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교황, 몰타 순방 마지막 일정 “이주민을 따뜻하게 맞아들이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할파 소재 “요한 23세 평화연구소”의 난민센터를 방문해 200여 명의 난민을 만나며 이틀에 걸친 몰타 사도 순방 일정을 마무리했다. 교황은 난민을 “숫자가 아니라 각자 사연을 지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라”며 “침몰한 보트에 우리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고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아울러 두 난민 청년(다니엘 씨와 시리만 씨)의 증언을 들으며 “부당하고 야만적인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를 떠나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도 기억했다. 교황은 몇 시간 전 리비아를 출발한 보트가 지중해에서 난파해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억하며 한 난민 가족과 함께 성모상 앞에서 기도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재협 신부

“주님, 이 세상이 모든 이의 불가침한 존엄을 존중하는 세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두려움과 편견에서 저희를 자유롭게 하소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몰타 사도 순방의 마지막 일정으로 할파 소재 “요한 23세 평화연구소”의 난민센터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교황은 4명의 자녀를 둔 난민 가족과 함께 성모상 앞에 서서 이주민을 위한 보편 지향 기도를 바쳤다. 교황은 “새로운 터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많은 이주민이 이곳 몰타에 도착하고 떠난다”며 “안타깝게도 이들의 권리는 때때로 관할 당국의 무관심으로 침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흰 초에 불을 붙였다. 이 불꽃은 형제살해의 분열로 비탄에 빠진 유럽의 마음과 온 인류의 마음을 밝혀주는 “믿음과 희망”을 상징한다. 

사람은 숫자가 아닙니다

교황은 몰타 사도 순방의 마지막 연설을 통해 “세계화된 세상에서 인류 가족의 미래”가 인류애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람을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남자이자 여자, 형제이자 자매인 사람들입니다. 저마다 고유한 얼굴이 있고 고유한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TV나 사진을 통해 바다 위에 떠도는 난민보트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이들이 우리 자신, 혹은 우리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문명의 난파

교황은 불과 몇 시간 전 리비아를 출발한 작은 보트가 지중해에서 난파당했다는 소식을 떠올렸다. 출발 당시 약 90명을 태운 보트에서 마지막으로 구조된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교황은 “지중해에서 목숨을 잃은 우리 형제자매들”을 기억하며 기도하자고 초대하는 한편 “우리가 또 다른 종류의 난파”, 곧 비극적이고 위태로운 “문명의 난파”로부터 “구조(구원)”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말했다. 

“이미 수많은 우리 형제자매들과 아이들이 최근 몇 년 동안 지중해에서 난파를 경험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난파를 당하고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는 동안 또 다른 난파도 벌어집니다. 바로 ‘문명의 난파’입니다. 문명의 난파는 난민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협합니다. 우리 문명의 배를 침몰시키려고 위협하는 이러한 난파에서 어떻게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을까요? 인류애로 행동해야 합니다.”

할파 소재 “요한 23세 평화연구소” 난민센터에서 한 여아에게 인사하는 교황
할파 소재 “요한 23세 평화연구소” 난민센터에서 한 여아에게 인사하는 교황

부당하고 야만적인 우크라이나 전쟁

교황은 이주 현실에서 “문명이 위기에 처한 시대의 징조”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 현실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복음에 대한 충실함도 위기에 처해있음”을 가리킨다고 덧붙였다. 그 위기란 교황이 말한 대로 “문명의 난파”다. 아울러 교황은 세상이 아직 우크라이나의 “신성모독적” 전쟁을 생각하지도 못했던 지난해 12월 레스보스섬에서 연설한 내용을 다시금 반복하며 언제나 난민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출신 두 청년인 다니엘 씨와 시리만 씨가 들려준 극적인 사연을 전해들은 교황은 “여러분의 이야기는 부당하고 야만적인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를 떠나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여러분은 마음을 열고 삶을 나눠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눈을 들여다보려고 왔습니다

교황은 센터의 난민을 향해, 나아가 온 세상의 난민을 향해, 레스보스섬에서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저는 여러분 가까이에 있습니다. (…) 저는 여러분의 얼굴을 마주하고 여러분의 눈을 들여다보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람페두사를 방문한 이후로 저는 여러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언제나 여러분을 마음에 품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지난 1971년 프란치스코회 소속 디오니수스 민토프(Dionysus Mintoff) 신부가 설립한 난민센터의 야외 공연장에서 이러한 교황의 애정 어린 인사가 울려 퍼졌다. ‘좋은 아빠’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디오니수스 신부는 이번 행사를 시작하며 인사말을 전했다. 교황은 행사장에 도착하기 전 디오니수스 신부의 숙소를 방문하고 동료 수도자들과 잠깐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교황은 이번 사도 순방의 주제 성구인 “그들은 우리에게 각별한 인정을 베풀었다”를 다시 떠올렸다. 이번 주제는 서기 60년경 바오로 사도 일행이 배를 타고 로마로 가던 도중 난파되어 몰타 해안에 상륙했을 당시, 그들을 맞아준 몰타 주민들을 묘사한 구절이다. “몰타가 언제나 이 같은 모습으로 해안에 도착하는 이들을 맞아들이고,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안전한 피난처가 되길 바랍니다.”

난민센터 창설자 디오니수스 민토프 신부와 인사하는 교황
난민센터 창설자 디오니수스 민토프 신부와 인사하는 교황

침해된 권리와 부서진 꿈

교황은 고향을 떠난 이들의 여정을 함께하는 청년 시리만 씨를 향해 말했다. 시리만 씨는 교황 앞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꿈”에 대해 증언했다. 교황은 시리만 씨의 꿈이 “고단한 현실과 충돌하고, 종종 위험하며, 때로는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현실에 가로막힌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리만 씨는 수백만 이주민이 마음속에 품고 호소하는 목소리를 들려줬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들의 권리는 침해됩니다. 안타깝게도 때때로 관할 당국의 무관심으로 침해됩니다. 시리만 씨는 핵심을 잘 짚어 주셨습니다. 곧, ‘인간의 존엄’입니다. 시리만 씨의 말을 저도 반복합니다. 여러분은 숫자가 아니라 살과 뼈로 이뤄진 인간이며, 각자 얼굴과 꿈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꿈은 가끔 부서지기도 합니다.”

사람에서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교황은 “사람에서부터, 사람의 존엄으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 문제는 우리에게 너무 버겁다.’ ‘우선 내 일부터 해결하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맙시다. 안 됩니다. 이 같은 함정에 빠지지 맙시다. 인류애의 정신으로 이주민과 난민이 마주한 과제에 응답합시다. 형제애의 불을 지피도록 합시다. 사람들이 그 온기로 몸을 녹이고 다시 일어서서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할파 소재 “요한 23세 평화연구소” 난민센터를 방문한 교황
할파 소재 “요한 23세 평화연구소” 난민센터를 방문한 교황

뿌리에서 찢겨나가는 아픔

최근 뉴스를 떠올린 교황은 “아마도 지금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 순간에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다를 건너는 배들이 있을 것”이라며 “희망을 찾아 바다에서 목숨을 거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초대했다.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자신의 고향과 집을 떠나야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는 로힝야족도 기억합니다.”

“여러분은 저마다 자신의 뿌리에서 찢겨나간 경험으로 살아갑니다. 그 찢어짐이 마음에 상처를 남깁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감정의 아픔일 뿐 아니라, 남은 인생의 성장 여정에도 큰 영향을 주는 깊은 상처입니다. 이 상처를 치유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무엇보다도 풍요로운 인류애를 체험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환대하는 이들을 만나고, 여러분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이해해주며 여러분을 동행해주는 이들을 만나야 합니다. 아울러 여러분도 다른 동료들의 여정에 함께하면서, 그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짐을 나눠지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교황의 꿈

교황은 “인류애와 형제애로 가득한” 환대를 체험한 이주민들이 “환대와 형제애를 일구는 이들”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뿌리에서 잘려 찢어진 상처가 아물면, 여러분도 내면에 간직한 풍요로움, 인류의 소중한 유산인 이 풍요로움을 끌어내어 여러분을 맞아들인 공동체와 여러분이 속한 사회와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나아가야 할 길, 바로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의 길입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 기억

교황은 이곳 난민센터가 성 요한 23세 교황의 이름에서 따왔음을 상기하며, 세상의 “긴장과 완고함” 속에서도 “인정을 베푸는 장소”, “사회적 우애의 네트워크와 만남의 문화를 강화하는 장소”가 되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물론 이러한 노력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바꿀 순 없겠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이 바로 평화의 일꾼”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성 요한 23세 교황이 기념비적인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에서 아름답게 표현한 평화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며 연설을 마쳤다.

“그리스도께서는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들 마음에서 제거하실 것이다. 그분은 모든 인간을 진리와 정의와 형제적 사랑의 증인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백성들을 책임진 자들을 비추시어, 국민의 정당한 복지를 자극하도록 평화의 큰 선물을 내리시어 보증하고 보호하실 것이다”(「지상의 평화」, 171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03 4월 2022, 2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