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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알현(2018년 1월 10일) 일반알현(2018년 1월 10일) 

교황 “위선에 반대하고, 병자들과 인격적 관계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1월 12일 공개된 제29차 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건강이야말로 제1의 공동선임을 떠올리며 의료 지원에 투자하도록 권고했다. 아울러 현재의 코로나19 대유행은 의료 시스템의 결점을 드러냈다면서, 가장 취약한 이들과 노인들에게는 적절한 치료가 늘 보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Debora Donnini / 번역 이창욱

위선에 빠질 위험과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이들처럼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히려 병자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병자들이 아무도 “소외되고 버림받았다”고 느끼지 않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오는 2월 11일에 거행하는 제29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에서 밝힌 목표다. 교황은 “한 사회가 더 인간적일수록 형제애로 고무되어” 가장 약한 이들을 “더 효과적으로 돌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1월 12일 화요일 공개된 담화의 제목은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마태 23,8). 병자의 돌봄으로 이끄는 신뢰 기반의 관계”이다. 교황은 이번 담화를 통해 전 세계에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을 생각했다. 

병자들의 돌봄에 재원을 투자하는 것이 최우선

교황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의료 시스템의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병자 돌봄의 비효율성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고 주목했다. 이어 “노인들, 가장 약한 이들, 취약한 이들에게는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늘 보장되지 않으며, 늘 적절한 방식으로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러한 불평등은)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의 노력의 크고 적음 그리고 “정책 결정”의 결과에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또한 “병자를 돌보고 간호하는 데 재원을 투자하는 것은 건강이 제1의 공동선이라는 기본원리와 연결된 우선순위”라며, 이 순간에 위로와 돌봄을 전하는 수많은 이들의 관대함도 강조했다. 교황은 이들을 (조용하고 묵묵하게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묵묵한 남녀 무리”라고 정의했다. 이들은 병자들을 “인간 가족의 구성원”으로, 타인을 이웃으로 느끼는 사람들이다. 

의사-환자 상호관계의 중요성

좋은 치료를 위해서는 “관계적 측면”으로 “병자에게 전인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치료과정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교황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돌보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계약)”이 신뢰에 기반을 둔다면서, 이것이 병자의 존엄을 존중하고, 의료종사자들의 전문성을 보호하고, 환자 가족과의 좋은 관계를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아무도 위선의 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 세계 병자의 날의 주제에 영감을 준 복음 말씀에 따라, 예수님이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이들을 꾸짖으신 까닭은 이들이 “모든 이에게”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며(마태 23,1-12 참조), “아무도 위선의 악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교황은 설명했다. 위선은 교황의 최근 회칙 「Fratelli tutti」의 주제인 보편적 형제애를 살도록 부름 받은 “유일한 아버지의 자녀들”로서 꽃피우는 것을 방해한다. 교황은 직접적인 관계에 주목하며, 타인의 필요에 관여하지 않은 채 “말로만 실행하는 무익한 신앙”으로 살지 않도록, 또한 “신앙고백과 실생활 사이의 일관성”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욥과 질병이 던지는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

교황은 가까이 다가감이 어떻게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귀중한 향유”가 되는지 강조했다. 병중에는 특히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의존을 분명히” 체험한다. 건강이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는 만큼 무력한 상황을 살기 때문이다. 교황은 “믿음 안에서 질병은 우리가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며, 이것이 존재론적인 성찰의 차원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상징하는 모습은 욥이다. 욥은 불행에 빠진 자신을 동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의 혼란을 부풀리고 비난하는 아내와 친구들과 함께 버림받은 상태로 추락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연약함을 통해, 욥은 하느님에게 끈질기게 부르짖었고, 마침내 하느님께서 응답하신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그의 고통은 (처벌이나) “형벌”이 아니며 그분으로부터 멀어진 상태의 상징도 아니라고 확인해주신다. 이와 같이 욥의 마음에서 그 유명한 고백이 솟아난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욥 42,5).

공동체 차원에서 이웃이 되어줌

이웃이 되어줌(prossimità)이란 예수님의 표현처럼 “죄로 인해 상처입은 모든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준 착한 사마리아인을 체험하는 것이다. 교황은 우리가 고통받는 형제들에게 가까이 다가감(vicinanza)을 공동체 차원에서도 체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적 사랑은 치유할 줄 아는 공동체, 아무도 버리지 않는 공동체, 특히 가장 연약한 이들을 포용하고 환대하는 공동체를 낳기” 때문이다. 사실 봉사(섬김)는 늘 “형제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의 살을 만지는 것이므로 관념론이 아니다. (봉사는) 관념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기 때문이다.

병자들을 섬기는 가운데 성화된 이의 증거

교황은 병자와의 이러한 관계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마르지 않는 샘을 찾는다며, 이 가운데서도 “병자를 섬기면서 스스로를 성화시킨 많은 남녀들의 유구한 증거를 드러낸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서, 복음이 입증하듯 “병자의 상태와 그를 돌보는 사람의 상태 모두에게 완전한 의미를 줄 수 있는” 그 사랑의 샘이 솟아난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치유는 “마술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만남의 결실”이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하느님의 선물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믿음에 응답한다. 

교황은 루르드 동굴과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수많은 성지에서 믿음을 얻도록 자비의 어머니, 병자들의 치유이신 마리아께 시선을 돌리며 마무리했다. “(성모님께서) 형제적 사랑으로 서로 돌보도록 우리를 도우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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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월 2021, 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