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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으로도 삶이 치유됩니다. 타인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27일 연중 제13주일 삼종기도를 통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치유는 바로 감정의 치유라고 말했다. 아울러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면서, “예수님과의 내밀한 관계로 들어가” “상처입고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삼종기도의 말미에 “중동의 평화를 위한 날”을 맞아 기도하자고 초대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마태 5,21-43 참조)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극적인 두 상황, 곧 죽음과 질병에 마주치십니다. 그분께서는 죽음과 질병에서 두 사람을 구하십니다. 한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러 갔던 순간에 죽은 어린 소녀이고, 다른 사람은 수년 동안 하혈을 해 오던 한 여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우리의 죽음이 당신을 만지도록 하시며, 고통이나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려고 두 가지 치유기적을 행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이 원수를 물리치십니다. 우리 혼자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그 원수를 말입니다.

하지만 질병이 여전히 뉴스의 중심을 차지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다른 표징인 여인의 치유에 집중해 봅시다. 그녀의 건강보다 그녀의 감정이 더 손상을 입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녀는 하혈을 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불결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녀는 소외된 여인이었고, 안정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었으며, 남편을 맞아들일 수 없었고, 가정을 꾸릴 수도 없었으며, 정상적인 사회관계를 맺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불결”했기 때문입니다. 질병이 그녀를 “불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혼자 살았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질병은 무엇입니까? 암입니까? 폐결핵입니까? 코로나19 대유행입니까? 아닙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질병은 사랑의 결핍입니다. 이는 사랑의 무능력을 뜻합니다. 이 불쌍한 여인은 병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혈하는 병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함께 지낼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랑이 결핍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치유는 바로 감정의 치유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치유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병들었는가, 아니면 건강한 상태인가? 병들었는가? 예수님께서 병든 감정을 낫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름 없는 이 여인의 이야기는 – 이처럼 그녀를 “이름 없는 여인”이라고 부릅시다 – 본보기가 됩니다. 이 이야기 안에서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 본문은 그녀가 많은 치료를 받았다고 전합니다.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마르 5,26). 우리도 사랑의 결핍을 메꾸기 위해 얼마나 자주 잘못된 치료법을 쓰는지요? 우리는 성공이나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사랑은 무상으로 주어집니다. 우리는 가상의 현실로 도피하지만, 사랑은 구체적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형의 꾸밈 뒤로 숨지만, 사랑은 겉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술사나 지도자(guru)들에게서 해결책을 찾지만, 결국 그 여인처럼 돈 없고 평화 없는 우리 자신만 발견할 뿐입니다. 그녀는 마침내 예수님을 택하고 군중 사이로 몸을 던져 옷에,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다시 말해 그 여인은 직접적인 접촉을, 예수님과의 신체적인 접촉을 하려 애씁니다. 특히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과 같은) 이 시기에 우리는 접촉과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규정을 지키고 기도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많은 경우 앵무새처럼 말이죠.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만나기를 기다리시고, 우리가 그분께 마음을 열기를 기다리십니다. 그 여인처럼, 낫기 위해 그분의 옷을 만지기를 기다리십니다. 예수님과의 내밀한 관계로 들어감으로써, 우리의 감정이 치유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바입니다. 사실 우리는 군중이 밀집된 와중에도 예수님께서 누가 당신 옷에 손을 대었는지 찾으시려고 사방을 살피시는 장면을 봅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댑니다. (...)” 그런 것이 아니라,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이것이 예수님의 눈길입니다. 곧,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가득 찬 마음과 얼굴을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처럼 전체를 보지 않으시고, 개인을 바라보십니다. 그분께서는 과거의 실수나 상처 앞에 멈추지 않으시고, 죄와 편견을 넘어서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 각자의 비밀 안에 우리 역사의 추한 일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추한 일들을 낫게 하시려고 그것들을 바라보십니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타인의 추한 일들을 바라보기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말할 때, 얼마나 자주 험담에 빠집니까! 타인을 헐뜯고, 타인을 “탈탈 털어버리는” 험담 말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그것이 삶의 지평입니까? 이런 자세는 언제나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처럼 바라보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을 바라보시고, 우리가 지닌 추한 역사가 아니라 선한 의지를 바라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넘어서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편견을 넘어서십니다. 겉모습에 멈추지 않으시고, 마음에 도달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던 불결한 여인을 고쳐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온유한 사랑으로 그녀를 “딸아” 하고 부르십니다(마르 5,34). 예수님의 방식은 가까이 다가감, 연민, 온유한 사랑입니다. “딸아, (...)” 그리고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녀의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여기 계신 자매 여러분, 형제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바라보게 하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고쳐주시도록 맡겨드리십시오. 저 역시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마음을 보시고 고쳐주시도록 맡겨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온유한 눈길을 이미 체험했다면, 그분을 본받고 그분처럼 행하십시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여러분 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상처입고 외로움을 느낀다는 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한 걸음을 내디디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겉모습에 그치지 않고 마음에 도달하는 눈길을 여러분에게 요구하십니다. 판단하는 눈길이 아니라 – 타인을 판단하길 멈춥시다 – , 판단하지 않고 환대하는 눈길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타인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 마음을 열어젖힙시다. 왜냐하면 오직 사랑만으로도 삶이 치유되기 때문입니다. 사랑만으로도 삶이 치유됩니다. 슬퍼하는 이들의 위로자인 성모님께서 우리가 여정 중에 만나는 상처입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을 어루만질 수 있게 도우시길 빕니다. 그리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타인의 개인적, 사회적 현실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를 사랑하십니다! 판단하지 마십시오. 타인을 살게 해 주고 사랑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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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6월 2021, 23:26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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