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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성경은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만나시는 자리입니다”

성경은 무궁무진한 보물이며, “이름과 성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27일 교황청 사도궁 도서관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을 통해 이 같이 말했다. 교황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지식은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모든 이를 만나시는 자리이자 “모든 것을 예전 상태로 남겨두지 않는” 자리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22. 성경으로 바치는 기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의 한 구절에서 시작하여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의 말씀들은 파피루스나 양피지 혹은 종이에 갇혀 있으려고 쓰여진 것이 아니라, (말씀을) 자신의 마음속에 자라나게 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아들여지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마음에 다가갑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기도가 따라야 합니다”(2653항). 성경을 소설처럼 읽을 수는 없습니다. 기도가 따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구절은 또한 나를 위해 쓰여졌습니다. 나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져다주기 위해, 수세기 전에, 우리 각자를 위해 쓰여졌습니다. 이러한 체험이 모든 신자들에게 벌어집니다. 이미 여러 번 들었던 성경 구절이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말하고,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환하게 비출 때가 있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때, 내가 말씀과 만나는 그 자리에 머무는 게 필요합니다. 말씀을 경청하면서, 나는 그 자리에 머무릅니다. 하느님께서는 매일 (우리 곁을) 지나가시고, 우리 삶의 땅에 씨를 뿌리십니다. 우리는 오늘 그 말씀이 메마른 흙을 만날지, 가시덤불을 만날지, 혹은 싹이 나고 자라게 하는 좋은 땅을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마르 4,3-9 참조).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있으며, 우리의 기도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될 수 있도록 성경에 접근하는 우리의 열린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성경을 통해 (우리 곁을) 지나가십니다. 지난주에 제가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되풀이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했던 말입니다. “저는 하느님이 지나가실 때가 두렵습니다.” 왜 두렵나요? (그분께서 지나가실 때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기도를 통해 ‘말씀의 새로운 육화(nuova incarnazione del Verbo)’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감실들’입니다. 세상을 방문하시기 위해 오신 하느님의 말씀이 머무시고 보호받길 원하시는 감실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도구화하지 않고, 다른 의도 없이 성경에 다가가야 합니다. 신앙인은 성경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희망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자신의 철학적 혹은 도덕적 전망의 근거를 찾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성경 말씀이 성령의 감도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같은 성령 안에서 말씀이 우리에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남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구절을 앵무새처럼 말하는 것을 들으면 조금 거슬립니다. “아, 예, 주님께서 이렇게 (…)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 원하십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해당 성경 구절 안에서 주님을 만났습니까? 그것은 단지 기억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위해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주는 마음의 기억의 문제입니다. 그 말씀, 그 구절이 주님과의 만남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를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을 읽읍시다. 이런저런 사람이나, 이런저런 상황 안에서 나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은총입니다. 성경은 일반적인 인류를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여러분을 위해, 살과 피를 지닌 사람들을 위해, 저와 여러분처럼 성과 이름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하느님 말씀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질 때는 모든 것을 예전처럼 남겨두지 않고 무엇인가를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말씀의 은총과 힘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성경으로 바치는 기도에 대한 체험과 성찰이 풍요롭습니다. 특히 수도원 환경에서 시작됐지만, 이제는 본당 신자들도 행하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의 방법이 확립됐습니다. 우선, ‘렉시오 디비나’의 첫 단계는 성경 구절을 주의 깊게 읽습니다(Lectio). 그 구절 자체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본문에 “순종”하며 읽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 단계는 성경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말씀은 묵상(Meditatio)과 기도(Oratio)의 근거가 됩니다. 항상 본문에 충실하면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아주 섬세한 단계입니다. 주관적인 해석에 빠져서는 안 되며, 우리 각자를 성경에 일치시키는 성전(Tradizione)의 살아있는 고랑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렉시오 디비나’의 마지막 단계는 관상(Contemplatio)입니다. 이 단계에서 말과 생각들은, 때때로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만 봐도 충분한 연인들처럼, (하느님) 사랑에 그 자리를 내어 줍니다. 성경 본문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거울이나 이콘을 바라보는 것처럼 관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대화가 이뤄집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는 그분 안에 삽니다. 말씀은 선한 지향을 불러 일으키고, 행동을 지원합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우리에게 평온함을 주고, 우리가 위기에 처할 때도 우리에게 평화를 줍니다. “꼬이고” 혼란스러운 날에도, 악마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신뢰와 사랑을 우리 마음에 보장해 줍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은 살이 됩니다. 저는 감히 ‘살이 되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서 살이 됩니다. 이러한 직관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말씀과 완전히 동일시하는 몇몇 고대 문헌에서 나타납니다. 이에 따르면 비록 세상의 모든 성경이 불에 타더라도 “형판(calco)”은 성인들의 삶에 각인돼 있기 때문에 여전히 구원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순종의 작품인 동시에 창의성입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순종해야 하지만, 창의력도 발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실천하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재촉하는 성령이 마음속에 계시기 때문에 창의적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끝맺는 말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이르셨습니다.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마태 13,52). 자기 곳간이란 (우리의) 마음입니다. 성경은 무궁무진한 곳간(보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기도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성경에서) 길어 올릴 수 있도록 허락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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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월 2021, 2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