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교황 “많은 그리스도인이 저지른 악에 대해 원주민들에게 겸허히 용서를 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25일 캐나다 사도 순방의 첫 번째 공식 만남으로 매스쿼치스에서 이누이트·메티스·퍼스트 네이션 등 3대 캐나다 원주민 대표단을 만났다. 교황은 “파멸적인 동화정책”으로 희생된 기숙학교 아이들을 추모하며 바티칸에서 원주민 대표단과 만날 당시 선물로 받은 원주민 전통신발 ‘모카신(mocassino)’을 이날 다시 돌려줬다. 그 모카신은 원주민 아이들이 겪은 고통을 상징한다. 교황은 사과하는 일이 사태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과거의 고통이 정의와 치유와 화해의 미래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걸어가자고 초대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창욱

“수치심을 안고 분명하게 다시 확인하고자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원주민을 상대로 저지른 악에 대해 겸허하게 용서를 구합니다.” 

가죽과 자작나무 껍질로 엮은 전통적인 원뿔 천막과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추모하는 명패가 세워진 매스쿼치스의 녹색 초원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목소리가 거의 한숨이 되어 울려 퍼진다.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신체적, 언어적, 심리적, 정신적 학대”와 “파멸적”이고 “처참한” 동화정책으로 물든 잔인한 과거에 대한 교황의 말은 강력하지만 차라리 “고통에 찬 외침”이었다. 교황의 말은 가톨릭 교회도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원주민을 탄압하는 열강들의 식민화 사고방식을 지지했던 방식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죄송합니다.”

원주민들과의 첫 번째 만남

캐나다 사도 순방은 원주민 선조의 땅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에드먼턴 남부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앨버타 주의 중심은 블루베리의 재배지이자 곰의 서식지, 곧 “베어 힐즈(곰 언덕)”로 알려져 있다. 2014년까지 호베마(Hobbema)로 불리기도 했다. 두 개의 크리 퍼스트 네이션(Cree First Nations) 공동체가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북쪽에는 에르미네스킨(Ermineskin)이, 남쪽에는 샘손(Samson)이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과거를 기억하고, 여러분과 함께 울고, 침묵 가운데 땅을 바라보고, 무덤 곁에서 기도합니다.”

통상적인 사도 순방은 정부 관계자와의 만남으로 첫 번째 공식일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캐나다 사도 순방의 경우 이상적인 만큼 실제적으로 퍼스트 네이션·메티스·이누이트 등 3대 캐나다 원주민 대표단을 포옹하는 것으로 첫 번째 일정을 시작했다. 이는 제37차 해외 사도 순방이 “참회의 순례”라는 교황의 생각을 구체화하는 방식이었다.

매스쿼치스 묘지에 세워진 십자가
매스쿼치스 묘지에 세워진 십자가

용서, 치유, 화해

교황은 어제(7월 24일) 에드먼턴 국제공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손에 입맞춤을 하고 껴안고 인사말을 속삭이는 원주민들을 이미 만났지만, 오늘(7월 25일) 비로소 원주민 공동체의 “집”에 입장했다. 휠체어에 탄 교황이 두 손을 모은 채 그곳에 도착하자 나이든 남자가 북소리에 맞춰 크리(Cree)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교황은 곧장 원주민들의 묘지로 가서 무덤에 세워진 나무 십자가들 사이에서 기도했다. 그런 다음 칠고(七苦)의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에 들어가 기숙학교 희생자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붉은 현수막을 축복했다. 전통음악, 춤,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줄을 지어 그 현수막을 들고 ‘베어 파크 파우와우 그라운드’ 야외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교황은 원형 구조물로 이뤄진 흰색 단상에 원주민 부족장들과 함께 자리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지난 4월 초 바티칸에서 3일 동안 캐나다 원주민 대표단과 만나고 경청하면서 과거의 잘못에 용서를 구한 일을 되풀이했다. 

“여러분 가운데로 오기를 고대했습니다. (...) 제가 여러분의 땅으로 온 까닭은 저의 슬픔을 직접 여러분에게 말하고, 하느님께 용서와 치유와 화해를 청하고, 저의 친밀함을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여러분과 함께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칠고(七苦)의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에서 교황이 기숙학교 희생자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현수막을 축복하고 있다.
칠고(七苦)의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에서 교황이 기숙학교 희생자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현수막을 축복하고 있다.

이 자리에 없는 이들을 기억하게 하는 모카신

교황은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작은 진주로 꾸민 깃털 머리장식을 쓰고 전국에서 온 원주민 부족장들에게 바티칸에서 가졌던 만남의 날들에 대해 스페인어로 연설했다. 교황은 4개월 전 원주민 대표에게서 받은 원주민 전통신발 ‘모카신(mocassino)’ 두 켤레를 떠올렸다. “이 모카신은 원주민 아이들이 겪은 고통을 상징합니다.” 사실 매스쿼치스는 캐나다에서 규모가 가장 큰 기숙학교 중 하나인 에르미네스킨 기숙학교가 있던 곳이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국립센터(NCTR)’에 따르면 이곳에서 과밀집 수용과 질병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날 교황은 그들을 기억하며 붉은 진주가 박힌 상징적인 신발을 다시 돌려줬다. 그 모카신은 퍼스트 네이션이 지난 4월 만남에서 “교회 측이 의미심장한 행동을 취한다면 용서하겠다는 뜻으로” 교황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캐나다에 오면 그 모카신을 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모카신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연설을 마친 다음 그것들을 돌려드릴 것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두 켤레의 모카신은 저에게 슬픔과 분노와 수치심을 생생하게 되살려줬습니다. 그 아이들에 대한 기억은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그것은 모든 아이들이 사랑, 명예, 존경으로 대우받을 수 있게 행동하라고 우리를 일깨웁니다.”

정의의 미래

그 모카신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여정”을 말해주기도 한다. 

“함께 걷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일하면서 과거의 고통이 정의와 치유와 화해의 미래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기억을 위한 자리

교황의 시선은 미래를 향했다. 하지만 과거를 지운다는 의미는 아니다. 매스쿼치스 방문은 “기억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교황은 분명히 밝혔다. 우선, 이 땅에서 수세기 동안 발전된 관습, 유대, 생활방식을 “창조주의 선물로 대하는” 기억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당시 정부의 문화적 동화정책과 식민화 사고방식에 관여함에 따라 기숙학교에서 발생한 일들에 대한 “피에 물든 기억”도 있다.

“우리가 모인 이 자리에서 고통의 부르짖음, 지난 몇 달 동안 저를 따라다닌 숨죽인 비명소리가 제 안에 울려 퍼집니다.” 

아물지 않은 흉터

교황이 “상처”, “고통”, “아직 아물지 않은 흉터”, “트라우마”에 대해 말할 때마다 원주민들의 영혼에 그 기억이 되살아난다. “오늘 우리의 만남이 옛 기억과 상처를 다시 떠오르게 할 수 있고, 제가 말씀드리는 동안에도 많은 분들이 불편을 느끼실 수 있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교황은 “망각은 무관심으로 이어지므로 기억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엘리 비젤(Elie Wiesel)의 말을 인용했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따라서 심지어 “감당할 수 없고, 분노가 일어나며, 고통스럽더라도” 이 시설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일이다.

“기숙학교 시스템을 포함한 동화정책과 해방정책이 이 땅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파멸적이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처음 이 땅에 발을 들였을 때, 문화, 전통, 영성 간의 유익한 만남을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문화 탄압, 신체·언어적 학대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대신 캐나다 원주민 대표단의 몇몇 생존자들이 교황청 사도궁에서 교황에게 들려준 일들이 벌어졌다. 당시 그들은 “동화정책이 어떻게 원주민들을 체계적으로 소외시키게 됐는지, 기숙학교 시스템을 통해서도 원주민의 언어와 문화가 어떻게 폄하되고 억압됐는지, 아이들이 어떻게 신체적, 언어적, 심리적, 정신적 학대를 겪었는지, 그 아이들이 어떻게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지게 됐는지, 그리고 그러한 일이 어떻게 부모와 자식, 조부모와 손자 사이의 관계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됐는지” 설명했다. 이에 대한 생생한 예가 교황 연설에 앞서 행해진 원주민 윌튼 리틀차일드(Wilton Littlechild) 부족장의 증언이다. 그는 77세의 나이로 지난 3월 목발을 짚고 바티칸을 방문한 바 있다.

매스쿼치스에서 연설하는 교황
매스쿼치스에서 연설하는 교황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긋나는 잘못

교황은 윌튼 리틀차일드 부족장과 모든 원주민에게 감사를 표했다. “여러분이 짊어진 무거운 짐에 대해 말해주시고, 이 모든 것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특히 당시 정부가 추진한 문화적 파괴와 강요된 동화정책에 교회와 수도회의 많은 구성원이 무관심한 태도로 협력한 방식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합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비록 그리스도교의 이웃사랑이 있었고 아이들을 위한 헌신의 모범 사례가 적지 않았음에도 기숙학교와 연계된 정책의 전반적인 결과는 재앙적이었습니다.”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긋나는 처참한 잘못이었습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여러분 민족의 진정한 정체성을 이루는 가치, 언어, 문화가 녹아든 굳건한 기반이 침식됐으며 여러분이 지금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생각하면 고통스럽습니다. 이 개탄스러운 악에 직면한 교회는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 자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사과, 출발점

용서를 구하는 것이 사태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원주민들의 말에 교황은 “전적으로” 동의를 표하고, 자신의 사과가 “도착점이 아니라” “첫걸음,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 어떠한 노력도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상처를 준 데 대한 용서를 청하고 이 상처를 치유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면, 그러한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상황을 은폐하거나 지속시킬 가능성도 예방할 수 있는 문화를 창출하고자 온갖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진상조사를 철저히 하고, 기숙학교의 생존자들이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치유의 여정을 걷도록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다. 동시에 교황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과 시민사회가 원주민의 정체성과 경험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역량을 함양하길” 바라고 또 기도한다. 교황은 “모두가 함께 걷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원주민을 더 많이 알리고 존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원주민 지도자들이 선물한 머리장식을 착용한 교황
원주민 지도자들이 선물한 머리장식을 착용한 교황

캐나다 사도 순방 

교황은 오는 7월 30일까지 이어지는 캐나다 사도 순방에 대해 언급했다. “이번 순례는 며칠에 걸쳐 서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캠룹스, 위니펙과 같은 중심지나 서스캐처원, 유콘, 노스웨스트 준주의 여러 장소를 방문해 달라는 수많은 초대에 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행여나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곳에 모두 방문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여러분 모두가 제 마음과 기도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캐나다에 있는 모든 지역의 원주민들이 겪는 고통과 상처, 어려움과 도전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 앞에서 교황은 “침묵과 기도”를 요청했다. 그러한 침묵의 순간들이 “고통을 내면화”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자고 덧붙였다. 아울러 “악”에 직면해 “선”이신 주님께 기도하는 한편, “죽음”에 직면해 “생명”이신 하느님께 기도하자고 초대했다. “그분께서 우리를 함께 걷게 해 주시길 빕니다.” 

교황에게 선물한 깃털 머리장식

참석자들의 눈물과 함께한 교황의 연설은 간간이 터져 나오는 박수로 중단되기도 했다. 연설 말미에, 윌튼 리틀차일드 부족장이 북을 두드리는 원주민과 함께 단상에 올라 원주민의 영광과 권위의 상징인 전통 깃털 머리장식을 교황에게 씌워줬다. 그런 다음 많은 원주민들이 교황과 악수하고 인사하려고 계단을 올라왔다. 그들이 교황에게 선물과 양피지를 건네자, 교황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일어나 묵주를 주며 화답했다. 행사 말미에 교황은 홍색 영대를 착용하고 영어로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회중을 강복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25 7월 2022, 0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