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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교황 “두려움, 권력, 위선에서 자유로워진 교회만이 신뢰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두려움, 권력, 위선에서 자유로워진 교회만이 신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베드로가 “실패의 쓰라림”에서 해방됐다고 말하는 한편, 바오로는 “위선적인 겉치레”와 “세속의 힘으로 우리 자신을 드러내려는 유혹”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교황은 미사 중에 신임 관구장 대주교들을 위한 팔리움을 축복하고, 동방 정교회 세계 총대주교의 대표단에게 인사했다.

번역 이재협 신부

베드로와 바오로는 복음의 위대한 두 사도이며, 교회를 떠받치는 두 기둥입니다. 오늘 두 사도의 대축일을 기념하며, 신앙의 두 증거자를 자세히 살펴봅시다.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자신들의 재능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킨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치유하고 해방시키는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위한 해방의 선포자요 사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는 오직 해방을 통해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해방이라는 주제를 함께 살펴봅시다.

갈릴래아의 어부인 베드로는 먼저 자신의 부족함과 실패의 쓰라림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통해 말입니다. 그는 고기를 낚는 전문가인 어부였음에도 밤중에 아무것도 잡지 못했을 때 쓰라린 패배감을 여러 번 맛보았습니다(루카 5,5; 요한 21,5 참조). 또 그는 빈 그물을 마주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강하고 성격 급한 사람이었지만 종종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고(마르 14,30 참조), 열정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였음에도 세상의 사고방식에 따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마태 16,22 참조). 그는 그분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겠다고 말했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의심을 받자 죽음이 두려워 스승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마르 14,66-72 참조).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베드로를 사랑하셨고, 그를 신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포기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그물을 던지도록, 물 위를 걷도록, 용기 내어 자신의 약점을 바라보도록,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당신을 따르도록, 형제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도록, 당신의 양떼를 돌보도록 용기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셨고, 오로지 세속적인 관심사에 바탕을 두고 계산하는 사고방식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감수할 용기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기쁨을 베드로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22,32 참조). 오늘 우리가 복음에서 들은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주님과의 만남으로 이끄는 천국문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셨고, 매고 풀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형제자매를 그리스도와 묶고, 그들의 삶의 사슬과 매듭을 풀 수 있게 하도록 말입니다(마태 16,19 참조).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오늘 제1독서가 전하는 바와 같이 무엇보다 베드로가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감옥에 묶어 둔 사슬이 벗겨지고, 마치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속박에서 자유롭게 풀려난 그날 밤처럼, 그는 서둘러 일어나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고 감옥에서 나가라는 천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베드로 앞에 놓인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사도 12,7-10 참조). 이는 열림의 새 역사, 해방의 새 역사, 사슬이 풀리고 감옥에서 탈출하는 새 역사입니다. ‘베드로는 파스카를 체험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해방시키셨습니다.’

바오로 사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해방을 체험했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을 억압하던 종살이, 사울이라는 그의 옛 이름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첫 번째 왕의 이름인 사울로 불리던 그가 ‘작은 이’를 뜻하는 바오로가 되었습니다. 바오로는 조상들의 전통을 완강하게 지키려는 종교적 열성과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일에서도 해방되었습니다(갈라 1,14 참조). 그는 해방되었습니다. 하느님과 형제자매들에 마음을 열기보다 형식적인 율법 준수와 칼로 전통을 수호하는 일이 그를 완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근본주의자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에서 그를 해방시키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의 약함과 시련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더 큰 결실을 맺게 하셨습니다. 복음 선포의 노고와 육체적 고질병(갈라 4,13-14 참조), 폭력과 박해, 좌절과 모욕, 굶주림과 목마름, 그리고 사도 스스로 말한 것처럼, ‘내 몸에 가시’를 통해서 말입니다(2코린 12,7-10 참조).

바오로 사도는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1코린 1,27)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곧,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필리 4,13 참조), 아무것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로마 8,35-39 참조). 오늘 제2독서가 전하듯, 그리하여 바오로 사도는 생의 마지막에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고” “모든 악행에서 나를 구하셨다”(2티모 4,17.18 참조)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는 파스카를 체험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해방시키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는 신앙의 두 거인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세상에서 복음이 지닌 힘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업신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곁에 계시면서 애정으로 그들과 삶을 나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기도로 그들을 떠받쳐 주셨으며, 때로는 변화시키려고 그들을 나무라셨습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온유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루카 22,32). 바오로에게는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9,4)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 같이 하십니다. 곧, 그분께서는 당신의 기도로 우리와 가까이 계시고,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며, 또한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설 때마다 부드럽게 타이르시며 우리로 하여금 다시 일어서서 여정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 또한 주님과의 만남으로 감동받고 해방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자유로운 교회만이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아무것도 낚지 못하는 실패와 좌절을 이겨내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안락함에 갇혀 예언자적 용기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무력감과 우리를 동요하게 만드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바오로처럼 위선적인 겉치레에서 자유로워지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드리는 약함이 아니라 세속의 힘으로 우리 자신을 드러내려는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완고하게 하고 유연하지 못하게 하는 율법의 준수에서 자유로워지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권력과의 수상쩍은 유착이나 오해와 공격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지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는 우리 손에 맡겨진 교회의 이미지를 오늘날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그 교회는 당신의 애정과 충실함으로 예수님께서 몸소 인도하시는 교회입니다. 두 성인이 제시하는 교회의 이미지는 약하지만 하느님의 현존으로 강해지는 교회, 세상이 자체적으로 줄 수 없는 그 해방을 세상에 전하는 자유로운 교회의 이미지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전하는 해방이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 체념으로부터의 해방, 불의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우리 시대의 모든 이의 삶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희망의 실종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이 미사 중에, 그리고 이 미사 후에도, 우리 도시, 우리 사회, 우리 세상이 얼마나 해방을 필요로 하는지 스스로 물어봅시다. 얼마나 많은 사슬이 풀리고 얼마나 많은 닫힌 문이 열려야 하나요! 우리는 이 해방을 위해 협력하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의 새로움으로 우리가 해방되고 성령의 자유 안에서 걸어갈 때만 말입니다.

오늘 관구장 대주교님들이 팔리움을 받습니다. 베드로와의 일치를 드러내는 이 표지는 양떼에게 생명을 주는 목자의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스스로 자유로워지신 착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양들에게 바치시어 당신의 형제자매를 위한 해방의 도구가 되셨습니다. 아울러 오늘 이 자리에는 친애하는 동방 정교회 바르톨로메오 세계 총대주교님의 대표단이 함께 참석했습니다. 동방 정교회 형제들이 이 자리에 함께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갈라진 형제들의 거리를 좁히는 해방의 여정의 귀중한 표지입니다. 참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관구장 대주교님과 목자들, 모든 교회와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합시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방되어’ 온 세상 안에서 ‘해방의 사도’가 될 수 있길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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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6월 2021, 0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