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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11일 교황청 사도궁 도서관에서 기도에 관한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을 이어나갔다. 교황은 끈기, 용기, 겸손이 하느님과의 모든 대화를 특징짓는 요소라고 말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삶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14. 끈기 있는 기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기도에 관한 교리 교육을 이어 나갑시다. 누군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황님은 기도에 대해 너무 많이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에 대해 많이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삶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 삶의 산소와 같습니다. 기도는 언제나 우리를 성령의 현존으로 이끕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런 까닭에 저는 기도에 대해 많이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끈기 있게(con perseveranza)’ 행하신 지속적인 기도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침묵과 묵상 속에서 아버지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예수님 사명의 전체 토대였습니다. 복음서들은 제자들에게 지치지 않고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권고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예수님이 하신 기도의 이러한 특징을 강조하는 루카 복음의 세 가지 비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2613항 참조).

기도는 무엇보다도 ‘간절함(tenace)’이 있어야 합니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한밤중에 벗에게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빵을 꾸어 달라고 청하는 비유 속의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 벗은 이미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빵을 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계속 졸라 댑니다. 친구가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빵을 줄 때까지 말입니다(루카 11,5-8 참조). 끈질긴 부탁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보다 더 인내로우십니다. 믿음과 끈기를 갖고 하느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응답하십니다. 언제나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끈기는 하느님께 우리의 필요를 알리거나, 하느님을 설득하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우리 안에서 열망과 기대를 키우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 비유는 올바른 판결을 얻기 위해 재판관에게 청하는 과부에 관한 비유입니다. 이 재판관은 부패하고 파렴치한 사람이지만, 과부의 끈질김에 귀찮음을 느끼고 결국 과부의 청을 들어주기로 합니다(루카 18,1-8 참조).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짐을 더는 것이 더 낫겠다.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다.” 이 비유는 믿음이 한 순간의 충동이 아니라, 악과 불의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하느님께 청하고, 심지어 하느님과 “논쟁”하려는 용감한 성향이라는 것을 알아듣게 해줍니다. 

세 번째 비유는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바리사이와 세리에 관한 비유입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면서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세리는 스스로 성전에 들어갈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바리사이의 기도, 곧 교만한 자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시고, 겸손한 세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루카 18,9-14 참조). 겸손의 정신이 없다면 참된 기도는 없습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가 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복음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모든 것이 헛되이 보일 때도, 하느님이 듣지도 말하지도 않으시는 것처럼 보일 때도,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언제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이 어두워져도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믿음과 함께 나아갑니다. 우리 삶의 많은 날들 안에서 믿음이 하나의 환상이나 결실 없는 노력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어두운 순간들이 있고, 그때 믿음은 환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도한다는 것은 이러한 노고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신부님, 저는 기도하러 갑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 마음이 메마르고 무미건조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이 힘겨운 순간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많은 성인, 성녀들도 신앙의 밤과 하느님의 침묵을 체험했습니다. 문을 두드렸지만 하느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순간 말입니다. 하지만 성인, 성녀들은 꾸준히 견뎌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밤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은 기도의 증인이자 스승일 뿐 아니라 그 이상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 안에서, 당신을 통해 기도할 수 있도록, ‘당신의 기도 안에서’ 우리를 받아들이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일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복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요한 14,13).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우리의 청원이 허락되리라는 확신은 예수님의 기도에 근거를 두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2614항). 예수님의 기도는 인간의 기도가 항상 갖고 싶어했던 날개를 달아 줍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신뢰로 가득 찬 시편 91편의 말씀들을 이 시점에서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 깃으로 너를 덮으시어 네가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 그분의 진실은 큰 방패와 갑옷이라네. 너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밤의 공포도 낮에 날아드는 화살도 어둠 속에 돌아다니는 흑사병도 한낮에 창궐하는 괴질도”(4-6절). 그리스도 안에서 이 놀라운 기도가 성취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의 완전한 진리가 발견됩니다. 예수님이 누락된 우리의 기도들은 한낱 인간의 노력으로 축소될 위험이 있으며 대부분 실패로 끝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울부짖음, 모든 신음, 모든 환희, 모든 간구, (…) 모든 기도를 스스로 짊어지셨습니다. 아울러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는 성령을 잊지 맙시다. 성령은 우리를 기도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분이십니다. 또한 성령은 우리가 하느님과 만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성부와 성자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마음속에서 기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번뜩이는 표현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도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사제로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우리의 머리로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며, 우리의 하느님으로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또한 우리 안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입니다”(2616항). 따라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는 성령께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기기 때문입니다. 이 성령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고, 우리 안에서 기도하십니다. 기도의 스승이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길을 가르쳐 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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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월 2020, 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