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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하느님을 믿는 이는 폭탄으로 승부를 거는 신성모독의 전쟁에 맞서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4일 아왈리의 사키르궁 내 알피다 광장에서 열린 “대화를 위한 바레인 포럼” 폐막식 연설을 통해 분열을 바로잡기 위한 공동 실천을 호소했다. “위대한 종교들의 여정이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우리 세계를 위한 평화의 양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황은 죽음을 건 거래에 반대해야 한다며, 하느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폭력과 테러 행위를 부추기는 경제적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위한 진지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안주영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4일 아왈리의 사키르궁 내 알피다 광장에서 열린 “대화를 위한 바레인 포럼” 폐막식 연설에서 전 세계가 화염, 미사일, 폭탄, 전쟁무기, 눈물, 죽음, 잿더미와 증오로 뒤덮인 “미숙한 비극의” 무대가 됐다고 개탄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위한 진지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진심을 다해 거듭 호소했다.  

교황은 두 차례의 “끔찍한 세계대전”과 수십 년 동안 “세상을 긴장 상태에 빠트린” 냉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참사” 전쟁 속에서 인류가 “다시 한번 힘없는 균형이라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종교는 “평화”라는 하느님의 이름 안에서 행동하고, 일치를 이루고, 서로 만나야 한다고 강조하며 “하느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폭력을 규탄하고 종식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경제적 지원과 무기 제공으로 테러 행위를 지원하고 심지어 언론을 이용해 이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인류의 정원을 함께 돌보기는커녕 포격, 미사일, 폭탄 그리고 눈물과 죽음을 초래하는 전쟁무기로 우리 공동의 집을 잿더미와 증오로 뒤덮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

교황은 바레인을 순방한 주요 목적인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국왕이 주관하는 “대화를 위한 바레인 포럼”에 참석해 폐막식 연설에서 진지한 호소를 이어갔다. 순방 둘째 날 교황이 붉은 제복을 입은 기마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흰색 피아트(500L) 승용차를 타고 사키르궁에 도착하자 환영 트럼펫 연주가 울려 퍼졌다. 교황이 무대까지 붉은 카펫을 따라 휠체어를 타고 가는 동안 헬리콥터 두 대가 바레인과 바티칸 시국 국기를 각각 휘날리며 비행했다. 교황은 바레인 국왕과 함께 상징적인 행위로 “생명의 나무”에 물을 줬다. 

교황 곁에 전 세계 종교·정치 지도자들이 자리했다. 이날 오후엔 교황이 개인적으로 여섯 번째 만나는 “사랑하는 형제”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메드 알타예브도 참석했다. 아울러 교황과 존경과 우정으로 굳건하게 결속된 “사랑하는 형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인 바르톨로메오 1세 세계 총대주교도 참석했다. 

바레인 국왕과 함께 생명을 상징하는 나무에 물을 주는 프란치스코 교황
바레인 국왕과 함께 생명을 상징하는 나무에 물을 주는 프란치스코 교황

오늘날 세상의 ‘역설’

“대화를 위한 바레인 포럼”은 11월 3일 다양한 발표와 함께 막을 올렸다. 모든 발표의 중심 주제는 종교·문화·미디어 관련 지도자들 간 대화의 다리를 놓기 위한 현재의 시급한 상황의 요구와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데 할애됐다. 교황은 11월 4일 폐막식 연설을 통해 인류 위기의 저변에 “역설”이 존재한다고 지적하며 평화로운 해결책을 호소했다. 

“세계 인구의 대다수가 심각한 식량 위기, 생태적 위기,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의 위기는 물론 점점 더 파렴치해지는 세계적 불의에 시달리며 이 같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소수의 강대국들은 당리당략에 혈안이 돼 낡아빠진 대화법을 되살리는가 하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역과 적대 지역(블록)을 새롭게 만드는 데 골몰하고 있습니다. 이는 충격적인 역설입니다.”

일치보다 한층 더 분열된 시대

교황은 분열이 오늘날 세상에 상처를 준다고 지적하면서 “우리가 일치보다 한층 더 분열된 이례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을 환대한 “두 개의 바다”라는 뜻을 지닌 나라 ‘바레인’의 어원에서 일치의 의미를 끌어와 “바닷물처럼” 종교·정치 지도자들이 땅과 백성을 잇게 하라는 사명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두 개의 바다”는 해저 샘인 담수와 걸프만의 해수를 의미한다며 오늘날 세상에 비유했다. 

“하나는 더불어 사는 삶의 잔잔하고 감미로운 바다이고, 또 하나는 충돌로 훼손되고 전쟁의 바람에 휩쓸리는 무관심의 쓰디쓴 바다입니다. 점점 더 거세지는 파괴적인 파도와 함께 그 바다는 우리 모두를 삼켜버릴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동양과 서양은 점점 더 서로 대적하는 두 바다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대화를 위한 바레인 포럼에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황
대화를 위한 바레인 포럼에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황

충돌이 아닌 만남의 길

교황은 포럼 참석자들을 가리켜 “하지만 우리는 충돌이 아닌 만남의 길을 선택하고 같은 바다에서 항해하기 위해 여기에 함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기는커녕 지속적으로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면, 자기 자신을 모델로 삼으며 독재, 제국주의, 민족주의, 포퓰리즘의 전망을 완고하게 강요한다면, 상대방의 문화에 무관심하고 귀를 닫는다면, 서민들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마니교 방식으로 단순하게 선인과 악인을 계속 구분해 나간다면, 우리는 쓰라린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해 동양과 서양이 함께

교황은 글로벌 세계에서 “홀로 항해하면 표류한다”며 “함께 노를 저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난 2019년 아부다비에서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메드 알타예브와 공동 서명한 문서 「세계 평화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공동 선언」을 떠올렸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형제자매로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편협한 조류에만 골몰하여 인류의 대양을 간과하는 접근법인 ‘고립적 사고방식’을 거부하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교황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비극적이고도 현저한 격차에 관심을 두면서 동양과 서양이 분쟁이 아니라 모든 이의 선익으로 판세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쟁의 출현으로 인해 지구상의 대다수 사람들이 유례없는 불의, 굶주림(기아)이라는 수치스러운 상처, 기후변화의 재앙 등을 경험하는 파국적 불평등과 같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인류 가족의 비극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 공동의 집에 대한 돌봄이 부족하다는 표징입니다.”

이기심과 폐쇄적인 생각을 정화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교황은 다양한 종파의 지도자들에게 세 가지 도전과제를 제안했다. 첫 번째는 ‘기도’다. “기도는 이기심, 폐쇄적인 생각, 자기 중심주의, 거짓과 불의에서 우리 자신을 정화하는 데 있어 필수적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를 증언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모범으로 동료들을 기도에 초대합니다. 인간을 사고 팔거나 즐기는 것으로 전락시키는 이교사상에 빠지는 대신, 모든 인간이 지닌 무한한 존엄성을 재발견하도록 말입니다.”

없어서는 안 될 “종교의 자유”

교황은 이를 위해 “종교의 자유”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예배 장소가 항상 어디서든 보호받고 존중되며 기도가 장려되고 방해받지 않도록” 헌신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아울러 전날 정부 지도자들을 위한 연설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예배의 자유를 허락하고 인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며 “종교의 진정한 자유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교육의 시급한 도전의 대상인 여성, 어린이, 시민

두 번째 도전과제는 ‘교육’이다. 교황은 “교육의 기회가 결핍된 곳에서 극단주의가 팽배하고 근본주의가 뿌리를 내린다”며 “무지가 평화의 적이라면 교육은 발전의 벗”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교육이 “경직되거나 획일적이지 않고 도전에 열려 있으며 문화적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리는 관용적이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타인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그들에게 권리와 기회를 줘야 합니다.” 

교황은 교육과 관련해 세 가지 “시급한 교육의 우선순위”를 강조했다. 첫 번째는 교육, 고용, 사회·정치 권리 행사 측면에서 “여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동의 기본권 보호”다. “아이들이 굶주림과 폭력의 손아귀에서 살지 않도록 교육을 받고, 도움을 받고, 지원을 받으며 자라나도록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서로를 존중하고 법을 준수하도록 이끄는 “시민 교육”이다.  

“우리 사회에서 완전한 시민권의 개념을 확립하고 고립과 열등감을 불러 일으키는 소수자라는 용어의 차별적 사용을 단념할 때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폭력을 규탄하고 근절합시다

교황은 세 번째 도전으로 “인간의 힘인 행동”을 제시했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증오, 폭력, 불화” 그리고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교황은 이에 더해 “신성을 모독하는 전쟁과 폭력 행사에 ‘아니오’라고 강력히 말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종교는 마음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며 “하느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폭력을 규탄하고 근절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편협함과 극단주의에서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에 대항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경제적 지원과 무기와 전략의 제공으로 테러 행위를 지원하고 심지어 미디어를 이용하여 테러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반드시 중단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세계 안보와 평화를 위협하는 국제 범죄로 간주돼야 합니다. 온갖 형태로 표출되는 테러 행위는 규탄받아야 합니다.”

전쟁과 재무장에 반대합시다

교황은 “종교가 있는 사람, 평화의 사람은 재무장(재군비) 경쟁, 전쟁 사태, 죽음을 건 거래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누군가를 적대하는 ‘일부와의 동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이와의 만남의 수단을 지지하는 것”이라며 “상대주의나 어떤 종류의 혼합주의에도 굴복하지 않고 형제애, 대화, 평화라는 하나의 길만 추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황은 우리가 형제자매로서 “이중적인 태도나 두려움 없이 더욱 굳건한 유대”를 맺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서로 다른 강대국들이 이익, 돈, 권력을 기반으로 서로 상대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만남의 길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합시다. 만남의 길은 가능하고 또한 필요합니다. 무력과 무기, 돈은 결코 평화의 미래를 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종교들의 여정이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우리 세계를 위한 평화의 양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방명록에 서명

“대화를 위한 바레인 포럼” 폐막식에서 교황은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서명했다.

“‘두 바다의 나라’ 바레인에서, 저는 험난한 분열의 바다에서도 인류가 만남의 길을 따라 형제애의 나침반을 다시 발견하며 더불어 사는 삶의 평화로운 바다에 닻을 내릴 수 있기를 지극히 높으신 분께 청합니다. 여러분의 모범에 감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명록 서명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명록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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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11월 2022,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