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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삼종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삼종기도  (Vatican Media)

“구원은 자동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회심을 요구하는 선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24일 두 번째로 맞이하는 ‘하느님의 말씀 주일’ 삼종기도에서 이날 전례의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설교의 시작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구절은 다음과 같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교황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각자의 삶에서 매일을 “구원의 때”로 살아가라는 초대라고 말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일 복음(마르 1,14-20 참조)은 세례자 요한에게서 예수님으로 넘어간, 이른바 ‘증인 교체’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선구자였고, 예수님께 (활동) 무대와 길을 마련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 시작하시며 우리 앞에 도래한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바로 그분이 구원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다음과 같은 말씀 안에 잘 요약됩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단순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에둘러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본질적인 주제를 숙고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시는 메시지입니다. 곧 ‘(구원의) 때와 회심’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의 이 본문에서, ‘때(tempo)’는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 역사의 기간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므로 “때가 찼다”는 것은 이 구원활동이 그 절정에, 충만한 실현에 다다른 때를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당신 나라가 이미 “가까이” 온 역사적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구원의 때가 찼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자동으로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구원은 사랑의 선물이고, 인간의 자유에 베풀어진 선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 말할 때는 언제나 자유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자유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랑은) 이해관계일 수 있고, 두려움일 수 있으며, 다른 여러 가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늘 자유롭습니다. 자유롭기에 자유로운 응답을 요구합니다. 곧, 우리의 회심을 요구합니다. 다시 말해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과 –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바로 회심입니다 – 삶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더 이상 세상의 모델을 따르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신 하느님의 모델을 따르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겁니다. 시각과 태도의 결정적인 변화입니다. 사실 죄는, 특히 모든 것에 스며드는 공기와 같은 세속의 죄는, 타인뿐 아니라 하느님까지 반대하여 자기 자신을 내세우려는 사고방식으로 이끕니다. 이 점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무엇이 여러분의 정체성입니까? 우리는 많은 경우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 때 “반대한다”는 용어를 씁니다. 세상의 영에 물든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인 용어나 구원의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자기 자신에 반대하고, 타인에게 반대하고, 하느님께 반대합니다. 그리고 이런 목표 때문에 – 죄의 사고방식, 세상의 사고방식은 – 거짓과 폭력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거짓과 폭력 말입니다. 거짓과 폭력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봅시다. 곧 탐욕, 섬김이 아니라 권력을 원하고, 전쟁, 인간 착취 (...) 등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기원을 악마에게, 분명 거짓의 아비이고 거짓말쟁이인 악마에 두고 있는 거짓의 사고방식입니다. 악마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예수님께서 악마를 그렇게 규정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에 반하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곧, 우리 자신이 하느님과 그분의 은총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지상 재화에 대해 균형 잡힌 태도를 갖추고, 모든 이를 환대하고 모든 이에게 겸손하며, 타인을 만나고 섬기는 가운데 우리 자신을 알고 실현할 줄 알도록 권고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있어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은 짧습니다. 그 시간이란 이 세상에 머무는 우리 인생의 기간입니다. 무척 짧지요. 어쩌면 길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 저는 병자성사를 위해 아주 좋은, 아주 착한 어르신 한 분에게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병자성사와 영성체를 하기 전, 바로 그 순간에 그분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게 인생은 (화살처럼) 날아갔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말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영원할 줄 알았지만, (...) “인생이 날아가 버렸다”고요. 이것이 나이든 사람들인 우리가 느끼는 방식입니다. 인생이 가버렸다고 말이죠. 인생은 흘러가버립니다. 그리고 삶이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선물이지만,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검증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우리 존재의 모든 순간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고귀한 때이며, 그와 같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우리 삶의 역사에는 두 가지 리듬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과 날과 해들로 이뤄진 측정가능한 변화입니다. 다른 하나는 출생, 유아기, 사춘기, 성숙기, 노년기, 죽음 등 우리의 생애주기로 이뤄져 있습니다. 각각의 때와 단계는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주님과의 만남이라는 특혜의 순간일 수 있습니다. 신앙은 이러한 때의 영적인 의미를 발견하도록 우리를 돕습니다. 각각의 때는 주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이 부르심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응답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에서 시몬,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이 어떻게 응답했는지 봅니다. 그들은 성숙한 사람들이었고, 어부라는 직업을 가졌으며, 가정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 그럼에도 예수님이 지나가시며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18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지나치시게 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느님이 지나가실 때가 두렵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그분께서 지나가실 때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 그분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그분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동정녀 마리아께서 각자 자신의 삶에 따라, 매일을, 매 순간을 주님께서 지나가시며 당신을 따르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구원의 때로 살아가도록 도우시길 빕니다. 또한 세상의 사고방식에서, 불꽃놀이에 불과한 세상의 환상에서 섬김과 사랑의 사고방식으로 회심하도록 우리를 도우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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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월 2021, 2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