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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엔은 무력합니다. 여전히 강자의 논리가 우세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4월 6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 교리교육을 통해 지난 4월 2-3일 몰타 사도 순방을 간추리며 “오늘날의 지배적인 논리는 강대국의 이익을 옹호하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몰타가 강대국들의 식민지화에 대항하며 존중과 자유의 논리를 추구하는 힘없는 작은 나라들의 권리와 힘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몰타 사도 순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4월 2일 토요일과 3일 주일에 몰타를 방문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계획한 사도 순방이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그 여파로 2년이나 연기된 순방이었습니다. 몰타가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이른 시기에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떻게 매우 이른 시기에 복음이 전해졌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배가 난파된 후 몰타 해변에 상륙한 바오로 사도가 배에 함께 있던 27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기적적으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몰타 원주민들이 그들 모두를 “각별한 인정”(사도 28,2)으로 환대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잊지 맙시다. “각별한 인정”을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제가 이번 사도 순방의 주제로 선택한 성구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각별한 인정을 베풀었다”(사도 28,2). 왜냐하면 이 성구가 이주 현상을 비롯해, 보다 일반적으로 세상이 더욱 형제애로 넘치고, 살기 좋은 곳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배워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같은 배에 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난파”에서 살아남기 위해 따라야 할 길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몰타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몰타가 중요한 장소인 까닭은, 우선 몰타가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의 바다 한가운데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와도 접해 있기 때문입니다. 몰타는 사람과 문화가 만나는 일종의 “바람의 장미(rosa dei venti, ‘모든 방향으로’라는 의미)”입니다. 몰타는 지중해 지역을 360도에서 관찰할 수 있는 특별한 지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종종 “지정학”에 대해 말하지만, 불행히도 오늘날의 지배적인 논리는 경제적 영향력, 이념적 영향력, 혹은 군사적 영향력의 영역을 확장하는 가장 강한 국가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전략입니다. 우리는 이를 전쟁을 통해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몰타는 “작은 이들”의 권리와 힘을 대표합니다. 작지만 역사와 문명이 풍부하며 다른 논리를 추구해야 하는 작은 국가들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작은 나라들이 추구해야 하는 다른 논리란 바로 존중과 자유의 논리입니다. 강대국들의 식민지화에 대항하는 존중과 자유의 논리이자, 다양성과 함께하는 공생의 논리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걸 목격하고 있습니다. 한 쪽뿐만 아니라 다른 쪽에서도 말입니다.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평화의 역사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강대국들이 경쟁하던 옛 역사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리는 유엔의 무력함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도 순방의 두 번째 측면은 몰타가 이주 현상과 관련해 중요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저는 몰타의 할파에 자리한 “요한 23세 평화연구소” 난민센터에서 험난한 여행 끝에 몰타에 도착한 수많은 이주민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증언을 듣는 데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왜곡된 시각에서 벗어나 이주민들의 얼굴, 사연, 상처, 꿈, 희망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주민은 저마다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그들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처럼 그들도 저마다 유일무이합니다. 각각의 이주민들은 자신의 존엄성과 뿌리가 있고 문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각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보다 한없이 큰 자산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유럽이 이주민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물론 환대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먼저, 훨씬 더 먼저, 국제적인 차원에서 함께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주 현상은 한낱 비상사태로 축소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표징입니다. 그렇게 이주 현상을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이주 현상은 갈등의 표지가 될 수도 있고, 평화의 표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몰타에 “요한 23세 센터”를 시작하신 분은 그리스도인다운 선택을 했습니다. 이 센터가 ‘평화 작업실’, 곧 “평화연구소(Peace Lab)”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몰타 전체가 평화를 위한 작업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몰타 전체가 그 본연의 태도와 함께 평화를 위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몰타 국민이 자신의 뿌리에서 형제애와 연민과 연대의 수액을 끌어낸다면 그 사명을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몰타 국민은 이러한 가치를 복음과 함께 받았습니다. 그리고 복음 덕분에 그것들을 생생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로마의 주교로서 몰타 국민을 믿음과 친교 안에서 굳건하게 하려고 몰타로 갔습니다. 사실 이번 사도 순방의 세 번째 측면은 몰타가 복음화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몰타와 고조교구에서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 심지어 많은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온 세상에 전하려고 선교사로 파견되었습니다. 마치 바오로 사도가 몰타를 경유하면서 몰타 국민의 DNA에 선교 사명을 남겨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의 방문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몰타섬과 고조섬의 거룩하고 충실한 하느님 백성에게 감사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몰타에서도 소비주의, 신자본주의, 상대주의에 바탕을 둔 세속주의와 세계화된 사이비문화(pseudocultura)의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몰타도 새 복음화(nuova evangelizzazione)가 필요한 때입니다. 제가 선임교황님들처럼 성 바오로 동굴을 방문한 것은 신앙을 그 기원에서 끌어올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복음이 그 기원의 생생함으로 몰타에 흘러내려 민간에 널리 퍼져있던 종교심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되살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가 열렬한 기도 모임을 거행한 고조섬의 타피누 국립 성모성지가 이를 상징합니다. 저는 그곳에서 성모님을 크게 신뢰하는 몰타 국민의 심장 박동을 느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항상 우리를 본질적인 것, 곧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로, 그분의 자비로우신 사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니다. 마리아께서는 세세 대대로 복음의 기쁜 선포를 불러일으키는 성령의 불꽃으로 우리 믿음의 불꽃을 되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기쁨은 복음화이기 때문입니다! 복음화가 교회의 소명이자 교회의 기쁨이라고 하신 성 바오로 6세 교황님의 말씀을 잊지 맙시다. 더 이상 잊어버리지 맙시다. 왜냐하면 이것이 교회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매우 친절하고 우애적으로 저를 맞아주신 몰타 대통령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분과 그분의 가족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저를 친절하게 맞아주신 총리님과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또한 주교님들과 교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과 자원봉사자들, 기도를 통해 저와 함께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요한 23세 평화연구소” 난민센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서 교구 협력자들의 도움으로 변함없이 일하고 계시는 난민센터의 창립자 디오니수스 민토프 신부님을 기억합니다. 그분은 오늘날 우리가 매우 필요로 하는 이주민에 대한 사도적 열정과 사랑을 보여주는 모범이십니다. 이번 방문으로 우리는 씨앗을 뿌렸습니다. 하지만 그 씨앗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무한하신 선하심으로 사랑하는 몰타 국민에게 평화와 선의 열매를 풍성하게 해 주시길 빕니다!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인다운 환대를 베풀어 주신 몰타 국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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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4월 202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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