 가지고 있는 저를 사랑하시나요?’ 그러면 주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음을 알아듣게 해 주십니다.”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

교황은 “여러분이 그분의 온유한 사랑에 굴복한다면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삶을 다스릴 수 있는 가능성을 주신다”고 설명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제안하시지 결코 강요하지 않으신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언제나 여러분을 용서하시고”, “여러분을 다시 일어서게 하시며”, 항상 “여러분의 왕권을 회복시켜 주신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사람들을 용서하는 데 지치곤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고 그들을 사회적으로 매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용서하는 데 결코 지치지 않으십니다.”

교황은 “구원은 그분의 사랑을 받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는 데서 온다”고 설명했다. “그래야만 우리가 자아의 노예상태에서,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종종 십자가 앞에 서서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맡겨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 ‘벌린 두 팔’은 ‘착한 도둑’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낙원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유일무이한 표현을 우리에게도 하실 것이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시도록 우리를 내어 맡겨드릴 때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바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저 하늘 위 강력하고 먼 곳에 있는 미지의 신이 아니라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을 모시고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가까이 계시는 친밀함은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하느님의 방식은 친밀함, 연민, 온유한 사랑입니다. 연민, 온유한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두 팔을 벌려 위로하시고 어루만져 주십니다. 바로 이분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교황은 두 가지의 길이 있다고 설명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앞에는 구경꾼 역할을 하는 사람과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람, 곧 참여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구경꾼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루카복음은 “백성들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루카 23,35)고 말한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십자가 앞에서는 구경꾼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고 멀리서 호기심과 무관심으로 그분을 바라봅니다. 정말로 아무런 흥미도 없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미사의 한 장면
미사의 한 장면

교황은 “그들은 판단과 의견을 표명했을 수도 있다”며 “누군가 불평했을 수도 있지만 모두가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십자가 가까이에 있는 다른 구경꾼들 중에는 백성의 지도자들, 군인들 그리고 예수님께 화를 냈던 한 범죄자도 있었다. “그는 조롱하고, 모욕하고, 분노를 표출합니다.” 모두가 그리스도께 이렇게 말한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35.37.39절 참조) 그리고 이러한 도발의 말은 삽시간에 전염된다. “악의 물결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도달합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한 순간도 예수님께 동조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말합니다. 이는 무관심이라는 치명적인 전염병입니다.”

“무관심은 나쁜 병입니다. ‘이것은 나와 상관없어.’ 예수님께 대한 무관심과 병자에 대한 무관심, 가난한 이들에 대한 무관심, 세상의 불행한 이들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푼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 때, 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나요? 눈을 들여다볼 수 있나요? 여러분에게 자선을 요청하는 그 가난한 남자나 여자의 눈을 바라보나요?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 때 동전을 던지는 것에 그치나요, 아니면 손을 잡아주나요? 여러분은 인간의 불행을 어루만질 수 있나요?’ 다들 오늘 내로 답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교황은 “악의 물결이 항상 이렇게 퍼져 나간다”며 “악은 거리를 두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 관심사만 생각하고 남들을 외면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우리 신앙생활에도 위험합니다. 신앙이 이론으로 머물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개입하고 참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저 나서지 않는다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시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맙니다. 하느님을 믿고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기도하지도 않고 이웃을 돌보지도 않으며 하느님과 평화에 관심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말만 앞세우고 겉으로만 그리스도인인 체합니다.”

하지만 “착한 도둑”이 개입하는 “선의 유익한 물결”도 있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을 비웃지만 예수님께서는 도둑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교황은 성덕의 길에서 “매일” 기도해야 하는 기도, 우리를 위한 아름다운 기도가 되는 한 가지만 주님께 청하라고 당부했다. “예수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교황은 이렇게 “죄수가 첫 번째 성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순간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주님께서는 그를 영원히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십니다.” 복음은 우리가 “방관자로 머물지 않고 악을 극복하도록 초대하기” 위해 선한 도둑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하나요?”

“신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착한 도둑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린이의 용기 있는 신뢰를 되찾고, 믿음을 가지고, 청하고, 계속 청하며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뢰 안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교황은 다시금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우리는 이 신뢰를 가지고 있나요?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예수님께 가지고 오나요, 아니면 하느님 앞에서 어쩌면 다소 거룩하게 보이려고 향을 치면서 우리 자신을 화장하나요? 꾸밈의 영성, 화장의 영성을 하지 마십시오. 그런 영성은 식상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비누와 물로 씻고 맨 영혼으로 나서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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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1월 2022,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