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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저격당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1981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저격당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간호사의 도움을 받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고통 중에 주님의 이끄심을 받다

레오나르도 포르지아 씨는 지난 1981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벌어진 성 요한 바오로 2세 암살기도 직후 교황을 직접 품에 안아 들것으로 옮긴 간호사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시성식 3일 전인 지난 2014년 4월 23일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과 나눈 인터뷰를 통해 그의 증언을 되돌아본다.

Massimiliano Menichetti / 번역 이정숙

지난 1981년 5월 13일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암살기도의 날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오후 5시17분 성 베드로 광장에서 메흐메트 알리 아그차(Mehmet Ali Ağca)의 총에서 발사된 두 발의 총알을 맞았다. 주위는 두려움과 믿기 힘든 분위기로 술렁였고, 교황은 포프모빌 위에서 의식을 잃어 즉시 바티칸 근위대 진료소로 이송됐다. 외과의사 엔리코 페델레(Enrico Fedele) 교수와 교황을 들것에 옮기기 위해 직접 교황을 품에 안았던 레오나르도 포르지아(Leonardo Porzia) 간호사가 교황을 지켰다. 포르지아 간호사는 교황이 제멜리 종합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교황과 함께 있었다. 2014년 4월 23일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과 나눈 인터뷰를 통해 그의 증언을 되돌아본다.

이하 레오나르도 포르지아 씨와의 일문일답:

“그날 저는 외과 진료소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성 베드로 광장에 있는 여러 수비대 응급(상황)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누군가 교황님을 저격했다! 지금 근위대 진료소로 가려고 아르코 델레 캄파네(Arco delle Campane)를 통해 들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근무 중이던 외과의사 페델레 교수에게 즉시 연락했습니다. 심지어 다른 의사들까지도 모두 거리로 나왔습니다. (...) 교황님을 태운 포프모빌이 도착했죠.”

라디오를 통해 교황님이 부상당하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순간 어땠습니까?

“아주 끔찍했습니다! ‘맙소사, 누군가 교황님을 저격했다니!’ 진료소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교황님은 그곳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받으셨습니까? 

“저에게요. 우리는 구급차 옆에 있었습니다. 들것을 밖으로 꺼내고, 그분을 팔로 안아 포프모빌 위에 계시던 그대로 제 품에 기대게 했습니다. 그리고 교황님을 들것에 눕혔습니다. 외과의사는 상처를 살폈습니다. 부상 정도에 따라 산토 스피리토 병원이나 제멜리 종합병원으로 모셔야 하니까요. (...) 저는 거즈로 교황님의 상처를 닦았습니다.”

교황님이 여러분이 있는 곳으로 도착하셨을 때, 망설임이 있었나요? 

“아니오, 아닙니다! 즉각적이었습니다. 그분을 부축하고, 즉시 들것으로 옮겼습니다.”

실제로 병원에 가기 위해 바티칸의 다른 구급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을 텐데 (그 구급차는) 어디에 있었나요?

“(성 베드로 광장의) 주랑 아래쪽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됐지만 교황님의 구급차도 도착했고, 우리는 출발했습니다.”

왜 교황님이 구급차를 바꿔 타시도록 했나요?

“다른 구급차에 더 많은 장비가 갖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급차에는 누가 (함께) 탑승했나요?

“운전기사, 안젤로 구겔(Angelo Gugel) 교황시종, 부조네티(Buzzonetti) 주치의, 바티칸 보건국의 ‘바티칸 의료보험 시스템(FAS)’의 재단장, 외과의사와 저입니다. (...)  여섯 혹은 일곱 명이었습니다. 산타 안나(문)를 거쳐서 제멜리 종합병원으로 갔습니다.”

교황님의 상태는 어땠나요?

“의식이 있으셨지만 (...)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말씀이 없으셨어요! 가는 동안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경호대 없이 출발했는데, 잘 못 이해한 건가요?

“우리는 경호대가 없었습니다! 경찰이 아르코 델레 캄파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산타 안나(문) 쪽으로 나갔습니다.”

(제멜리 병원으로 가기 위해) 어떤 동선을 따랐나요?

“우리는 산타 안나에서 나와, 리소르지멘토 광장(Piazza Risorgimento), 메달리에 도로(Medaglie d’Oro)를 지나갔습니다. 그쪽에 비아 페레이라(Via Pereira)가 있고 제멜리로 향하는 시골길이 하나 있습니다. (...) 우리가 비아 페레이라 중간쯤 도착했을 때, 사이렌 소리가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 소리가 멈췄습니다! 저희는 경호대가 없었기 때문에 엄청 당황했습니다. (...) 한동안 경적을 울리며 (달렸고), 얼마 후 제멜리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송 중 또다른 일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선생님이 일하시던 중에 (...)

“(교황님의) 혈압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저에게 정맥 주사를 놓으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 주사 바늘을 꽂던 중 운전기사가 급회전을 해서 차가 인도로 올라갔습니다. 운전기사가 일방통행 길로 들어갔는데, 다른 차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이 다치셨나요?

“아니, 아니오, 아닙니다! 제가 제 손가락을 찔렀습니다. (...)”

구급차로 제멜리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15분도 안 걸렸습니다.”

어쨌든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작은 어려움들이 있었다고요. (...)

“교황님을 회복 센터로 옮기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병원장이 회복 센터에 이미 말해두었을 겁니다. 그곳에는 바티칸에서 근무하며 회복 센터를 책임지던 한 의사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 우리가 그곳에 도착해 들것을 내렸는데 ‘9층으로 가라!’는 수정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9층에 수술실이 있습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9층으로 가기 위해 (저는) 혼자서, 미친 사람처럼 뛰어 100미터쯤 떨어진 엘리베이터로 들것을 옮겼습니다.” 

그때에 교황님은 뭘하고 계셨나요?

“아무것도 안 하셨습니다. 들것 위에서 고통받으며 누워 계셨습니다. (...)”

교황님이 돌아가실까 두려우셨나요?

“네, 네!”

9층에 도착해서 교황님과 헤어지셨나요?

“교황님이 수술실로 들어가시기에 앞서 수술 준비를 위한 환자의 방으로 들어가셨을 때 헤어졌습니다. (...) 그곳에서 교황님의 모든 옷을 챙겨서, 그 옷들을 비닐 봉투에 넣어 안젤로 구겔 교황시종에게 전해줬습니다. 그런 다음 원장이 저에게 ‘다시 들어와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교황님은 수술을 하셨고, 다시 입원하셨습니다. 요점은, 어쨌든 카스텔 간돌포에서의 점진적인 회복기 이후 바티칸으로 되돌아오셨습니다. 바티칸에서 진료를 계속하셨고, 실제로 교황님이 바티칸 진료소에 검사를 받으러 오실 때마다 선생님은 교황님을 계속해서 만났습니다. (...)

“진료소로 오실 때마다 교황님은 저에게 ‘당신을 압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세네 번 ‘당신을 압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예, 교황 성하, 그럼요!’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제가 그때 그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교황님에게 그 일에 대해 전혀 말씀하지 않았나요?

“네! 전혀요!”

선생님은 교황님과 함께한 구급차의 여정에서 개인적으로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교황님을 들것에 태우셨을 때, 진료소에서 다시 만나셨을 때 (...)

“(교황님이) 정상상태로 돌아오시기 전까지 저에게는 한 명의 환자셨습니다. 그것이 제 직업입니다! 당연하죠. (...) 교황님을 치료하는 것이었죠! 그러나 직업적으로 저는 평온했고, 제가 해야 할 모든 것을 했습니다. 어떤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교황님에게 꽂은 정맥 주사와 관련된 개인적인 일화도 있습니다. (...)

“폴란드 출신의 수녀님들이 저희와 함께 일하셨습니다. (...) 다음 날 우리가 근무를 시작했을 때, 한 폴란드 수녀님이 저에게 안젤로 구겔 교황시종이 교황님의 모든 의복과 남은 정맥주사액을 줬다고 말했습니다. 그 정맥주사기는 제 이름으로 비아 코르티나 담페초(Via Cortina d’Ampezzo)에 있는 폴란드 수녀원으로 보내졌습니다. (...)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곳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

저격이 있었던 해인 1981년 12월 24일 선생님과 외과의사 교수님은 교황님을 알현했습니다. (...) 어디였죠?

“시스티나 성당 옆에 딸린 대기실이었습니다. 커다란 방입니다. (...) 첫 번째로 저와 저의 가족, 그 다음에 페델레 교수님과 그분의 가족을 만나셨습니다.”

교황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교황님은 감사 인사를 하셨습니다.”

결국, 교황님이 말씀하셨네요. 성 실베스테르 (교황) 기사단 훈장도 수여하셨습니다. 교황님이 다치셨을 때부터 (이후) 만남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 전체를 통해 교황님이 선생님께 어떤 인상을 주셨나요?

“고통받는 한 인간인 동시에 주님의 이끄심을 받고 있는 분이며, 병원으로 이송되는 한 인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은총 중에 있는 사람이란 말인가요? 

“네! 은총 중에 있는.”

한 성자(Santo)를 두 팔에 안았던 것이 선생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아, 엄청난 질문입니다! 제가 한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교황님을 제 팔로 안았습니다! 저는 제 의무를 다했고, 당시 필요했던 모든 일을 다 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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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5월 2021,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