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아우슈비츠 생존자 에디트 브루츠크 방문
VATICAN NEWS / 번역 이정숙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치 정권의 박해 당시 에디트 브루츠크(Edith Bruck)와 그녀의 가족이 경험한 공포가 담긴 인터뷰를 읽고 깊이 감동했다. 그래서 교황은 그녀를 만나길 요청했고,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교황은 2월 20일 토요일 오후 브루츠크의 집을 개인적으로 방문하기 위해 바티칸을 나와 로마 중심으로 향했다. 브루츠크는 일평생 3분의 2를 이탈리아에서 보낸 헝가리계 유다인 작가다. 교황은 브루츠크 여사와 대화를 나누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당신의 증언에 감사드리고, 나치 포퓰리즘의 광기로 순교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당신을 방문했습니다. 당신과 당신처럼 나치의 광기로 많은 고통을 받았던 모든 사람에게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진심으로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인류를 대신하여 주님께 용서를 청합니다.” 교황청 공보실은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교황님이 (브루츠크 여사와) 나눈 대화는 강제 수용소의 지옥의 경험에 산재해 있던 빛의 순간들을 되짚어 보게 했습니다. 또한 젊은이들에게 기억의 가치를 심화하고 전달하는 데 있어 노인들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두려움과 희망을 불러 일으키게 했습니다. 약 1시간 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브루츠크 여사와 작별 인사를 나누시고 바티칸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번 만남에는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의 편집장 안드레아 몬다가 함께했다. 그는 지난 1월 26일 프란치스카 로마나 데 안젤리스가 브루츠크와 인터뷰하고 작성한 감동적인 내용을 지면에 실었다. 교황은 (브루츠크에게) 일곱 갈래의 촛대로 이뤄진 유다교의 상징 메노라와 바빌론 탈무드를 선물했다.
에디트 브루츠크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증언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녀는 베르겐 벨젠 (유다인) 강제 수용소의 마지막 증언을 들려줬던 이름 모를 두 명으로부터 증언하는 일을 하라는 요청을 받은 바 있다. “사람들이 너를 믿지 않을테지만 (강제 수용소에 대해) 알려라. 만약 네가 살아남는다면 우리를 위해서라도 이야기해라.” 그리고 그녀는 약속을 지켰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인터뷰에서 그녀가 묘사한 일화를 읽을 때, 에디트가 전하는 희망의 시선이 가장 인상적이다. 어린 아이였던 그녀가 가족 구성원의 대부분을 잃으면서 공포의 심연에 빠져있던 가장 어두운 순간을 말할 때도 그녀가 결코 잃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그녀가 계속해서 살아가고 희망할 수 있게 만든 특별한 아름다움과 선, 인간성에 대한 단서에 언제나 시선을 두는 것이었다.
에디트 브루츠크는 자신이 살던 시골집에서 부모, 형제자매와 함께 쫓겨난 후 유다인 지역인 게토에서의 삶을 묘사했다. 그녀는 박해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식량 수레를 선물한, 유다인이 아닌 한 남자에 대해 말했다. 또한 참호를 파기 위해 다하우(강제 수용소)에서 노동할 때 만났던 한 독일 병사에 대해 말했다. 그 병사는 에디트에게 자신의 더러워진 반합을 닦으라며 던져줬는데, “반합 안에는 나를 위한 잼이 있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그녀가 장교 식당에서 일했을 당시의 일화도 있다. 주방장이 그녀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에디트라고 대답하자 그 주방장은 “나도 너와 같은 나이의 딸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작은 머리빗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막 자라기 시작한 제 머리를 바라보면서 그 머리빗을 저에게 선물했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인간 앞에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명, 희망이었던 그 행동들이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에디트 브루츠크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작은 행동으로 충분하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오늘(20일) 로마의 주교(교황)가 자신을 만나려 집에 들르고, 그녀가 (교황을) 맞이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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