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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이 세상의 골고타에선 단 한 방울의 눈물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31일 성주간 수요일 일반알현을 통해 파스카 성삼일(Triduo pasquale)에 대한 교리 교육을 진행했다. 교황의 생각은 오늘날의 많은 “십자가에 못박힌 이들”, 코로나19 대유행의 희생자들, “전쟁으로 파괴된 사람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에게 머물렀다. 교황은 이 땅에 내려앉은 “큰 침묵”에서 “파스카의 경이로움”이 나온다고 말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교리 교육 – 파스카 성삼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미 성주간의 영적 분위기에 푹 스며들어 있는 우리는 파스카 성삼일을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주일까지 우리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거행하면서 전례 주년의 핵심적인 날들을 지낼 것입니다. 우리는 매번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이 신비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사에 참례하러 갈 때, 우리는 단지 기도만 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는 이 신비, 파스카 신비를 새롭게 하기 위해 미사에 참례하러 갑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파스카 신비를 갱신하고 새롭게 하기 위해 골고타에 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성목요일’ 저녁에는,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하면서, ‘주님 만찬 미사(in Coena Domini)’라고 불리는 미사를 재현할 것입니다. 곧, 다락방에서, 그 순간, 그곳에서 일어났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 안에서 당신 사랑의 유산을 당신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저녁입니다.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기념하는 것(memoriale)*이며, 당신의 영원한 현존 그 자체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이 구원의 신비가 새로워집니다. 이 성사(성체성사)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희생 제물을 당신으로 대신하셨습니다. 곧, 파스카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는 우리에게 죄와 죽음의 노예 상태로부터의 구원을 제공해줍니다. 모든 노예 상태로부터의 구원이 거기에 있습니다.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가 종이 되어 서로 섬기며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 그 저녁입니다. 이는 십자가 상에서의 처참한 희생을 미리 보여준 행위입니다. 사실, 스승이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이 아니라 당신 제자들의 마음과 전체 삶을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다음 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를 위한 섬김의 제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희생의 섬김으로 우리 모두를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역주: 기념(memoria, anamnesis 아남네시스)은 일반적으로 어느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는 행위를 의미하나, 특히 교회에서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신비나 어느 성인 또는 구세사적 사건에 대한 기념을 전례적으로 재현시키는 행위를 뜻한다(가톨릭대사전 참조).

‘성금요일’은 참회와 단식과 기도의 날입니다. 이날 우리는 성경 말씀과 전례 기도를 통해, 마치 골고타에 모여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구속을 위한 죽음을 기념할 것입니다. 전례 행위의 강렬함 속에서 우리가 경배해야 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우리에게 제시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경배하면서 우리는 우리 구원을 위해 희생되신 죄 없는 어린 양의 여정을 다시 살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병든 이들과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의 고통을 우리 생각과 마음에 담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과 독재, 일상의 폭력과 낙태, (…) 의 무고한 희생자들인 “희생된 어린양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너무나 많은 오늘날의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느님의 모습 앞으로 데려올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며, 하느님으로부터 그들이 겪는 고통의 의미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모상(模像)입니다. 그들 안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상처와 죽음까지도 짊어지셨을 때부터,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이러한 사막에 물이 흐르게 했고, 우리의 이러한 어둠에 빛을 밝혔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전쟁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모든 어린이들, 교육받을 기회가 없는 어린이들, 전쟁과 테러로 인해 전체가 파괴된 민족들의 목록을 열거해 봅시다. 좀 더 기분이 나아지기 위해 마약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과 사람들을 죽이는 마약 사업, (…) 을 생각해봅시다. 이러한 것들은 재앙이고, 사막입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하느님 백성의 작은 “섬”이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이든 다른 종교의 신자이든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말해봅시다. 이 죽음의 골고타에서 제자들 안에서 고통받으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시는 동안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사람들을) 치유하시며, 용서하시며, 다시 살리시면서, (…) 당신의 삶을 온전히 쏟아 부으셨습니다. 이제는 십자가 위에서 최고의 희생의 시간에 당신께 맡겨진 일을 아버지께 위탁하시면서 완성하십니다. 구속하기 위해, 변화시키기 위해 고통의 심연으로 들어가시며, 이 세상의 재앙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이는 또한 우리 각자를 어둠의 힘과 교만과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거부하는 데서 해방시키기 위함입니다. 이는 오직 하느님의 사랑만이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예수님의 상처로 병이 나았으며(1베드 2,24 참조), 우리 모두는 그분의 죽음으로 거듭났다고 말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버리신 예수님 덕분에 그 누구도 다시는 죽음의 어둠 속에서 혼자가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가까이 계십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마음을 열고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는 일입니다. 

‘성토요일’은 침묵의 날입니다. 온 땅에 커다란 침묵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놀란 첫 번째 제자들의 눈물과 당혹감 속에서 살았던 침묵입니다. 말씀이신 분께서 침묵하시고 생명이신 분께서 무덤 속에 있을 동안, 그분께 희망을 건 이들은 힘든 시험에 빠졌고, 고아가 됨을 느꼈습니다. 또한 아마도 하느님의 고아가 됨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성토요일은 또한 성모 마리아의 날입니다. 그녀 역시 눈물로 이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당신 아드님을 따랐으며, 영혼이 찢어진 채로 십자가 밑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일 때에도 죽은 자들을 살리실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며 깨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가장 어두운 시간에, 그녀는 믿는 이들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희망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무게가 우리 각자에게 너무 무거워질 때, 그녀의 증언과 간구 기도는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성토요일의 어둠 속에서 ‘파스카 성야’ 예식을 통해 기쁨과 빛이 가득 넘쳐 흐를 것이며, 늦은 저녁에는 ‘알렐루야’의 축제의 노래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될 것이며, 성령 강림 때까지 이어지는 50일 동안 예수님 부활의 기쁨이 지속될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계시를 통해 모든 질문과 불확실성, 망설임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부활하신 분께서는 선이 항상 악을 이기고, 생명이 항상 죽음을 이기고, 우리의 마지막이 항상 슬픔에서 슬픔으로, 아래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는 확신을 우리에게 줍니다. 부활하신 분은 예수님께서 모든 면에서 옳으시다는 것에 대한 확증입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삶과 죄를 넘어서는 용서를 우리에게 약속하셨다는 점에 있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의심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분을) 가장 먼저 믿고 본 사람은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말하러 간 부활의 사도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모든 제자들이 (부활하신 분을) 보았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바로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무덤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과 군인들도 부활하신 분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원수들은 부활하신 분을 보았으나, 보지 못한 척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돈으로 매수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언젠가) 한 번 말씀하신 진짜 비밀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주인이 있습니다. 두 주인입니다. 더 많지 않고 둘입니다. 하느님과 재물입니다. 재물을 섬기는 자는 하느님과 반대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돈이 실제 사실(현실)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경이로움을 보았지만 돈으로 매수되어 침묵했습니다. 남녀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실제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대가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인답게 행하라고 요구하신 것을 실천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도 우리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상황에서 파스카 전례를 거행할 것입니다. 여러 고통스러운 상황 안에서, 특히 가난과 재난이나 분쟁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가족들, 시민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마치 아직도 폭풍우가 치는 바다 한 가운데 있는 배들에게 항구를 가리키는 등대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실망시키지 않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단 한번의 신음 소리도 (헛되이)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은총과 주님을 인식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길 주님께 청합시다. 주님을 잊기 위해 돈으로 매수되지 않는 은총을 주님께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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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월 2021, 2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