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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이기주의가 아닌 사랑의 삶이 하느님과의 만남을 준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8일 연중 제32주일 삼종기도에서 열 처녀의 비유를 해설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영감을 받은 매일의 선행이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잔치를 평온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재에만 몰두하지 말라며,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몹시 필요하고 또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일 복음의 구절(마태 25,1-13 참조)은 모든 성인 대축일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을 맞아 시작된 영원한 생명에 관한 묵상을 이어가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상징인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열 처녀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혼인잔치를 한밤중에 지내던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대받은 이들은 등불을 켜고 신랑을 맞으러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처녀들은 어리석었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챙겼지만 기름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왔습니다. 신랑이 자꾸만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신랑이 온다고 외치는 소리가 났을 때,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제서야 등에 기름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눠 달라고 청했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기름이 모두에게 충분하지 않으니 줄 수 없다고 답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 신랑이 왔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나머지 처녀들은 너무 늦게 도착해 입장을 거절당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당신과의 만남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려 하신 게 분명합니다. 마지막 때의 만남뿐 아니라, 그러한 만남을 위한 매일의 크고 작은 만남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위해서는 믿음의 등만으론 충분치 않습니다. 사랑과 선행의 기름도 필요합니다. 우리를 예수님과 참으로 일치시켜주는 믿음은,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것처럼,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의 태도가 이를 드러냅니다. 슬기롭고 지혜롭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에 맞갖은 마지막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즉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 “저는 (...) 네, 나중에 좀 더 있다가 회심하겠습니다. (...)” – “오늘 회심하십시오! 오늘 삶을 바꾸십시오!” – “네, 네. (...) 내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똑같은 말을 또 하고, 그렇게 (회심할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겁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과의 마지막 만남을 준비하려면, 지금부터 주님과 협력하고 그분의 사랑에 영감 받아 선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우리 삶의 목표를 망각하는 일이 일어나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과의 결정적인 약속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기다림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현재를 절대화하면서 말입니다. 누군가 현재를 절대화하고 그저 현재에만 몰두한다면, 몹시 필요하고 또 아름다운 기다림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한순간의 모순으로 우리 자신을 내던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기다림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 이러한 태도는 저 세상에 대한 모든 전망을 닫아버립니다. 또 다른 삶을 향해 떠날 필요가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래서 그저 소유하고, 유명해지고, 안주하는 것에만 신경씁니다. 그리고 ‘조금만 더’ 하고 바랍니다. 만일 우리에게 더 매혹적으로 보이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우리의 이익 추구가 이끄는 대로 우리 자신을 맡긴다면, 우리의 삶은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등불을 밝힐 기름을 모아두지 않아, 주님과 만나기 전에 등불이 꺼져 버릴 겁니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오늘이란 내일을 향한 오늘, 그 만남을 향한 오늘, 희망으로 가득한 오늘입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깨어있고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며 선을 행한다면, 신랑의 도착을 평온하게 기다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잠든 동안에도 오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매일의 선행을 통해 모아둔 기름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한 빨리 오시어 우리를 이끌어 가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기름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행하신 바와 같이 행동하는 믿음을 살아내도록 우리를 도와달라고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전구를 청합시다. 행동하는 믿음이란 빛나는 등불입니다. 우리는 그 등불을 가지고 죽음을 넘어 밤을 가로지르며 생명의 큰 잔치에 이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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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11월 2020, 2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