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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기도하시고, 또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던 날 요르단 강변에서 “하느님 백성의 죄인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 행동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이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아버지와의 사랑의 대화”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28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신자들과 함께 하는 일반알현을 통해 기도에 관한 교리 교육을 이어가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일반알현은 미디어를 통해 생중계됐다.

번역 김호열 신부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  12. 기도의 사람인 예수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번처럼 오늘도 저는 이곳 단상 위에만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저는 단상에서 내려가 여러분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리두기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단상 아래로 내려가면 여러분 모두가 저와 인사를 나누려고 한곳으로 모여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병들게 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 불리는 이 “주인” 앞에서 취해야 할 예방수칙과 치료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여러분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단상 아래로 내려가지 않더라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곳 단상 위에서 여러분에게 인사하지만 여러분 모두를 제 마음에 간직하겠습니다. 우리는 거리두기를 하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양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도에 관한 그동안의 교리 교육 여정에서 우리는 구약 성경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젠 예수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시작합니다. 복음사가들은 이 사건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데에 일치합니다. 복음사가들은 모든 군중들이 어떻게 기도했는지를 말하고, 기도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이 분명 참회적 성격을 띤다고 명시합니다(마르 1,5; 마태 3,8 참조). 사람들은 죄의 사함을 받고자 세례 받으러 요한에게 갔습니다. 여기에 세례의 참회적이고 회심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공생활에서 보이신 첫 번째 행동은 백성의 공동 기도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세례를 받으러 가는 백성들의 기도이자, 모든 이가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식하는 참회의 기도입니다. 이런 까닭에 세례자 요한은 (자신에게서 세례를 받으시려는) 예수님을 말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14)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압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행동이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는 행동이며(15절 참조), 우리 인간조건과의 연대의 행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백성의 죄인들과 함께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정의로운 분이시고, 죄인이 아니시라는 것을 잘 기억하십시오. 그럼에도 그분은 죄인인 우리에게 내려오길 원하셨고, 우리와 함께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분도 기도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당신 백성들과 함께 기도하십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기도하십니다. 언제나 말입니다. 우리는 혼자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우리와) 다르시다는 것 – “나는 의롭고, 너희는 죄인들이다” - 을 표하기 위해, 불순종한 백성들과 거리를 표하기 위해 강 건너편에 머물러 계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그 정화의 물에 당신 발을 담그십니다. 그분은 죄인처럼 행동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위대함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죄인의 모습을 취하신 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멀리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그럴 수도 없으십니다. (예수님의) 육화는 이를 완전하고도 인간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방식으로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는 백성들의 최전방에 자리를 잡으십니다. 마치 그분의 뒤를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용기 내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을 여는 책임이 당신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 길과 여정은 힘겹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길을 여시면서 나아가십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이것이 바로 완성된 시간의 새로움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기대하시던 자녀다운 기도를, 마침내 사람이 되신 외아들께서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사람들을 위하여 바치신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99항).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기도하십니다. 이를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분명히 간직합시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기도하십니다.

그날 요르단 강 유역에는 모든 인류가 기도에 대한 자신들의 무언의 갈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죄인들이 있었습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 감히 성전 문지방을 넘을 수 없었던 사람들, 스스로 합당하다고 느끼지 않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이를 위해 오셨습니다. 심지어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이들과 일치하면서 선두주자가 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루카 복음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셨을 때의 기도의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렸다”(루카 3,21).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 하늘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 문틈으로 성령이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놀라운 진실을 선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22절). 이 간단한 문장은 엄청난 보화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신비와 항상 아버지께로 향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직감하게 만듭니다. 그분 인생의 회오리 바람과 당신 자신을 단죄하게 될 세상에서, 견뎌내야 할 가장 힘들고 슬픈 경험에서, 머리 둘 곳이 없다는 경험에서(마태 8,20 참조), 당신 자신의 주변에 증오와 박해가 퍼져 나갈 때도, 예수님은 피난처가 한 번도 없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서 영원히 사십니다.

여기에 예수님 기도의 유일무이한 위대함이 있습니다. 성령이 예수님을 감싸고, 성부의 음성은 예수님이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이자 당신을 온전히 반영한 아들임을 증명합니다. 

요르단 강 유역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 당신의 지상에서의 삶 내내 그렇게 하신 것처럼 - 온전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에는 은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 받은 모든 이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당신 스스로 우리를 위해 이 은총을 얻으셨으며, 당신이 기도한 것처럼 기도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러니 저녁기도 시간에 우리가 피곤과 공허를 느끼거나, 삶이 완전히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 순간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의 것이 되기를 간청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 기도할 수 없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기도하고 싶지 않아. 나는 기도하기에 합당하지 않아.” 이렇게 느끼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도록 우리 자신을 그분께 내어 맡겨야 합니다. 이 순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아버지 앞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중개자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상처를 아버지께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신뢰가 있습니다. 이 신뢰가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단전에서 올라오는 소리보다 더 큰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정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 아버지의 기쁨이다.” 바로 우리를 위해, 우리 각자를 위해 아버지의 말씀이 울려 퍼집니다. 비록 우리가 모두에게서 배척당하더라도, 최악의 죄인일지라도 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해 요르단 강물에 내려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내려가셨습니다. 하느님의 백성들도 모두 기도하고, 용서를 청하고, 회심의 세례를 받기 위해 요르단 강에 다가갔습니다. 어느 신학자가 말한 것처럼, “벌거벗은 영혼과 맨발”로 요르단 강에 다가갔습니다. 바로 이것이 겸손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홍해의 물을 갈라놓은 것처럼 우리 모두가 당신의 뒤를 따라 지나갈 수 있도록 하늘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사랑의 대화인 당신 자신의 기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기도를 삼위일체의 씨앗처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삼위일체의 씨앗을 우리 마음에 뿌리내리려 하십니다. 받아들입시다! 이 선물을, 기도의 선물을 받아들입시다. 항상 예수님과 함께합시다. 그럴 때라야 우리는 실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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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0월 2020, 00:02