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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교회와 유럽에 장벽이 있으면 안 됩니다. 다양성은 결코 정체성을 위협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월 2일 키프로스 가톨릭 공동체와의 만남으로 키프로스 사도 순방의 본격적인 일정에 들어갔다. “우리는 다양성을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들을 질투하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유혹에 빠지면 두려움이 커집니다.” 교황은 “인간다운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함께 일하고, 분열을 극복하며, 장벽을 허물고, 일치의 꿈을 함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폭력과 역경으로 지치고 시련을 겪고 있는 레바논 국민들”을 기억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박수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월 2일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키프로스섬에서 사제, 부제, 남녀 수도자, 교리 교사, 가톨릭 단체와 여러 교회 운동 단체의 관계자들을 만나며 사도 순방의 본격적인 일정에 들어갔다. 교황은 이날 키프로스 가톨릭 공동체를 대상으로 연설했지만, 그 메시지는 분열과 신앙의 위기로 얼룩진 유럽 전체에 보내는 것이었다. “인간다운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함께 일하고, 분열을 극복하며, 장벽을 허물고, 일치의 꿈을 함양해야 합니다.” 교황은 “관계”의 자리이자 “다양성이 공존하는” 자리인 교회에서도 일치를 함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날 신자들의 기도와 축제 분위기 속에서 키프로스의 수도 니코시아에 위치한 마론파 동방 가톨릭 교회 주교좌성당인 니코시아의 은총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방문했다. 이 성당은 이미 2010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방문한 바 있다. 

니코시아의 주교좌성당에 도착한 교황

형제적 교회

사람들이 인근 건물의 발코니에서 인사하며 사진을 찍는 동안 교황은 전용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마론파 동방 가톨릭 교회 총대주교인 베차라 부트로스 라이(Béchara Boutros Raï) 추기경과 셀림 장 스페이어(Selim Jean Sfeir) 대주교가 대성당 입구에서 교황을 영접했다. 셀림 장 스페이어 대주교가 성수와 십자고상을 건네자 교황은 허리를 굽혀 십자고상에 입을 맞췄다. 교황은 그들과 함께 나란히 걸어 대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이 모습은 이날 교황이 연설에서 강조한 형제애를 반영하고 있었다. 이들이 걸어간 긴 레드 카펫 위로 황동 샹들리에의 불빛과 성가대 뒤편에 위치한 성인들의 형상으로 장식된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이 얹혔다. 

교황은 “우리는 세상을 위한 형제애의 도구인 형제적 교회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파편화된 세계는 따라서 어떤 강력한 신호를, 정확하게 말하면 교회에서 나오는 신호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키프로스 교회에서 나온다. 다시 말해 “두 팔 벌려 환대하고 통합하고 동반하는” 키프로스 교회다.

“이는 신앙의 위기로 점철된 유럽 전역의 교회를 위해서도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충동적이거나 공격적일 필요도,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불평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표징과 위기의 징조를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니코시아에서 가톨릭 공동체와 만나는 교황
니코시아에서 가톨릭 공동체와 만나는 교황

두려움의 유혹에는 “아니오”

교황은 키프로스 교회를 특징짓는 “서로 다른 기원, 다양한 예식과 전통” 등 “풍부한 영적·교회적 감수성”을 떠올리며, 이것이 “다양한 과일이 섞인 멋진 마체도니아(과일 샐러드) 요리”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성을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들을 질투하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유혹에 빠지면 두려움이 커집니다. 두려움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의심을 낳으며, 곧이어 무력충돌로 번집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형제자매들입니다.”

다양한 역사와 문명의 바다, 지중해

이 형제애는 키프로스 섬의 지리적 위치에도 반영돼 있다. 교황은 “여러분은 지중해에 있다”며 축성자들과 평신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양한 역사를 품은 바다, 많은 문명의 요람이었던 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민족과 문화가 상륙하는 바다입니다. (…) 우리는 환대하고 통합하고 형제자매로서 함께 걸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말입니다!”

레바논의 역경

교황의 연설에 앞서 두 수녀의 증언이 있었다. 요셉회 출신 수녀는 지난 1974년 터키 점령 당시, 그날 밤을 기억하며 이야기를 들려줬다. 프란치스코회 출신 수녀는 “인간 존엄에 상처를 입은” 이주민들과 노인들을 보살피는 경험을 나눴다. 두 수녀의 증언 후, 베차라 라이 추기경이 키프로스 마론파 동방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떠올리며 인사말을 했다. 베차라 라이 추기경의 인사말을 들은 교황은 ‘향백나무의 나라’ 레바논에 대한 슬픔을 표했다. “레바논을 생각할 때, 저는 레바논이 직면한 위기를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폭력과 역경으로 지치고 시련을 겪고 있는 레바논 국민들의 고통을 느낍니다. 저는 레바논 국민들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평화에 대한 염원을 위해 함께 기도합니다.”

“다색” 민족

교황은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수행한 봉사, 특히 학교에서 펼치고 있는 수도자들의 교육 활동에 감사를 전했다. 또한 수천 년 동안 이어온 마론파 교회와 라틴 교회에도 감사를 표했다. 두 교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앙의 열정”이 자라는 것을 보았고, 오늘날에는 수많은 이주민들의 존재 덕분에 “‘다색(多色)’ 민족으로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는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가 만나는 진정한 만남의 장소”다.

“이 교회의 얼굴은 유럽 대륙에서 키프로스의 역할을 반영합니다. 황금빛 들판의 땅이자 바다의 파도가 어루만지는 섬이지만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얽힌 역사, 만남의 모자이크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톨릭, 곧 보편적인 교회라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초대로 모든 사람이 환대받고 들어가는 열린 공간입니다.”

교황은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즉흥적으로 말했다. “우리 중 누구도 사람들에게 개종을 강요하기 위해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개종 강요는 무익합니다. 생명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치지 않고 우리를 부르시고, 지치지 않고 우리와 가까이 계시며, 지치지 않고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 주님께서는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자비 역시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베차라 라이 추기경의 인사말
베차라 라이 추기경의 인사말

교회에는 장벽이 없습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력히 호소했다.

“가톨릭 교회에는 장벽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공동의 집이며, 관계의 자리이자 다양성이 공존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한쪽에는 이런 예식이, 다른 쪽에는 저런 예식이 있습니다. (...)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어떤 수녀는 저렇게 생각합니다. 각자 바라보는 방식이 다릅니다. (...) 모든 것의 다양성, 그리고 그 다양성 속에서 일치의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누가 일치를 이루십니까? 바로 성령이십니다. 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알아듣습니다. 성령께서는 다양성의 창시자요 화합의 창시자이십니다.” 

서로 인내합시다

교황은 성 바르나바를 예로 들었다. 성 바르나바는 이교도였다가 새롭게 개종한 많은 사람들에게 파견됐을 당시 “인내”의 덕목을 실천했다. 교황은 키프로스 교회에게도 이 같은 인내를 요청했다. “엄격하고 융통성 없는 태도를 보이거나 계율 준수에 대한 너무 까다로운 요구로 새로 온 사람들의 연약한 믿음을 짓누르지 않았습니다.” 교황은 성 바르나바가 “함께하는 인내”를 보여줬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인내하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변화에 당황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차분하게 환대하고 복음의 빛에 비추어 상황을 식별하는 교회 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

교황은 주교들에게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만남 안에서” 사제들을 찾고 “다른 그리스도교 형제들을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에 지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교황은 ‘돌아온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를 예로 들며 사제들에게 “엄격한 재판관”이 아니라 “항상 사랑하는 아버지”가 돼 달라고 말했다.

그 복음의 내용을 기억하면서, 교황은 몇 년 전 관람했던 하느님 자비의 상징인 예수님의 말씀을 무대에 올린 팝 오페라에 대해 말했다. 특히 교황은 죄 많은 아들이 친구와 대화하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당시 공연에서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의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버릴 수 있어 집에 가기 두렵다”고 말했다. 그때 친구는 그 아들에게, 마치 교황이 ‘돌아온 아들의 비유’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렇게 말하며 격려했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집에 오고 싶지만 아버지가 환영해주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씀드려. 아버지가 너를 환영하고 싶다면 집의 가장 높은 창문에 손수건을 묶어서 바깥에서 보일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씀드리는 거야. 이런 방식으로 네 아버지가 너를 환영할 것인지 아니면 쫓아낼 것인지 먼저 말씀하시게 될 거야.”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집으로 간다. 아들은 아버지의 집 정면이 하얀 손수건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교황은 “이것이 우리를 위한 하느님을 보여준다”며 “하느님은 결코 용서하는 데 지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사제 여러분, 고해성사를 엄격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대할 때는 ‘압니다. 이해합니다’ 하고 말하십시오. 이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놔두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뜻합니다.”

“인내는 또한 다른 영적 감수성, 믿음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 다른 문화에 열린 귀와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는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축소하길 원치 않습니다. 제발, 그래선 안 됩니다. 모든 문화와 모든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모성적 인내로 통합하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시노드의 여정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려는 것은 인내하며 기도하는 것, 하느님께 순명하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교회를 위해 인내하며 경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논쟁하되 다투지 마십시오

끝으로 교황은 성 바르나바와 성 바오로의 형제적 우애를 상기하면서 “교회 안에서의 형제애”를 촉구했다.

“우리는 전망이나 관점에 대해 논쟁할 수 있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으며 또한 잘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의견에 대해 논쟁하십시오. 너무 엄격한 평화는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한 가정에서 형제들도 말다툼을 합니다. 저는 아예 논쟁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의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숨은 의도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진솔하게 얼굴을 마주하고 말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며 “누구에게도 좋지 않은 뒷담화를 하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논쟁이 성장과 변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투거나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이시며 친교이신 성령의 생명력을 표현하고 실천하기 위해 논쟁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논쟁하되 형제자매로 함께 남아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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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2월 2021, 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