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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교구 종신부제들과의 만남에서 한 가족에게 인사하는 교황 로마교구 종신부제들과의 만남에서 한 가족에게 인사하는 교황  (Vatican Media)

교황, 로마교구 종신부제들과 만남 “부제는 반쪽짜리 사제나 특별한 복사가 아닌 겸손한 종”

프란치스코 교황이 6월 19일 로마교구의 종신부제들을 만났다. 교황은 “주교와 사제들이 뽐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며 부제직은 “성직주의의 상처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하느님 백성보다 ‘위에’ 군림하는 사제 계급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교황은 이날 만남에 참석한 로마교구 종신부제들이 위기에 처한 부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좋은 배우자, 좋은 아버지 그리고 조부모”의 표징이 되라고 초대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박수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제가 “반쪽짜리 사제”나 “2급 사제”가 아니라 “좋은 배우자와 좋은 아버지” 그리고 무엇보다 봉사자들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부제들을 “사려 깊고 겸손한” 봉사자들이라고 정의하며 “자기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싶어하는 부제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교황은 부제들의 중요한 임무와 관련해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는 데 헌신하는” 교역자라고 재평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떠올렸다. 그것은 교황이 이날 오전 베네디치오니 홀에서 만난 로마교구의 종신부제들에게 부여하는 임무이기도 하다. 교황은 이번 만남에 참석한 종신부제의 가족들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교황은 가족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누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으며, 휠체어를 탄 종신부제의 아내를 위로했다. 

부제들의 전통

교황은 만남을 시작할 무렵 주스티노 트린치아 종신부제와 인사를 나눴다. 주스티노 트린치아는 지난 6월 18일 로마교구 총대리 안젤로 데 도나티스 추기경으로부터, 로마교구의 보좌 주교로 임명된 루마니아 출신 사제인 베노니 암바루스, 일명 “벤 신부”의 후임으로 카리타스 로마 지부의 새로운 책임자로 임명됐다. 교황은 주스티노 부제에게 다음과 같이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부제님은 벤 신부님보다 체구가 두 배나 크기 때문에 카리타스 활동도 함께 성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교황은 또한 3년 전 아내 로라와 네 명의 자녀들과 함께 로마 치네치타 교외에 위치한 산 스타니슬라오 본당을 맡고 있는 안드레아 사르토리(49세) 부제와 애정 어린 인사를 나눴다. 교황은 산 스타니슬라오 본당처럼 “한 사람의 부제에게 하나의 성당을 맡겨 그곳을 ‘디아코니아(Diaconia,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교회의 자선 활동을 하는 곳)’의 역할을 하게 했던 것”은 “오래된 전통”이었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러한 오래된 전통이 로마교회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저는 성 라우렌시오 디아코니아뿐 아니라, 디아코니아를 선정하여 임무를 부여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부제직은 성직주의의 상처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교황은 부제 직무와 관련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리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은 부제들에 대해 “사제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봉사 직무를 위하여 안수를 받는다”(29항)고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러한 차이가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이전에 사제품을 위한 단순 통과의례로 전락한 부제품이 “그 자리와 특수성을 되찾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는 “성직자들의 계급이 ‘하느님 백성’ 위에 군림하는 성직주의의 상처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성직주의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 백성보다 ‘위에’ 군림하는 사제 계급입니다. 만약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교회 내 성직주의는 계속될 것입니다. 부제들은 하느님 백성을 섬기기 위해 헌신해 왔기 때문에 교회의 지체 안에서 누구도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높일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진정한 힘은 봉사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교황은 교회 내에서 “낮추는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셨기 때문에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낮추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만인의 종으로 낮추셨습니다. 교회 안에 위대한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를 가장 작고 모든 이의 종으로 낮춘 사람입니다.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진정한 힘은 다른 무엇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섬김(봉사) 안에 있습니다.” “그 누구도 봉사의 힘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교황은 이러한 차원의 봉사를 하지 않으면 “모든 직무가 내적으로 공허해지고, 무익해지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며, 결과적으로 조금씩 세속적으로 변한다고 경고했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봉사하는 부제의 관대함은 복음의 향기를 풍깁니다. 그는 등을 돌린 사람들까지 만나러 가기 위해 첫걸음을 내딛으시는 하느님의 겸손한 위대함을 말해줍니다.”

부제는 반쪽짜리 사제나 특별한 복사들이 아닙니다

교황은 오늘날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측면이 사제 수의 감소라며, 그로 인해 분명 “중요하지만, 부제 고유의 직무에 해당하지 않는 대체 업무들” 때문에 부제들의 책임이 배가됐다고 말했다.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부제들에 대해 무엇보다도 “자선과 관리의 직무에 헌신”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초기 교회는 신자들의 필요를 보살펴야 할 때 주교를 대신해 부제들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사이에서 활동했었다고 가르친다. 오늘날 부제들은 카리타스와 가난한 사람들과 가까이 있는 다른 현장에서 뚜렷이 존재한다. 교황은 “이렇게 한다면 절대 나침반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제들은 ‘반쪽짜리 사제’나 ‘2급 사제’가 아니며, ‘특별한 복사’도 아닐 것입니다. 부제들은 아무도 배제되지 않도록 그리고 주님의 사랑이 사람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와 닿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자상한 종들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자신의 계획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따라서 부제의 영성은 봉사의 영성이다. 곧 “내부와 외부에 언제나 열려 있음”이다. 교황은 내면적으로 “마음으로부터 언제나 기꺼이 따뜻하게 ‘예’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고, 삶이 자신의 의제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외부에도 열려 있어야 한다며 “모든 사람들, 특히 소외된 사람들, 배제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연설 도중 연설 원고를 잠시 내려놓고, 하루 전날 읽었던 내용을 들려줬다. 그것은 성 오리오네 신부가 자신이 설립한 수도회 수도자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교회”에 대해 말했던 내용이다. “우리 수도회 공동체는 모든 이를 환대해야 합니다. 궁핍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 말입니다. 심지어 고통을 받는 사람도 환대해야 합니다.” 교황은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궁핍한 이웃뿐 아니라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이 사람들을 돕는 것은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렇게 하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함양해야 할 차원”의 방향으로 가는 “세 가지 간명한 생각들”을 제시했다.

불평 없이 모든 것을 행하십시오

교황은 우선 “겸손”하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주교와 사제들이 뽐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자기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싶어하는 부제를 보면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분의 모든 선행은 여러분과 하느님 사이의 비밀로 남겨두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교황은 종신부제들에게 “좋은 배우자, 좋은 아버지 그리고 좋은 조부모”가 되라고 초대했다.

“이는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는 여러 부부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한 겸손으로 내뻗는 여러분의 손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부제님을 좀 봐!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뿐 아니라 본당 신부님, 부제님의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장모님과 있을 때도 행복하게 지내는구나!’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불평 없이 모든 것을 기뻐하며 행하는 것은 많은 설교보다 더 가치가 있는 증거입니다.”

먼 곳을 발견하는 파수꾼

세 번째로 교황은 종신부제들이 파수꾼이 되기를 원했다. “여러분은 소외된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을 발견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문을 두드리실 때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도와야 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저 너머를 볼 수 있도록 돕는 예언적 차원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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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6월 2021, 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