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Vatican News
2016년 폴란드 하느님의 자비 성지의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경당 앞에서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2016년 폴란드 하느님의 자비 성지의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경당 앞에서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하느님의 자비 주일, ‘자비가 필요한 시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0년 대희년 동안 자신의 교도권의 특별한 측면인 하느님 자비에 대한 신심을 절정에 이르게 하고, 또한 오늘날 우리가 지내고 있는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제정하면서, 자신의 교황 재임 기간 전체를 자비로 특정지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두 번째 회칙의 주제로 자비를 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느님 자비에 대한 신심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전임자들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존재했다.

Laura De Luca / 번역 박수현

“이번 주일은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된 올해, 예수님의 말씀대로 개인과 교회로서 진정한 희년의 정신에 들어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구성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저는 오늘 아침 장엄한 성찬례(미사)를 위해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을 보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 아울러 자비로우신 예수님을 향한 여러분의 신심에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 각자의 삶과 활동 환경에서 복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처럼 하느님 자비의 사도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역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3년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시아의 산토 스피리토 성당이 로마의 하느님 자비의 성지가 되어 그곳에서 자비의 예수님상을 공경할 수 있기를 열렬히 바랐고 이를 루이니 추기경에게 표현했다. 1995년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 축일을 지낼 수 있도록 폴란드 교회에 인가했고, 같은 해 4월 2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사시아의 산토 스피리토 성당에서 이 축일을 거행했다. 교황은 1993년부터 선종한 2005년까지 매년 ‘하느님의 자비 주일’마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삼종기도를 위해 모인 신자들 앞에서 자비에 관한 특별 메시지를 전했다. 전 세계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이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지난 1999년 4월 11일 부활 삼종기도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지난 세기에 살았던 젊은 여성이자 젊은 수녀였다. 양차 세계대전(제1, 2차) 사이 폴란드에서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하느님 자비를 선포하는 임무를) “위탁”하기 위해 나타나셨다. (이로 인해) 오늘날 기념하고 있는 자비의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눈으로도 경배할 수 있게 됐다. 예수님께서는 흰 옷을 입고 계시며 예수님의 가슴에서 (영혼을 의롭게 하는) 흰색과 (영혼의 생명인 피의) 붉은색 등 두 빛이 뿜어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향해 당신께 의탁하라고 말씀하셨다.

“저는 오늘(2000년 4월 30일) 우리 시대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인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님의 삶과 증거를 온 교회에 제안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하느님의 섭리로 폴란드의 이 겸손한 딸의 삶은 우리의 바로 이전 세기인 20세기의 역사와 완전히 연결돼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자비의 메시지를 그녀에게 맡긴 것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입니다. 그 시대의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끔찍한 고통으로 몰아넣은 비극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그 참상을 목격한 사람들은 자비의 메시지가 얼마나 필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수녀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류가 내 자비의 샘으로 눈을 돌리기 전까지 그들은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성녀 파우스티나의 일기, 132쪽). 폴란드 출신 수녀님의 노력을 통해 이 메시지는 20세기, 곧 2000년의 마지막이자 3000년을 향한 다리와 영원히 연결됩니다. 이는 새로운 메시지는 아니지만, 특별한 깨달음의 선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파스카 복음을 더욱 강렬하게 되새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더불어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한 줄기의 빛을 주도록 해 줍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희년을 지내고 있던 지난 2000년 4월 30일 주일, 곧 사백주일(Dominica in Albis)에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를 성인품에 올렸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지난 1941년 크라쿠프 외곽의 라기에브니키에 있는 솔베이(Solvay) 화학공장에서 일했을 당시 파우스티나 수녀에 대해 처음 들었다고 전했다. 교황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파우스티나 수녀원 경당에 들러 기도했다. 그 이후로 하느님 자비는 항상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영성과 삶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교황 역시 파우스티나 수녀처럼 ‘하느님 자비의 사도’가 된 것이다. 교황이 된 후 1980년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을 인준하고 반포했으며, 1992년 하느님 자비를 기념하는 축일을 제정했다. 교황은 지난 1997년 6월 폴란드 사도적 순방을 통해 크라쿠프 근처에 있는 파우스티나 수녀의 성지를 재방문했다.

“교회는 20세기의 마지막 시대의 세대와 미래의 세대에게 희망의 빛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자비의 메시지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모든 사람을 위해 하느님께 자비를 구합니다. ‘교회는 인류를 덮어 누르면서 인류를 위협하는 여러 형태의 일에 에워싸여 있으며, 하느님의 자비를 외치는 기도를 한시도 잊지 않습니다. 역사상 어느 시대나 그렇지만 지금같이 위태로운 시대에는 더구나 그 기도를 잊지 않습니다. 인간 양심이 심하게 세속화될수록, ‘자비’라는 말의 의미 자체를 느끼지 못하게 될수록, 하느님에게서 떠나 자비의 신비에 거리를 두면 둘수록, 교회는 ‘큰 소리로’ 자비의 하느님께 호소할 의무와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자비로우신 하느님」, 15항). 바로 이런 이유로 이 성지는 저의 순례 여정에서도 발견됐습니다. 저는 교회와 인류의 모든 걱정을 자비로우신 그리스도께 의탁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3000년의 문턱에서, 저는 다시 한번 예수님께 저의 베드로 직무를 의탁하러 왔습니다.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자비로운 예수님께 교황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자비와 용서의 필요성도 함께 의탁했다. 

하느님 자비에 대해 말한 또 한 명의 교황은 비오 12세 교황이다. 비오 12세 교황은 1950년 성년을 앞둔 1949년 라디오 성탄 메시지를 통해 하느님 자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 특별한 은총의 해가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오는 위대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를 떠난) 많은 자녀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위대한 해가 되길, 그들이 돌아왔을 때 우리가 애정으로 포옹하는 위대한 해가 되길, (...) 바랍니다. 우리 신자들과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공동의 (하느님) 아버지의 희망을 잃지 않는 소중한 약속이 되길 빕니다. (...) 왜냐하면 세상에 새롭게 내려오는 하느님의 자비는 모든 척도를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자비가 모든 척도를 뛰어넘는” 이유는 우리의 약함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난 2006년 5월 폴란드를 방문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두 가지 신비, 곧 인간의 약함과 하느님의 자비 사이의 가까움에 대해 강조했다. 당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병자들과 만났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 고통의 신비와 하느님 자비의 신비라는 두 가지 신비에 직면합니다. 언뜻 보기에 이 두 가지 신비는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빛으로 이들을 깊게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는 이 두 신비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신비 덕분에 가능해집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한계와 하느님의 위대함을 함께 단단히 묶으며, 더불어 인간의 죄와 창조주의 자비를 단단히 묶는다.

이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뛰어난 신학적 직관이다. 

1968년 4월 12일, 콜로세움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친 후,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자비를 십자가에서 솟아나는 급류로 정의했다.

“이제 거룩한 기도를 마치면서 (아마) 우리는 고통스럽고 놀랐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비난 받고 책임 있는 사람으로서 마음속 깊은 후회와 예수님을 배신하고 무고한 피를 모른 체한 사람의 절망감을 가지고 떠나야 할까요? 아니요, 전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놀라움과 위안으로 구세주의 매우 고통스러운 죽음이 (사실은) 우리의 행운이었으며 우리를 기쁨과 사랑으로 채우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고통받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스도교 예술에서 표현된 십자가의 형상을 볼 때, 그 생명나무 아래에서 은총과 하느님과의 우정, 성사들을 나타내는 맑은 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실제로 십자가에서 자비의 급류가 흘러나와 우리 모두에게 용서받고 구속되는 헤아릴 수 없는 운명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의 전례를 통해 우리는 잔인한 주님의 수난을 ‘복되다’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다시 태어남과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더 이상 무지와 죽음의 교수대가 아니라 승리의 상징이 됩니다. 곧 ‘이 표시로 승리하리라’(in hoc signo vinces)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이곳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바로 밑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운명이 교회 역사에 새롭고 빛나는 지평을 열어젖힌 승리를 보게 됩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11 4월 2021, 2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