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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애 없이 복음화 사명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3일 연중 제14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중요한 것은 주인공 의식이나 경쟁력, 능률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핵심은 형제들과 함께 걸으며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역량이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이번 주일 전례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루카 10,1)라는 구절을 읽게 됩니다. 제자들은 혼자가 아니라 ‘둘씩’ 파견되었습니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둘씩 선교하러 간다는 것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을 듯합니다. 두 사람이 잘 어울리지 못한다거나, 서로 다른 속도로 간다거나, 도중에 한 사람이 지치고 병에 걸려 다른 사람도 멈추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 혼자라면 여정은 더 신속하고 순조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당신에 앞서 혼자 보내지 않으시고 ‘둘씩’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해 봅시다. 주님께서 이렇게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고을로 먼저 들어가 예수님을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것은 제자들의 임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말씀은 그들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 소책자”를 주신 게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증거하라는 말씀입니다. 말하기보다 증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일꾼으로 정의하십니다. 곧, 그들은 ‘일하도록’, 행동을 통해 복음화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자신들의 사명을 수행하는 첫 번째 구체적인 행동은 바로 ‘둘씩’ 가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말을 양보할 줄 모르는 “촉새” 설교자가 아닙니다. 다른 무엇보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바로 제자들의 삶입니다. 제자들은 함께 지낼 줄 알고, 서로 존중하며,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지 않고, 입을 모아 유일한 스승님에 대해 말합니다.

완벽한 사목계획을 수립하고, 잘 짜인 사업을 시행하고, 마지막 세부사항까지 조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고 많은 방법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애가 없다면 복음화 사명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한번은 한 선교사가 동료수사님과 함께 아프리카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와 헤어지고 어느 마을에 들러 그곳에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일련의 건축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언제나 건설현장과 회계서류의 한가운데에 있는 좋은 사업가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삶 (...) 바로 그 “하지만”이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경영을 다른 사람들, 평신도들에게 맡기고 그 동료수사님과 합류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보내신 이유를 이해했습니다. 복음화 사명은 개인의 행동주의, 다시 말해 “하는 것”에 토대를 두는 게 아니라 형제적 사랑의 증거에 토대를 둬야 합니다. 함께 사는 것이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것인가? 형제애의 마음과 형제애의 방식으로 전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방식으로, 곧 주인공 의식이나 경쟁력, 능률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전할 것인가?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함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법을 알고 있는지,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관점을 고려하는지, 우리가 혼자 힘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그렇게 하는지 자문해 봅시다. 무엇보다도 이 형제애적 방식을 통해 제자들의 삶은 스승님의 삶을 드러내고 이를 참으로 다른 이들에게 선포하게 됩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께서 형제애의 증거를 통해 주님을 위한 길을 준비하도록 가르쳐 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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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7월 2022, 23:42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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