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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예수님이 마음을 고쳐 주시고 과거의 상처를 낫게 하십니다”

매년 100만 명에 가까운 순례자를 맞이하는 성녀 안나 국립성지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28일 생땅 드 보프레 성지성당에서 엠마오의 제자들에 대한 묵상으로 스며든 화해를 위한 미사를 거행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우리 원주민 형제자매의 몸 안에서 상처를 입은 그리스도의 몸”에 직면한 우리의 실패를 포용하시고 “우리 자신을 평화의 도구”로 만드신다고 말했다.

Tiziana Campisi / 번역 박수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28일 생땅 드 보프레 성지성당에서 화해의 미사를 거행했다. 여러 주교, 대주교, 추기경, 교황을 수행한 교황청 고위 성직자들도 공동으로 미사를 집전했다. 퀘벡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세인트로렌스 강변의 아름다운 대성당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비롯한 수백 명의 신자들이 참례한 가운데 교황은 루카복음에 나오는 엠마오의 제자들의 여정에 대해 스페인어로 강론했다. 교황은 엠마오 제자들의 여정을 삶과 신앙의 길, 특히 교회가 캐나다에서 수행하고 있는 “치유와 화해의 여정”에 나서는 우리 각자와 교회의 여정에 비유했다. 생땅 드 보프레 성지성당에서 봉헌된 성찬례 또한 이에 대한 표징이었다. 성찬례에 참례하는 신자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은 1만 석이 마련됐으며, 이 가운데 성당 내부에만 1600석이 준비됐다. 이날 많은 원주민들이 오전 5시30분부터 교황의 말을 듣기 위해 모였다. 교황은 성당 제의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퀘벡대교구장 제라르 시프리엥 라크루아(Gérald Cyprien Lacroix) 추기경과 함께 교황 전용차를 타고 성당 밖에 모인 순례객들 사이를 돌며 인사했다.

교황 전용차를 타고 성녀 안나 대성당 밖에 모인 신자들에게 인사하는 교황
교황 전용차를 타고 성녀 안나 대성당 밖에 모인 신자들에게 인사하는 교황

실망과 실패를 겪을 때

이스라엘을 구원하리라고 생각했던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길을 잃고 마음이 상한 두 제자처럼 우리도 “우리 마음속에 깃든 꿈, 계획, 기대, 희망을 실현하려 할 때” 우리의 나약함과 취약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고 교황은 운을 뗐다. 이어 “우리는 패배와 실망을 경험하고, 때때로 우리를 마비시키는 실패의식에 사로잡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우리의 높은 이상이 실존적 실망과 충돌”하거나 훌륭한 프로젝트를 착수하려 하지만 그럴 역량이 없음을 발견할 때, 혹은 “좌절, 실수, 실패, 넘어짐을 경험하고 우리가 믿고 헌신했던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 괴로움과 절망에 휩싸이게 된다고 말했다.

강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고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원주민의 여러 대표들이 주의 깊게 강론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교황은 “정확히 바로 그 순간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순간이라고 복음이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시어 그들을 슬프게 했던 사건들을 성경 말씀에 비추어 설명하시며 그들과 동행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 눈을 다시 뜨게 하시고 우리 마음을 다시 불타오르게 하십니다.” 교황은 “우리의 실패가 주님과의 만남으로 이어질 때마다 생명과 희망이 다시 태어나 우리가 우리 자신, 우리 형제자매들,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캐나다 원주민들이 겪은 비극을 언급했다.

“우리 원주민 형제자매의 몸 안에서 상처를 입은 그리스도의 몸과 악의 추문에 직면하면서, 우리도 비통함에 빠지고 실패의 무게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순례자들과 영적으로 합류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 순례자들은 ‘거룩한 계단’을 오르는 이들, 곧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로마 총독 관저로 오르셨던 거룩한 계단을 오르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고통으로 가득 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다음의 질문들을 교회로서 여러분과 동행하도록 해 주십시오. 왜 이 모든 일이 일어났을까요?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공동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오랫동안 아픔으로 얼룩진 회중의 얼굴이 교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교황은 많은 이들의 내면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강론했다. 

달아나고 싶은 유혹

교황은 우리가 실망의 고통을 겪을 때 “달아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 유혹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실에서 도망치고 그러한 일들을 없애 버리고 싶어하는 유혹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하는 일을 피하려고 달아나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다고 교황은 덧붙였다. “그것은 원수에게서 오는 유혹입니다. 원수는 우리의 영적 여정을 위협하고 교회의 영적 여정을 위협합니다.” 교황은 이러한 유혹이 “우리의 모든 실패가 이제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며 “비통함과 슬픔으로 우리를 마비시키고, 우리가 더 이상 다른 것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다시 시작할 방법을 찾는 것은 절망적이라고 설득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

교황은 “실망과 지친 상태에서 회복”하려는 열망 속에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하느님과 화해하기를 바라는 “보다 정의롭고 형제애 넘치는 사회로 가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오직 한 가지 방법,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길, 곧 길이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여정에 가까이 오심을 믿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깁시다. 우리가 개인이자 공동체로 살고 있는 역사를 말씀이신 분께서 해석하시도록 하여 그분께서 우리에게 치유와 화해의 길을 보여주시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있는 성녀 안나와 여성들

교황은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성찬례가 거행되고 있는 대성당이 성녀 안나에게 봉헌됐음을 떠올리며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 계획에서 여성들에게 주시려 하신 역할”을 언급했다.

“성녀 안나,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 부활절 아침의 여인들은 우리에게 화해의 새로운 길을 보여줍니다. 많은 여성들의 자애로운 모성애가 새로운 결실의 시간을 향하는 교회인 우리와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이토록 많은 불모지와 숱한 죽음을 뒤로 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중심에 둘 수 있습니다.”

우리 실존의 중심이신 예수님

끝으로 교황은 “우리의 질문, 우리 자신의 노력, 사목생활의 중심”에 “주 예수님”을 모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씀이신 분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이 되게 합시다. 그분께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밝히시고 우리 눈을 회복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느님 사랑의 능동적인 현존과 선의 가능성을 볼 수 있도록 말씀이신 분께서 우리의 중심이 되게 합시다. 성찬의 빵을 우리 중심으로 삼읍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위해 다시 한번 그 빵을 떼어 주시고, 우리와 함께 당신의 삶을 나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감싸주시고, 우리의 지친 발걸음을 지지해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고쳐 주실 수 있게 합시다.”

교황은 이런 방식으로만 “하느님, 타인, 우리 자신과 화해”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 자신이 화해와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며 강론을 마무리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순간은 감동적이었다. 서로 손을 꼭 잡고, 포옹하며, 속삭이는 말이 오가고, 눈이 마주쳤다. 화해의 길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미사 말미에 퀘벡대교구장 제라르 시프리엥 라크루아 추기경은 교황에게 다음과 같이 인사했다. “엠마오의 스승님처럼 교황님은 우리와 함께 치유와 화해의 길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우리의 결점을 겸허하게 인정함으로써 우리의 특정 현실에 대해 열린 길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악의 뿌리를 뽑고 정의, 일치,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 공동체를 완전한 치유로 이끌 수 있는 길을 모색하도록 합시다.” 라크루아 추기경은 교황에게 퍼스트 네이션·메티스·이누이트 원주민과 많은 사람들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교황님의 깊고 진심 어린 관심은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또한 평화에 이르는 화해 과정에 필요한 원동력을 마련해줬습니다.” 아울러 기대하는 결과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내, 수용, 진심 어린 공감의 몸짓, 겸손, 이해, 타인의 삶과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적의 성녀 안나상이 있는 경당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교황
기적의 성녀 안나상이 있는 경당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교황

마지막 강복 후 교황은 휠체어를 타고 오크 나무로 조각된 기적의 성녀 안나상이 있는 경당으로 이동했다. 이 경당은 하나의 참나무 조각으로 조각된 성녀 안나가 다이아몬드와 루비, 진주가 박힌 황금 왕관으로 장식된 딸 마리아를 팔에 안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미사는 정확히 20년 전인 2002년 토론토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주제곡 ‘세상의빛(Lumière du monde)’을 부르며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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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7월 2022,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