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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인생에서 단죄 받는 것도 기도하면 선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수요 일반알현이 다시금 교황청 사도궁 도서관에서 진행됐다. 이날 교리 교육의 핵심은 내면의 삶을 가꾸는 중요성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내면의 삶을 가꾸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언제나 도망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13. 예수님은 기도의 스승이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코로나19 감염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시 교황청 사도궁 도서관에서 수요 일반알현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이는 또한 우리가 이 전염병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보건 당국의 지침에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두의 유익을 위해 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주님께 봉헌합시다. 많은 환자들, 병원에 입원했지만 방치된 상태에 있는 환자들, 의사들, 남녀 간호사들,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들을 위해 일하는 많은 사람들을 기억합시다. 이분들은 소명 의식을 갖고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이웃 사랑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예수님은 공생활 동안 끊임없이 기도의 힘에 의지하셨습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기도하시기 위해 외딴 곳으로 물러나셨다는 점을 전해줍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신) 기도의 대화가 어떠했는지 우리로 하여금 상상케 하는 냉철하고도 신중한 관찰입니다. 이는 또한 예수님이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을 정성껏 돌보시는 순간에도 아버지와의 깊은 대화를 한번도 소홀하게 여기지 않으셨다는 점을 분명하게 증언해줍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요구에 정성을 다할수록 삼위일체적 친교 안에 머물러 쉬어야 함을, 성부와 성령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더 많이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에는, 모든 것의 핵심이자 인간의 눈에는 감춰진 하나의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신비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단지 무엇인가를 감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올바른 관점에서 예수님의 사명 전체를 읽을 수 있게 해줍니다. 그 고독의 시간에 - 동트기 전이나 밤에 -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내밀함, 곧 모든 영혼이 갈망하는 사랑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러한 일이 예수님의 공생활 첫날부터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안식일에 카파르나움의 한 마을은 “야전 병원”으로 변했습니다. 날이 저물고도 사람들은 예수님께 병자들을 모두 데려왔고, 그분은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동이 트기 전에 예수님은 사라지십니다. 기도하기 위해 외딴 곳으로 가신 것입니다.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야 한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온 것이다”(마르 1,35-38 참조). 예수님은 언제나 조금 더 멀리 나아가십니다. 아버지와 함께 기도 안에서 더 멀리 나아가시고,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 마을을 넘어, 우리의 지평을 넘어서십니다. 

기도는 예수님의 ‘길을 인도하는 방향타’입니다. 그분 사명의 여정을 좌우하는 것은 성공이나 동조가 아닙니다. 그분은 “모두가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라는 말에 혹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은 편치 않은 길이지만, 그분이 홀로 기도하시면서 듣고 받아들이신 아버지의 영감에 순명하는 길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벌써 기도를 가르치신다”(2607항)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모범으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인 기도의 몇 가지 특징들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먼저, 기도는 우선권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이 깨어나기 전, 새벽에 행하는 무엇, 바로 그날의 ‘첫 번째 갈망’입니다. 기도는, 기도하지 않으면 숨쉴 수 없을 한 영혼에게 생기를 줍니다. 기도 없이 보내는 하루는 귀찮고 지루한 경험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하루 동안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가 견딜 수 없고 맹목적인 운명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현실에 순명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곧, 귀 담아 들으라고 가르치십니다. 무엇보다 기도는 하느님의 말씀을 귀 담아 듣고 그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상의 문제들은 장애물이 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 앞에 있는 이들의 말을 귀 담아 듣고 만나라는 하느님의 호소가 됩니다. 이처럼 삶의 시련들은 신앙과 사랑 안에서 성장하기 위한 기회로 바뀝니다. 노고를 포함한 일상의 여정은 “소명”의 관점을 얻습니다. 기도는, 기도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단죄 받는 것도 선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각을 열고, 마음을 큰 지평으로 넓히는 힘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기도는 ‘끈질기게’ 해야 하는 기술(art)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문을) 두드려라, 두드려라, 두드려라. 우리 모두는 순간적인 감정에서 나오는 일시적인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른 형태의 기도를 가르치십니다. 훈련과 수련을 해야 하는, 삶의 규칙 내에서 익힌 기도를 가르치십니다. 한결같은 기도는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환난의 때에 우리를 강하게 하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항상 우리를 지켜주시는 주님의 지지를 받는, 은총을 줍니다. 

예수님 기도의 또 다른 특징은 ‘고독’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없는 곳을 선호합니다. 그곳에서 침묵 가운데 내면 깊숙이 숨겨진 많은 목소리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가장 억압된 욕망들, 우리를 숨막히게 하는 불편한 진실들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은 침묵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을 위한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각자 내면의 삶을 길러 나가고, 자기 행동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자리 말입니다. 내면의 삶이 없으면 우리는 피상적이고, 동요하고, 불안에 떱니다. 불안이 우리를 얼마나 아프게 합니까! 그러니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내면의 삶이 없다면 우리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우리 자신에게서도 도망치고, 언제나 도망치는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기도는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하는 자리입니다. 때때로 우리 인간은 우리가 만물의 주인이라고 믿거나, 반대로 우리 자신에 대한 자아존중감을 잃거나, 아니면 이리갔다 저리갔다 휩쓸리기도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 그리고 모든 피조물과 맺는 관계에서 올바른 차원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종국에 올리브 동산의 고통 속에서 “아버지, 하실 수만 있다면 (…) 그러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손에 자신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손에 자기 자신을 내어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요하고 조금은 걱정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안으로부터 변화시키시고, 아버지의 손에 우리를 맡겨드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기도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복음 안에서 새롭게 발견하고, 그분의 학교에 들어갑시다. 그곳에서 우리는 기쁨과 평화를 찾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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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11월 2020, 2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