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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말씀 주일 하느님의 말씀 주일  (Vatican Media)

하느님의 말씀 주일 “모든 이는 교회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좌골신경통 때문에 미사를 집전하지 못했지만,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리노 피시켈라 대주교가 미사를 집전했고 교황의 강론을 대독했다.

번역 이창욱

형제자매 여러분,

이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맞아 교황님이 하셨어야 할 강론을 대신 읽는 일은 제게 특별한 기쁨이고 영광입니다.

이 하느님의 말씀 주일에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무슨’ 말씀을 ‘누구’에게 하시는지 살펴봅시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설교하기 시작하십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십니다. 바로 이것이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땅에 내려왔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종종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의 상태와 동떨어진, 저 멀리 하늘 높은 곳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사람이 되셨을 때 (인간과의) 간격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그때부터 하느님께서는 매우 가까이 계십니다. 결코 우리의 인간성에서 분리되지 않으시고, 결코 인간성을 성가셔 하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가까움이 복음의 시작이고, 오늘 복음 대목이 강조하듯이, 예수님이 “말씀하신”(마르 1,15 참조)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그것으로 됐다고 하지 않으시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 말씀을 ‘지속적으로 반복’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신다”가 그분 메시지의 핵심, 그분의 선포에서 반복되는 주요 동기(leitmotiv)였습니다. 만일 이 주제가 예수님의 설교의 시작이고 후렴구라면, 그리스도인의 삶과 선포의 항구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고, 우리는 용서받았으며, “용서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믿고 선포합니다. 하느님에 관한 우리의 온갖 말에 앞서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시는, 우리를 위한 그분의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나는 네 곁에 있고 네 곁에 머물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이 가까이 계심을 손으로 만지듯 느끼게 해줍니다. 왜냐하면 신명기가 표현하듯,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로부터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신명 30,14 참조). 이는 삶 앞에서 홀로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해독제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 ‘위로’하십니다(con-sola). 다시 말해 ‘홀로 있는(sola)’ 사람과 ‘함께(con)’ 계십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당신의 마음속에 있고, 당신 눈에 소중하며, 당신 손 안에 보호되고 있음을 떠올리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러한 평화를 불어넣어주지만, (그저) 평화 안에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위로의 말씀이지만, 회심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을 선포하신 직후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가까이 계심을 통해 하느님과 타인으로부터 거리를 뒀던 때가 끝났으며, 각자가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자기 멋대로 전진하던 때도 끝났습니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런 태도는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을 체험하는 이는 이웃과 거리를 둘 수 없고, 무관심으로 이웃을 멀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자주 접하는 이는 건강한 실존적 반전을 맞이합니다. 곧, 삶이란 타인을 경계하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때가 아니라, 가까이 계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타인을 만나러 가기 위한 기회임을 발견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의 땅에 씨 뿌려진 말씀은 가까움을 통해 희망을 씨 뿌리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듯이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말씀하시는지 살펴봅시다. 제일 먼저 갈릴래아의 어부들에게 향하십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힘겹게 일하며 노동의 결실로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에 정통한 이들이 아니었고, 당연히 학문이나 교양에서 두드러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민족, 인종, 종교로 구성된 지역에 거주했습니다. 그 나라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고, 예루살렘의 종교적 정결함에서 가장 거리가 먼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로 그곳에서,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시작하셨습니다. 이는 아무도 하느님 마음의 가장자리에 있지 않다고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이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인격적으로 그분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주제에 관련해 복음에는 아주 특별한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선포가 요한의 선포 “뒤에”(마르 1,14 참조) 이르렀음을 알렸을 때입니다. “뒤에”라는 결정적인 표현은 하나의 차이점을 표시해줍니다. 곧, 요한은 광야에서 사람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광야는 살고 있던 장소를 떠날 수 있었던 이들만이 향했던 곳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모든 이에게, 사회의 중심부에서 하느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또한 정해진 때와 시간에 맞춰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마르 1,16) 어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장 평범한 때와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건네십니다. 바로 이것이 모든 삶의 상황과 모두에게 도달하는, 하느님의 말씀이 지니는 ‘보편적인 힘’입니다.

하지만 말씀은 ‘특별한 힘’도 지닙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각자에게 각인됩니다. 제자들은 그날 호숫가에서 들었던 말씀, 배, 가족, 동료에게 가까이 다가왔던 말씀, 영원히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 말씀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예수님께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차원적인 연설로 그들을 이끌지 않으셨고, 그들의 삶에 말씀하셨습니다. 고기 낚는 어부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 말씀하신 겁니다. 만일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도가 되게 하겠다. 너희는 세상에 파견되어 성령의 힘으로 복음을 선포할 것이고, 죽임을 당하겠지만 성인이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다면, 베드로와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감사합니다만, 저희는 우리의 그물과 우리 배를 더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했으리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삶에서 떠나라고 그들을 부르십니다. “너희는 어부들이다. 너희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말씀에 꿰찔려, 고기를 낚으며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큰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기쁨의 비결임을 단계적으로 발견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처럼 하십니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 우리를 찾아와주시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시며, 인내심을 갖고 우리의 발걸음을 동행하십니다. 그 어부들에게 하시던 것처럼, 우리 인생의 강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럭저럭 살아가기를 그만두고 그분 뒤를 따라 큰 바다로 향하도록, 주님께서는 당신 말씀을 통해 우리가 길을 바꾸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말씀을 포기하지 맙시다. (하느님의 말씀은) 다른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분께서 우리를 위해 쓰신 사랑의 편지입니다. 그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새롭게 듣고, 그분의 모습을 알아보며, 그분의 영을 받습니다.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멀리하지 않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말씀을 주머니 속에, 휴대폰 안에, 늘 함께 지니고 다닙시다. 하느님의 말씀을 위해 우리 집에서 적합한 장소를 내어드립시다. 어쩌면 하루의 시작과 끝에, 매일 하느님의 말씀을 펼치는 것을 기억하는 장소에 복음서를 모셔두어, 우리의 귀에 도달하는 수많은 말씀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 몇 구절이 마음에 와 닿도록 합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텔레비전을 끄고 성경을 펼칠 힘을, 휴대폰을 닫고 복음을 펼칠 힘을 주님께 청합시다. 올해 전례 시기에는 가장 단순하고 짧은 마르코 복음을 읽습니다. 이 짧은 구절을, 매일 혼자서도 읽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가까이 계시는 주님을 느끼게 해주고 삶의 여정에서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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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월 2021, 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